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에서 자존으로… 천명관, 10년 만의 장편 <아코디언>으로 귀환
부커상 후보 <고래> 작가 천명관
10년 만 장편 <아코디언>으로 귀환
비운 맞선 앵벌이 소년들의 고군분투
폐허의 심금 울리는 희망의 풍각소리
동이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가 자신도 모르게 아코디언을 집어 들었다. 처음 만지는 악기였지만 조금도 어색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는 멜빵을 어깨에 메고 양쪽 손잡이에 손을 넣었다. 마치 오랫동안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아코디언이 자연스럽게 가슴에 달라붙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주름상자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렀다. 부우, 아코디언 소리가 움막 안에 울려 퍼지자 아이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 천명관 장편 <아코디언>, P.59
특유의 재담과 능청, 따라가지 못할 익살과 입심으로 2000년대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던 소설가 천명관이 새로운 면모의 작품으로 돌아왔다. 2016년 조폭 코미디 영화를 연상시키는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지난 6월 10년 만에 새 장편소설 <아코디언>을 독자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몰입감을 배가시키는 핍진한 묘사 기법과 거친 서사를 가르며 나아가는 뚝심의 필력은 여전했으나, 중심 소재와 작중 배경 그리고 주제의식은 전작들과 판이했다. 한국전쟁 직후 1950~60년대 빈한(貧寒)하기 그지없는 서울의 길거리와 달동네 곳곳을 무대로 유리걸식(遊離乞食)하는 앵벌이 소년들의 생존 투쟁기를 그려냈다.
신작에는 대체로 전작들을 지배하던 블랙코미디식 웃음기 대신, 오로지 팍팍하고 고단한 생의 눈물만이 주조(主潮)를 이루고 있다. 천명관의 시선은 그 시절의 흑백영화나 시대극 드라마를 보듯 천천히 돌아가는 타임머신의 카메라가 되어, 부모 잃고 떠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부랑아들의 인생 유전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앵벌이 소굴의 우악스러운 두목들과 결투하고 반격을 가하는, 다소 극적인 요소를 빼고 본다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다. 아코디언 연주자의 꿈을 꾸는 주인공 ‘동이’를 비롯해 장님 소녀 ‘연이’, 앉은뱅이 ‘거북이’, 외팔이 마약 중독자 ‘깜상’ 등 앵벌이 전선에 던져진 천애 고아들은 해방촌 거지굴에서 위선자 ‘양 목사’와 감시자 ‘아미’에게 끝없는 착취와 학대를 당하며 기구하게 연명한다.

전후(戰後) 폐허 혹은 재건 도시…
곡소리와 유행가로 울려 퍼진 ‘질곡의 한국 현대사’
종일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동냥을 해도 할당량을 벌지 못하면 빈대 끓는 움막에서 멀건 호밀죽 한 그릇조차 얻지 못한 채, 악귀 같은 착취자들에게 모진 구타를 당해야 했던 동이. 목이 터져라 울어도, 길에 엎드려 단꿈을 꿔봐도, 풍금을 가르쳐주며 음감을 칭찬해주던 어머니는 다시 보이지 않고…전쟁 포화 속에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눈보라 치던 부둣가에서 생이별한 어머니는 이제 아득한 옛일. 비운을 곱씹으며 목숨이 붙어있음을 개탄해 봐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차라리 운명에 맞서는 길을 택하겠다는 동이. 그런 동이가 아코디언을 접한 뒤로 미군 기지촌을 들락거리며 한때나마 악기 연주자의 꿈을 꿨던 것은 ‘희망을 개척하겠다’는 출사의 도전장이었다.
동이가 연주한 곡은 「서울야곡」이었다. 그것은 독특한 리듬에 우아한 선율로 전쟁의 광기에 휩싸였던 서울이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끔찍한 도시가 아니라 평화로운 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낭만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멋진 곡으로 동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였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 1950년에 발표된 현인의 노래. 유호 작사·현동주 작곡.
- 천명관 장편 <아코디언>, P.147~148
동이가 아코디언을 통해 무엇인가 심금(心琴)에 울림을 받기 시작할 무렵, 해방촌 앵벌이 소굴은 아동(찬이) 밀매 사건으로 뒤집히고 소년들은 잠시나마 자유를 맛보며 독립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해나갈 수 있었다. 동이는 아이들 간 신경전과 힘겨루기를 거치며 리더로서 올라서고, 돈을 모아 집을 사서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며 주변을 설득하고 생계 조달을 지휘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다시 찾아온 탐욕스러운 양 목사를 합심하여 십자가에 매달고 처치함으로써, 새로운 포식자가 등판하기 전까지 공동체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 점에서 천명관이 동이에게 부여한 아코디언의 의미는 한 인간의 성장 서사를 넘어서, 비극적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하고 운명의 질곡을 맨몸으로 헤쳐 나간 그 시절 모든 이에게 바치는 ‘용기와 초월의 상징’일 것이다.

이처럼 천명관의 <아코디언>은 ‘개인의 현실 극복’이라는 주제의식을 ‘공동체 운명 개척’이라는 보다 더 넓은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키는 차원에서, 소설 속에 참혹과 찬란의 시기를 교차하던 전후(戰後) 한국 현대사의 변화상을 오밀조밀하게 담아냈다. 해방촌 달동네 그리고 역 부근 판자촌에 득시글하던 전쟁고아와 장애아들의 생지옥 ‘앵벌이 소굴’부터, 구직(求職)이라는 한자어 푯말을 두른 실업자 상이군인을 비롯해 부랑자·동냥아치·소매치기·신문팔이가 배회하던 서울 길거리 풍경.
한편으론 멋들어진 양장(洋裝) 차림의 신사 숙녀가 거니는 화려한 백화점과 근사한 창경원, 어둠 속 밴드의 흥겨운 연주로 무르익어가는 미군 캠프 내 클럽 분위기까지…. 특히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랑의 정리(情理)를 음유하던 그 시절 그 노래. 전파사 노랫소리와 아코디언 연주로 울려 퍼지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 현인의 ‘베사메무쵸’ 등 유행가 소개는 작품의 정체성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이라 하겠다.
영화감독 꿈꾼 ‘국어 1등’ 고졸 막노동꾼,
‘부커상 후보’ 스타 소설가 되다
천명관이라는 소설가를 그의 출세작 <고래>로 기억하는 독자들은 <아코디언>의 소재와 주제, 서사 구성에 다소 생경함을 느낄 것이다. 억척스러운 의지 하나로 인생살이의 간난신고(艱難辛苦)와 격돌했던 여인들, <고래>의 소위 ‘거대한 구라’에 흠뻑 매료되어 그와 같은 장르소설식 필법을 기대했더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이순(耳順)을 지나 중진 작가의 반열에 든 천명관이라는 한 인간 존재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그가 왜 이 같은 처연한 역사의 귀로에 서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64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천명관은 수원 소재 고등학교로 진학해 반장을 지내기도 하는 등 평범한 모범생으로 성장했다. 국어 과목은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찾아온 방황기와 우울증으로, 졸업 후 당구장에 박혀 사는 백수 신세가 됐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산이 몰락하자 그는 군 제대 직후 시골집 단칸방에서 조부모를 모시기 위해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이후 여의도 골프가게 점원으로 취직하고 보험 외판원으로 뛰기도 하는 등, 천명관의 20대 청춘 시절은 문학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업 전선의 한복판이었다.
“나에겐 청춘이라고 할 만한 시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먹고 사느라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유가 없었어요…. 나는 여행을 다녀도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단 주로 뒷골목에 관심이 많아요. 그곳에 진짜 삶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채널예스>, 2016년 9월 27일 자 ‘천명관 인터뷰’ 기사 중
여러 직업을 거친 끝에 30대에 이르러 그는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느와르물과 조폭 코미디 영화가 인기를 끌던 한국영화의 성장기였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시나리오를 들고 충무로를 오가던 청년 천명관은 교통정리와 식당 섭외 같은 제작 보조를 시작으로 극장 입회인, 영화사 직원, 시나리오 작가로까지 활동했지만 끝내 ‘입봉’에 실패하고 파산, 신용불량자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느덧 마흔, 인생의 벼랑 끝에서 동생의 권유로 소설가의 길에 도전한 그는 2003년 단편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거머쥐며 정식 작가로 올라선다. 특히 등단 이듬해 발표한 장편 <고래>가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국문학의 기대주’로 일약 발돋움하게 된다.
2000년대 한국소설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인 <고래>는 그로부터 약 20년 뒤인 2023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심사위원회는 천명관의 작품세계를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 출신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에 빗대어 극찬하기도 했다.

<고래> 히트 이후에도 천명관은 왕성한 집필활동을 통해 장편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칠면조와 함께 달리는 육체노동자> 등을 펴내면서 ‘희대의 이야기꾼’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이른바 ‘문단 권력’ 문제가 대두됐던 2015~16년에는 평단과 특정 대학 체제, 문예지 편집위원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학판의 폐쇄주의와 순혈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등 ‘문단의 소신 있는 이단아’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2022년에는 김언수 소설가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뜨거운 피’의 메가폰을 잡게 되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도 했지만, 예순이 지나 그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왔다. 거듭된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삶의 콘텐츠를 채워왔던 천명관 본인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처럼, ‘꿈꾸는 거리의 악사’ <아코디언> 소년의 운명 개척기를 들려주면서….
‘밥으로 사는 삶’이 아닌 ‘인간으로 서는 길’…
한 서린 도전, 실패는 없다
자신은 벽을 넘는 데 끝내 실패했지만 그들은 기어이 살아남아 벽 너머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남들처럼 깡통만 한 꿈이라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동이의 머릿속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깜상과 연이, 자신이 아들로 삼았던 돈이, 아코디언을 물려준 홍이, 죽은 양 목사와 아미, 그리고 이젠 윤곽조차 희미해진 엄마의 얼굴……
- 천명관 장편 <아코디언>, P.294
재기발랄한 서사나 능청스러운 문장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無低坑) 같은 인간 존재 본연의 절망과 슬픔을 서서히 클로즈업하며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소설. 전작들이 사회적 정착이나 세속적 성공에 실패한 하류인생의 ‘웃픈 삽화들’이었다면, <아코디언>은 불과 수십 년 전 우리네 어른 세대가 실제로 토해내야만 했던 ‘생존의 피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쟁고아 앵벌이들의 지쳐버린 울음소리나 낡은 아코디언의 씁쓸한 유행가 선율은 구슬픈 옛이야기만으로 치부되지 않고, 생의 시험대에 직면한 전 세대에 교훈을 주는 ‘도도한 행진가’로 울려 퍼진다. 그것은 물론 오늘날 문장과 서사를 비틀며 작품 안팎의 세계를 꼬집는 소위 ‘요즘 작가들’의 세련된 튕겨대기나, 각자 내면의 고민거리 공유를 통해 ‘소소한 사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런지, 인물과 주제가 너무도 ‘평면적’이라는 이유로 본 작품에 비판적 시선을 보내는 서평 기사도 존재한다.
이 작품에 던져지는 그 같은 ‘의문’들에 답신을 보낸다면, 소설의 주인공 동이의 마지막 도전과 희생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죽고 떠난 양 목사와 아미를 대신해, 앵벌이 소년들을 더욱 가혹하게 착취하고 옥죄는 건달패 ‘육손이’와 ‘샘’. 동이는 각고의 투신 끝에 그들을 하나씩 응징하고 소년들을 부산행 열차에 태워 자유의 몸으로 돌려보내지만, 시위대 물결 속으로 들어가다 끝내 육손이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동이는 악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가련히 ‘절명’하지만, 동이의 아코디언을 물려받은 홍이가 살아남았기에 그 꿈은 ‘절멸’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생존(生存)에 허덕이는 짐승의 삶이 아닌, 스스로의 존엄 즉 자존(自尊)을 이루는 인간다운 삶을 꿈꿨던 앵벌이 소년들의 소망은 투박한 서사 속에서 인류 보편의 감동으로 빛난다.

소설 속 찬이는 납치당한 게 아니라 전쟁통에 부모가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고, 연이를 돌봐주던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일부러 그녀의 눈을 멀게 하고 착취한 악마였을 따름이고….
선악 구분이 무의미한 폐허의 시대, 이처럼 세상사에서 때로 이면의 진실이란 표면의 사실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법이니.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자발적 노예의 삶’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 바로 인생이다. 그 전진 과정에는 물론 업신여김의 가시밭길이 골고루 깔려 있다. 동이의 소박한 연주를 듣고 ‘재주가 있어 더 괴롭겠다’며 ‘그렇지만 신분 출신이 다른데 어떻게 정식 악사가 될 수 있겠냐’며 가슴에 비수를 꽂던 밴드마스터의 조소를 기억한다면, 누구든 자극을 받아 더 큰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비운의 죽음으로 끝이 났더라도, 사력을 다한 동이의 개척 의지가 없었더라면 앵벌이들은 더러운 움막과 한 그릇의 죽으로 연명하는 가축만도 못한 삶을 계속했을 것이다. 천명관은 말한다. 인간 세계의 한 편에는 강압하고 착취하려는 세력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그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고. 그 저항이 실패로 귀결되더라도 본인은 그 실패에 더 관심을 두고 응원을 보낸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은 괴롭지만, 언젠가 바꿀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고 나아가기에 어쩌면 ‘거리의 인생’도 살 만한 것일지 모르겠다. 오늘 밤 서울 어느 거리에는 천명관의 ‘운명 찬가(讚歌)’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신승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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