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는 반도체 라인"… 메모리·부품사 상반기 美·中 매출 날았다
삼성전기 89%·이노텍 94%·대덕 84%…가동률 폭등한 반도체 기판
반도체 훈풍은 예상보다 강했다. AI(인공지능) 수요가 전방위로 퍼지면서 그 중심에 선 한국 기업들로 주문이 몰리고 있어서다. 생산라인은 제한된 상태에서 수요만 계속 뛰자 메모리 기업뿐 아니라 기판과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등 부품사들도 실적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18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기, LG이노텍 등은 일제히 반기보고서를 공시하고 상세 매출 규모를 공개했다. 주요 고객사 이름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팔았는지가 드러나는 자리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메모리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지난해보다 올해 가격이 훨씬 더 오르면서 D램과 낸드를 가리지 않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뛰었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매출 305조3729억원, 영업이익 146조7252억원을 거뒀고 SK하이닉스는 매출 131조8950억원, 영업이익 98조1529억원을 기록했다.

가격이 극적으로 뛴 영역은 역시 메모리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상반기에만 209조231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가운데 메모리가 195조6202억원을 차지했다. 지난해 DS부문 전체 매출(130조1282억원)을 반기 만에 훌쩍 넘어선 규모다.
메모리의 상승 폭이 특히 가팔랐다. 지난해 상반기 40조2475억원에서 195조6202억원으로 4.9배 뛰었다. AI 서버 수요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이 급증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웨이퍼 생산능력을 범용 D램에서 HBM으로 대거 돌렸고, 그 여파로 범용 D램 공급이 줄어 오히려 범용 제품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1분기부터 삼성전자의 범용 D램 매출이 HBM 매출을 앞질렀고, 일부 시기에는 범용 D램의 이익률이 HBM보다 4~5배 높은 상황까지 벌어졌다.
HBM3E를 비롯한 메모리 가격이 지난해 3·4분기부터 우상향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올해 D램과 낸드 가격은 상당한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ASP)은 1분기 대비 40% 중반, 낸드는 60% 후반 올랐다. HBM 자체 가격 인상률을 웃도는 수치다.
범용 제품 가격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지난 4월 16달러에서 5월 20달러, 6월 21달러로 두 달 새 31.25% 올랐다. 2016년 6월 집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AI 반도체용 HBM 생산 집중에 따른 범용 D램 품귀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현물 시세는 더 가팔라 이달 초 DDR4 8Gb 평균가가 36.10달러로 고정거래가를 71.9% 웃돌았다. 범용 낸드플래시 128Gb MLC 고정거래가격도 6월 평균 28.82달러로 18개월 연속 상승했다.

수익성 격차는 더 극명하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률은 52.2%였는데, 이 가운데 DS부문이 전체 영업이익의 99.7%를 가져갔다. DX부문은 부품 원가 상승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적자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평균판매가격이 지난해 연간 평균 대비 약 220%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역별 매출은 DS와 DX를 합산해 공시되지만, 그 안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한 대륙이 드러난다. 미주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33조4759억원에서 올해 70조6466억원으로 2배 넘게 늘었고, 아시아·아프리카는 20조8064억원에서 64조6224억원으로 3배 뛰었다. 중국 매출도 28조7918억원에서 88조6004억원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SK하이닉스의 공시는 더 상세하다. 메모리만 판매하는 만큼 D램과 낸드 거래 금액을 재무제표에 나눠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상반기 D램으로 98조9138억원, 낸드로 22조9035억원을 벌었다. 지난해 상반기 D램 30조1801억원, 낸드 5조1077억원과 비교하면 각각 3배, 4배 이상이다.
주요 종속기업 매출도 크게 늘었다. SK하이닉스 아메리카는 지난해 상반기 24조7493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75조4758억원으로, 우시 법인은 6조1842억원에서 28조2985억원으로 뛰었다. SK하이닉스 세미컨덕터 차이나는 2조9083억원에서 3조776억원, 충칭은 4369억원에서 6146억원으로 증가했다. 충칭은 후공정 패키징을 담당해 매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우시 법인 매출이 급증한 배경에는 AI 서버와 HBM에 생산능력이 우선 배분되면서 범용 D램 공급이 빠듯해지고 PC·서버용 D램 가격이 급등한 상황이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에 LPDDR과 낸드 같은 범용·모바일용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데, 중국 서버·PC 업체들이 가격이 더 오르기 전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중화권 매출이 함께 뛰었다. 범용 메모리 시장의 가격 상승과 수급 불균형이 중국발 구매 러시를 부른 셈이다.
중국의 전자제품 수요 회복도 한몫했다. LPDDR과 낸드, 이미지센서,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 모바일용과 서버용을 가리지 않고 중국에서 팔려나갔다. 여기에 미국이 대중 규제를 1년 단위 허가 갱신 방식으로 바꾸면서 중국 고객사의 불안이 커진 점도 양사 생산라인을 바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대덕전자로 대표되는 부품사 실적도 함께 뛰었다. 메모리 기업보다 기업 간 거래(B2B) 성격이 강해 고객사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지역별 매출은 공시되는 만큼 어느 시장에서 호조가 이어지는지는 파악할 수 있다.
삼성전기는 중국 법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MLCC와 기판, 카메라모듈 사업부가 모두 진출해 있는 중국법인은 올해 상반기 2조5549억원을 벌었다. 지난해 상반기 2조1047억원보다 4502억원 늘어난 수치다. 동남아도 1조2386억원에서 1조6207억원으로, 미주는 1980억원에서 2667억원으로 올랐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이 MLCC를 비롯한 삼성전기 제품에 불을 붙였다. 공급 부족이 심해지자 삼성전기는 이달 1일 출하분부터 중국 선전법인을 통해 공급하는 MLCC 전 품목 가격을 30% 인상했다. 회사는 고객사에 보낸 안내문에서 생산 효율 개선과 라인 확대에 투자했지만 공급망 압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수급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기의 6월 말 기준 수주출하비율(BB율)은 1.31로 코로나1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주문이 출하량보다 31% 많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무라타는 1.30, 다이요유덴은 1.25였다. 주요 MLCC 재고는 30일 미만으로 떨어졌다. 삼성전기의 6월 MLCC 출하량은 약 980억개로 무라타(1400억개)에 이어 2위이며, 상위 3개사의 월간 출하량은 최근 5년 내 최고 수준이다.

LG이노텍도 중국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852억원가량이던 중국 매출은 올해 913억원으로 증가했다. 패키지솔루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931억원·514억원에서 9355억원·996억원으로 오른 만큼 중국 기판 수요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표 인쇄회로기판(PCB) 기업인 대덕전자 역시 중국과 미국 매출이 크게 늘었다. 메모리 패키지 기판과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를 만드는 대덕전자는 지난해 미국에서 633억원, 중국에서 926억원을 벌었으나 올해는 각각 960억원과 1444억원을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대덕전자의 매출 구성은 로컬 수출 52%, 직접 수출 45%로 약 97%가 수출과 연계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