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맞고도 웃던 열두 살 악바리, '금녀의 철옹성'에 금을 냈다[Story]

강예진 2026. 8. 1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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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Story'는 곱씹을만한 이야기를 내러티브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삶에 대해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아빠, 근데 나 오늘 공 맞고 안 울었다고 감독님한테 칭찬 받았다? 근데 야구선수가 총 맞은 것도 아니고 공에 맞은 건데."

전국소년체전 요강 상 야구는 '남자부' 종목만 있어서 여성 선수는 참가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1995년, 당시 중학생이던 안향미가 대한야구협회(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첫 여성 야구 선수로 등록하며 문을 열었고 이후 30년 간 국내 대학리그 첫 여자 선수 김라경, 리틀야구 여성 최연소 홈런의 박민서 등이 바늘구멍 만한 가능성을 살려내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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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석초 야구 선수 최서윤의 도전기>
'여성 불가' 소년체전엔 못 나갔지만
U-12 국가대표엔 여성 최초 선발
편집자주
한국일보 'Story'는 곱씹을만한 이야기를 내러티브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삶에 대해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U-12 대한민국 야구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최서윤(광주서석초·12)이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대덕야구장에서 열린 홍은중과 연습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서기 전 스윙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5일 경기 고양시 장항야구장에서 열린 대치중과의 연습경기에서 안타를 친 뒤 2루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세이프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광주는 야구의 도시다. 이곳이 연고지인 '타이거즈'는 한국프로야구 출범 후 45년 동안 열 두번이나 우승했다. 지금껏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한국인 30명 중 7명이 광주 출신이다. 광주 시민들은 140여g짜리 작은 공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 이 도시에 야구사(史)에 없던 또다른 이야기를 쓰는 열두 살 아이가 있다. 최서윤의 이야기다.


'야구의 도시' 광주의 여자 선수 이야기

광주서석초등학교 야구부 주장 최서윤이 지난달 28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야구부 휴게실에서 훈련을 앞두고 썬크림을 바르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달 28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야구부 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야구부원들과 구호을 외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모자 아래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벌써 무겁다. 손으로 콧등의 땀방울을 훔칠 땐 텁텁한 흙냄새가 풍겨온다. 훈련 전 워밍업을 주도하는 건 주장인 6학년 최서윤의 몫이다. 서윤의 호령에 따라 부원들은 운동장 양 끝을 오가며 몸을 푼다. 앞줄 부원의 엉성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끝까지 뛰어!" 7월의 뜨거운 볕과 쏟아지는 매미 울음 사이로 서윤의 목소리가 운동장에 쨍하고 울렸다.

광주를 가로지르는 광주천은 영산강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져 흘러 나간다.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KIA 타이거즈 홈구장인 챔피언스필드가 나오고, 조금 더 들어가면 수많은 야구 스타를 배출한 광주제일고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더 깊숙이 올라가면 서석초등학교에 다다른다. 메이저리거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G 트윈스 감독 염경엽의 모교이기도 한 이 학교 야구부엔 저마다의 꿈을 품은 32명의 부원들이 그라운드에서 하얀 공을 쫓고 있다. 서윤도 그 중 한 명이다. 유일한 여성 부원이라는 게 다를 뿐.


유니폼 입으면 여자 선수가 아닌 그냥 야구 선수

최서윤이 지난달 28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강당에서 단거리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지난달 28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야구부 실내훈련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지난달 28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운동장에서 투구 연습을 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취미반 야구가 있다는데, 서윤이 한번 해볼래?”

시작은 특별할 게 없었다. 유치원생 둘째를 돌보느라 첫째 딸과 이전처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엄마 임수빈(39)은 4학년 겨울 방학을 맞은 서윤에게 서석초에 생긴 야구 취미반을 권했다. 그저 가볍게 즐기는 게 전부일 터였다.

부모의 생각과 달리 딸은 야구에 푹 빠졌다. 태권도 선수였던 엄마, 아빠를 닮아서인지 서윤은 운동 능력이 남달랐다. 태권도는 물론이고 테니스, 킥복싱, 축구까지 여러 종목을 섭렵했는데 야구는 그 중에서도 특별했다. 공이 배트의 스위트스팟(정중앙)에 맞았을 때 손맛도, 글러브 포켓에 들어온 공이 착 감기는 느낌도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어둑해질 때까지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를 붙잡고 밤 늦도록 캐치볼을 이어갔다.

서석초 야구부를 2009년부터 20년 가까이 지도해온 양윤희(46) 감독의 눈에도 서윤은 단연 돋보였다. 서른 명 남짓한 남자아이들과 비교해 타격, 주루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났다. 이정후, 한준수(KIA 타이거즈), 김윤식(LG 트윈스) 등 프로 선수들의 어린 시절을 지켜봤던 경험 많은 지도자인 터라 더 확신이 들었다. 그럼에도 야구부 가입을 쉽게 권하긴 어려웠다. 여성 선수가 초교 졸업 후 야구를 계속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체육인 선배인 엄마도 가늠할 수 있었다. 딸이 걸으려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 지를. 수빈은 답답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성인 때까지 전문적으로 운동하려면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자야구는 그만한 인프라가 없으니…"

아내가 두 달 간 딸의 진로를 두고 끙끙 앓아왔던 사실을 안 최혁준(39)은 딸에게 냉정히 말했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너는 여자 선수가 아냐. 남자 아이들과 똑같은 야구 선수인 거야. 책임감 없이 조금 해볼 거면 시작도 하지 마."

하지만 서윤은 이미 마음 속으로 야구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원하는 게 있을 때 논리적으로 설명을 잘 하는 아이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야구를 그냥 꼭 하고 싶다는 이유 뿐이었다. 부모는 딸의 꿈을 말릴 방법을 끝내 찾지 못했다. 희미한 연둣빛 나뭇잎들이 제 색을 찾아 짙어가던 지난해 5월, 서윤은 서석초 야구부에 발을 들였다.


여자라고 배려해줄까 봐 마음 졸이던 아이

서석초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지난달 27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27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운동장에서 야구부원들과 코치와 미팅을 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가운데)이 지난달 27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에서 야구부원들과 운동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지난달 27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야구부 휴게실에서 야구부원들과 간식을 먹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퍽!”

서윤의 첫 경기, 첫 출루는 몸에 맞는 공이었다. 팔뚝이 얼얼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배트를 던져두고 1루를 향해 뛰었다. 양 감독은 울지도 않고 의연한 제자가 걱정됐는지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윤은 집에 와 아빠에게 그날 일을 설명했다.

“아빠, 근데 나 오늘 공 맞고 안 울었다고 감독님한테 칭찬 받았다? 근데 야구선수가 총 맞은 것도 아니고 공에 맞은 건데.”

어른들은 서윤이 야구를 쉬이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만큼 독하게 운동했다. 코치진이 혹여나 여자라 배려하려고 적당히 훈련시킬까봐 마음 졸이던 아이였다. 김윤호(28) 수석코치도 '그 장면'을 본 이후 서윤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지난해 8월 충북 보은에서 전국 하계 초등야구대회가 열렸어요. 무더웠죠. 첫 경기를 마친 뒤 펑고 훈련을 해서 야구부원들이 땡볕 아래에 한시간 넘게 서 있었거든요? 다른 아이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거나 물을 마시고 오겠다고 했는데 서윤이는 달랐어요. 어디 가지도 않고 힘든 내색없이 끝까지 훈련에 집중했죠. 그걸 보고는 '이 녀석은 뭐가 돼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윤이의 열정과 실력은 서석초 야구부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여성 선수라 특이하게만 봤던 아이들은 작년 11월 투표를 통해 서윤에게 주장 완장을 채워줬다. 24표 중 16표를 받았다. 서윤은 그렇게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나갈 수 없다는 소년체전

최서윤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대덕야구장에서 열린 홍은중과 연습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머리를 묶고 있다. 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대덕야구장에서 열린 홍은중과 연습경기에서 3루를 지나 홈으로 달리고 있다. 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지난달 27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 운동장에서 진행된 훈련에서 피트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대덕야구장에서 진행된 훈련중에 땀을 닦고 있다. 박시몬 기자
최서윤(가운데)이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대덕야구장에서 열린 훈련에 참석해 대표팀 선수들과 덕아웃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아직 쌀쌀함이 느껴지던 지난 3월, 펑고 훈련을 끝마친 서윤의 가쁜 숨이 공기 속에 하얗게 번졌다. 김 코치는 어느 틈에 서윤 옆에 섰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서윤아, 너…소년체전 못 나간다."

모자 챙 아래 서윤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번졌다. 김 코치는 하는 수 없이 비수 같은 말을 다시 했다. "장난치는 게 아니고 진짜야."

이유는 단순했다. 전국소년체전 요강 상 야구는 '남자부' 종목만 있어서 여성 선수는 참가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1년 내 굵은땀을 쏟은 제자의 '출전 불가' 통보를 받아든 양 감독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대한체육회와 광주시교육청 등에 따져 물었지만 "남자부 경기에 여성이 참가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서윤은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국내 최고의 유소년 대회에 나갈 길이 없었다. 열 두 살 여자 아이의 꿈이 너무 일찍 벽에 막힌 것이다.

그날 서윤은 아무 말 없이 배트로 서늘한 바람을 마흔 번쯤 더 갈라쳤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엄마 얼굴을 마주 보고서야 눈물은 왈칵 쏟아졌다. 운동이 힘들다는 소리를 한 번 안하던 딸은 크게 낙담해 말했다.

“나 여기서 야구 안 할래. 경기마다 다 나갈 수 있는 데 있으면 거기서 야구할래.”

며칠 뒤 아빠는 풀 죽은 딸을 위해 "바람도 쐴 겸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다. 경기도 화성에서 여자야구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야구장에 도착한 서윤과 혁준, 수빈은 펜스 옆에 매달려 경기장을 넘어다 봤다. 서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본 여자야구여서다. 자신과 같은 여성들이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고, 베이스를 달렸다. 꺾였던 의욕에 다시 불이 붙는 듯 했다.

그때 짧은 머리의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구 선수 출신인 임혜진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이었다. 서윤의 사연을 들은 임 회장과 연맹 측은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난 야구장 한 켠을 내줬다.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자 야구 국가대표 에이스인 김라경(26)이 서윤에게 다가와 캐치볼을 청했다. 경기장에는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 진출을 확정한 김현아(26)도 있었다. 김라경이 서윤에게 말했다.

"야구가 재미 있어? 네가 좋아하는 일이면 끝까지 해봐.”


최서윤이 지난달 28일 전남광주 동구 서석초에서 친구와 인사한 뒤 복도를 지나고 있다. 전남광주=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5일 경기 고양시 실내훈련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박시몬 기자
최서윤이 5일 경기 고양시 장항야구장에서 열린 대치중과 연습경기에서 타석에 들어가기 전 스윙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서윤은 다시 방망이를 쥐었다. 대회가 소년체전만 있는 건 아니니까. 운동장에서 방망이를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고, 공에 무게를 실어 힘껏 던졌다. 야구부에 입단한지 꼬박 1년을 채운 지난 6월. 기적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김 코치가 경북 울진에서는 열리는 유소년 야구대회로 향하는 원정버스 안에서 서윤에게 말했다.

"너 U-12(12세 이하) 아시아유소년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에 뽑혔대."

여성 선수가 뽑힌 건 U-12 대표팀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6월 어느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가 찾아와 서윤과 또래 남학생을 불러 테스트를 봤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다행히 국제대회에는 여성 불가 조항이 없었다. 원정 숙소에 도착해 엄마의 손을 잡고 팡팡 뛸 만큼 기뻐하는 서윤을 보며 수빈은 함께 웃었다.

서윤은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대회에 나가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다. 첫 경기인 태국전과 홍콩전에 선발 출전해 안타, 득점, 타점, 도루 등 최초의 기록을 써갔다. 특히 대회 전 목표였던 도루 성공률 100%도 달성했다. 공이 몸에 맞아 출루할 땐 환히 웃었다. 서윤과 국가대표 동료들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른들은 없다고 한 길…제가 처음 가면 멋있지 않을까요?

최서윤이 지난달 4일 광주 자택에서 박주아 선수에게 선물 받은 글러브를 낀 채 잠들어 있다. 최서윤 제공

한국 여자야구는 '최초'가 쌓여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1995년, 당시 중학생이던 안향미가 대한야구협회(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첫 여성 야구 선수로 등록하며 문을 열었고 이후 30년 간 국내 대학리그 첫 여자 선수 김라경, 리틀야구 여성 최연소 홈런의 박민서 등이 바늘구멍 만한 가능성을 살려내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일엔 72년 만에 WPBL이 막을 올렸다. 김라경(뉴욕 하이츠)이 소속팀 개막전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리그 첫 투구와 탈삼진을 기록했고 김현아(보스턴 헌터스, 1라운드 전체 4순위), 박주아(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전체 33순위) 등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선배들이 국제적으로 활약했다고 꿈나무에게 기회의 문이 넓어진 건 아니다. 6학년인 서윤에게는 당장 중학교 진학부터가 난관이다. 여자 유소년 야구팀은 전국에 한 곳도 없으니 남성들로 이뤄진 기존 학교 야구부나 베이스볼클럽(BC)에 진학해야 한다. 여성 선수를 받아본 적 없는 학교가 대부분인 탓에 서윤의 입부를 다들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또 어렵게 중·고교에서 학생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고 해도 국내엔 여자야구 실업·프로리그가 없어 졸업 후에 선수 생활을 이어갈 경로가 막혀 있다.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은 소프트볼 선수로 전향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서윤은 여전히 야구를 잘하는 팀에 들어가 지금보다 더 빨리 던지고, 치고, 뛰고 싶다.

길이 없으면 내면 된다. 미국의 대학생 캐서린 스위처는 여성이 마라톤 종목에 참가할 수 없었던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했다. 여성인 걸 알아챈 대회 관계자가 코스로 뛰어들어 강제로 끌어내려 했지만 끝내 완주했다. 스위처가 '여성은 42.195㎞를 뛸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부순 덕에 1971년부터 여성의 도로 마라톤 경주 참가가 공식 허용됐다. 미국의 여성 격투기 선수 론다 로우지는 뛰어난 경기력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UFC(미 종합격투기)에 여성부를 만들어냈다.

최서윤이 5일 경기 고양시 고양실내야구연습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서윤이도 롤모델이 돼가고 있다. 선배의 활약상을 지켜본 서석초의 5학년 여학생 중에는 "서윤 언니처럼 나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학교에 이야기하기도 한다. 서석초 교장은 "서윤이가 골프선수 박세리처럼 어려운 상황을 딛고 개척자의 길을 걷다 보면 야구에서도 '세리 키즈'(박세리를 좋아해 골프에 뛰어든 어린 세대)처럼 '서윤 키즈'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어른들은 이 아이가 택한 길을 보며 여전히 걱정한다. 서윤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여자야구 선수는 길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럼 제가 첫 번째가 되면 멋있지 않을까요”

대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서윤이는 새삼스럽게 스파이크 끈을 고쳐 맨다. 서윤의 목표는 한국, 미국, 일본 3개국 프로리그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설령 받아주지 않더라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전남광주·고양=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전남광주·고양= 박시몬 기자 sim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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