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비는 그쳤지만 삶은 아직 뻘밭에...
옥포동·고현동 등 폭격 맞은 듯 처참
도로 찢기고 상가 뻘밭...“이런 난리 처음”
경남도,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건의

18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옥포동 일대. 지난 17일 새벽 쏟아진 ‘극한 호우’가 할퀴고 간 현장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돼 있었다. 아스팔트는 종이처럼 찢겨 나가거나, 움푹 파여 포트홀이 생겼다.
사람이 다니던 인도는 흙이 쓸려가며 푹 꺼지거나 보도블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온 듯한 차량들은 곳곳이 부서진 채 거리에 방치돼 있었다. 한 주민은 “거제 전체가 침수 피해가 크다 보니 견인차도 하세월”이라고 했다.

일대 상가는 멀쩡한 가게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상인들은 이날 아침부터 가게로 나와 진흙 범벅이 된 가재도구와 집기를 밖으로 빼내 씻고 있었다. 하나라도 멀쩡한 것을 건지려고 하지만, 대부분 쓰레기봉투나 대형 자루에 담겼다.
옥포동에서만 40년 넘게 사진관을 운영해 온 이종욱(73)씨의 가게도 흙탕물에 잠겨 쑥대밭이 됐다. 가게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다. 흰색 바닥 타일은 진흙 범벅이 된 상태였다. 호스로 바닥에 물을 뿌려도 계속해서 진흙이 묻어 나왔다.
이씨는 “밤사이 물이 성인 무릎 위까지 차올랐다”며 “40년 있으면서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고 했다. 가게 안 인화지 등 물에 젖은 물건을 참담하게 보던 그는 “쓸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가 카메라와 렌즈는 분해해 집에서 말리고 있다고 한다.

고현천이 범람한 거제 최대 상권 고현동 일대 상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하가 있는 상가 건물들은 여전히 물에 잠겨 배수 펌프와 소방차 십여 대가 동원돼 물을 빼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연휴가 끝나 영업을 해야 할 한 은행 지점은 ‘기록적 폭우로 인한 침수 사고로 복구 중’이라며 영업 중지 현수막을 내걸었다.
고현동 일대 상가 1층에 입점한 약국, 옷·화장품·편의점 등 상점 여러 곳이 침수 피해를 입고 영업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 옷 가게 점원 서모(23)씨는 “젖은 옷을 팔 수 없어 따로 빼내고 있는데 멀쩡한 게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현동에서 저소득 가정을 돕는 기부·나눔 마켓을 운영 중인 조영임(57)씨도 피해를 봤다. 조씨는 가게 앞에 물에 젖은 물건을 하나씩 빼내고 있었다. 옷, 인형, 장난감 등 물건 대다수가 진흙 범벅이 된 채 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씨는 미련 없이 자루에 담았다.

가게 안에는 여전히 밖으로 빼내야 할 물품들이 가득했다. 조씨는 “기부품을 판 수익금으로 저소득 가정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며 “물에 젖어 어쩔 수 없이 버리고 있다. 어쩌겠는가, 자연이 이렇게 센 걸”이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고립됐던 일운면 회진마을도 처참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집 안에 있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밖으로 빼내거나, 빗자루 등으로 진흙을 쓸어내고 있었다. 강성덕 이장은 “폭우에 만조까지 겹쳐 순식간에 물이 차 올라 손쓸 틈도 없었다”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업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후 3시 기준 이번 폭우에 따른 인명 피해는 사망 1명, 부상 3명이다.
도로가 유실되거나 파손돼 복구 중이거나 완료된 게 39건이다. 하천 호안이 유실되는 피해도 21건 접수됐다. 상수관로 파손 등으로 거제와 통영 5200여 가구에 단수가 됐다. 일부 복구됐지만, 여전히 물 공급이 어려운 가구가 많다. 경남도는 원인 파악과 함께 주민 불편을 우려해 생수를 지원하고 있다.
거제 장승포와 고현, 통영 산양읍 등 3466가구에 정전 피해가 발생했다. 여전히 복구 중이다.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등 국가유산 5곳도 이번 폭우에 피해를 입었다. 이 밖에 농경지 364ha, 육상 양식장 2곳, 축산 농가 3곳도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도로와 하천 둔치 주차장 등 240곳의 통행은 여전히 제한된 상태다.
산사태 등으로 귀가하지 못한 이재민 145가구 245명은 여전히 인근 학교와 복지회관 등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피소에 있는 최경순(62)씨는 “바닥이 딱딱한 데다 많은 사람이 같이 머물다 보니 누워 있으면 골이 울린다”면서 “여기 있는 모두 불편함에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산사태 추가 위험만 없다고 하면 다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며 “일반 시민이 버티기엔 피해가 너무나 크다. 정부와 지자체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경남도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을 통한 피해 조사 및 실사를 거쳐 본격적인 복구에 돌입하기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는 정부에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행정안전부는 응급 복구 특별교부세 20억원을 우선 지원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이날 오전 집중호우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재난 발생 후 대응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평상시부터 극한 상황을 가정해 조기·응급·복구 대책을 사전에 준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피해 공동주택의 철저한 안전 진단과 이재민 장기화에 대비한 노약자·영유아·장애인 긴급 구호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지난 17일 새벽 4시 30분쯤 거제시 옥포동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인근 아파트를 덮쳤다. 토사가 유리창을 깨고 밀려들어 1·2층 8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1층의 한 가구에서는 20대 남성이 흙더미에 매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또 다른 주민 2명도 골절 등 부상을 입었다.
거제시는 18일 이 산사태 현장에 대해 전문 민간 업체에 의뢰해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이날 전문가 5명이 1시간 20분 정도 아파트를 덮친 뒷산의 추가 산사태 가능성 등을 살폈다.
점검 결과 우선 추가 산사태가 나더라도 아파트 옹벽 부분 붕괴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 나왔다. 현장을 본 전문가는 “추가 산사태 가능성은 적고, 무너지더라도 흙의 양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직접적인 산사태 피해를 본 104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도 냈다.

거제시는 이번 안전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104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 주민에 대해서는 귀가 조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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