“어떤 어른 될지 무서웠다”…10kg 찌운 여배우, 인터뷰 중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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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연(31)은 '경주기행'을 위해 10kg을 찌웠다.
배우로 잘되는 것만큼 인간 이연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중요해졌다.
"작품을 하면서 인간 이연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배우로서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인간 이연도 같이 성장했으면 했어요."
'경주기행'은 복수를 위해 떠나는 가족의 여행을 그리지만, 이연에게는 어쩌면 자신이 어떤 배우,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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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아닌 인간으로도 성장하고 싶어”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연은 영화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이야기를 꺼내자 유난히 밝게 웃었다. 촬영이 끝난 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과 매일같이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만큼 끈끈하다.
“오늘도 선배들이랑 카톡하다가 인터뷰하러 왔어요. 촬영할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현장에서 호흡도 너무 좋았고 많이 배웠죠.”
오는 26일 개봉하는 작품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나는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이다. ‘갈매기’로 주목받은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이연은 세 딸 가운데 셋째 동주를 연기한다. 동주는 전직 프로레슬러다.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고, 거칠고 단단해 보이지만 가족을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뜨겁다.

“제가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 아니에요. 살을 찌우면서 운동해야 태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일본까지 가서 프로레슬링 경기도 직접 봤어요. 보면서도 살을 찌우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힘들 법도 했지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근육은 잘 안 붙어도 살찌우는 건 너무 행복했어요.(웃음)”
문제는 촬영이 끝난 뒤였다. 찌우는 것만큼 다시 빼는 것도 일이었다. 무작정 굶으면 요요가 올 수 있어 PT와 식단 조절을 병행하며 천천히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만든 동주의 액션은 대부분 이연이 직접 소화했다. 비율로 치면 약 90%. 단순히 ‘내가 직접 해내겠다’는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액션에도 배우의 얼굴과 감정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도 액션 영화가 많지만 액션 장면에서 배우 얼굴이 잘 안 보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얼굴이 보여야 그 인물의 감정도 보이고, 관객의 몰입도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몸으로 부딪친 시간만큼 마음으로 얻은 것도 컸다. 극 중 네 모녀로 뭉친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은 이연에게 단순한 동료 이상의 존재가 됐다. 이연은 세 사람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선배들”이라고 표현했다.

“정은 선배는 정말 열정적이에요.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마지막까지 가진 에너지를 다 쓰세요. 효진 선배는 카메라가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의 온·오프가 정말 대단하고요. 화면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정확하게 알고 연기하는 느낌이에요. 소담 선배는 촬영하면서 NG를 한 번도 안 내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같은 생각을 했단다.
“이번에도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웃음)”
영화에서 시작된 인연은 촬영장을 넘어 일상으로 이어졌다. 이정은이 사천에서 ‘좀비딸’을 촬영할 당시 네 사람은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때 이연이 새삼 발견한 박소담의 모습도 있었다.
“소담 선배가 진짜 ‘파워 J’예요. 여행 가는데 쏘카까지 미리 예약해 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정말 좋은 데이트 상대겠다’ 싶었어요. 연애하면 진짜 잘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영화 속 네 모녀처럼 실제 배우들 사이에도 어느새 가족 같은 온기가 스며들었다. 이연에게도 이번 작품은 특별한 가족의 기억을 남겼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딸의 영화 시사회장을 찾았다.
“저는 엄마한테 친구 같은 딸이에요. 제가 강아지 같은 스타일이라면 엄마는 고양이 같은 스타일이랄까요. 그런데 시사회에 오셔서 정은 선배한테 굉장히 친근하게 대하시는 거예요. 저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어요.(웃음)”
집에 돌아간 어머니는 뒤늦게 걱정했다고 한다. “내가 이정은 배우한테 너무 친한 척한 것 같다”고. 이연은 그 이야기를 전하며 또 웃었다. 어머니가 영화를 본 뒤 건넨 말은 길지 않았다.
“고생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렇게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연의 눈가가 젖은 건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였다.
독립영화에서 출발해 한 작품씩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고 자신도 서른을 넘어 있었다.
“저는 작품을 고르면서 한 번도 무리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잘 나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작품 하나를 하면 일 년이 지나가잖아요.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저도 서른이 넘었더라고요.”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런데 동시에 두려움도 생겼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작품을 하면서 인간 이연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배우로서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인간 이연도 같이 성장했으면 했어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좋은 선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 자신보다 먼저 긴 시간을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다.
“선배들이 살아온 역사를 제가 직접 경험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곁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남는 게 있어요. 정신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배우는 게 정말 크고요. 그런 것들이 저를 정신 차리게 해요.”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는 회사에도 고맙다는 말을 보태던 이연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 10kg을 찌우고, 몸을 던져 액션을 소화한 시간. 하지만 ‘경주기행’이 이연에게 남긴 가장 묵직한 변화는 숫자로 잴 수 없는 것이었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인간 이연도 성장하고 싶어요.”
‘경주기행’은 복수를 위해 떠나는 가족의 여행을 그리지만, 이연에게는 어쩌면 자신이 어떤 배우,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기행이었다.
“저희 영화가 새로운 장르라고 생각해요. 관객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정말 궁금해요. 촬영하면서 제가 느낀 좋은 에너지가 관객들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몸은 다시 10kg 가벼워졌다. 대신 배우 이연이 가지고 돌아온 것은 조금 더 묵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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