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빼고 다시 쓰는 결혼, 신용등급 0점 노라의 반란

아르떼 2026. 8. 1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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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결혼이라는 '경제적 종속'

크리스마스이브, 노라 헬메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선다. 두 팔 가득 선물 꾸러미를 안고, 남편 몰래 마카롱을 하나 훔쳐 먹는 장난기 많은 여자다. 남편 토르발은 곧 은행장으로 승진한다. 살림은 넉넉해질 것이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넉넉히 샀다. 겉보기엔 완벽한 가정이다. 그런데 노라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몇 해 전, 남편이 중병에 걸려 요양을 떠나야 했을 때, 그녀는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고리대금업자 크로그스타드에게 큰돈을 빌렸다. 여자 혼자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던 시절이었다. 노라는 그 빚을 남편 몰래, 삯바느질과 생활비를 아껴가며 조금씩 갚아왔다. 남편은 아내가 그저 사치를 좋아하는 철부지 다람쥐인 줄로만 알았다.

크로그스타드가 은행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노라를 협박한다.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위조 서명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것이다. 노라는 남편이 진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위해 모든 비난을 대신 짊어져 줄 거라 믿었다. 극 중에서 그녀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자신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보여주는 기적. 하지만 편지가 토르발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난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며 그는 불같이 화를 낸다. 아내가 자신을 살리려 저지른 일이었는데도, 토르발이 먼저 걱정한 것은 아내의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체면이었다. 그러다 위협이 무마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다정한 남편으로 돌아온다. "다 지나간 일이야, 우리 예쁜 종달새."

바로 그 순간, 노라는 8년의 결혼 생활 동안 자신이 남편의 '인형'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인형에서 남편의 인형으로 옮겨졌을 뿐, 한 번도 독립된 인간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토르발이 뒤늦게 무릎을 꿇고 매달려도 소용없다. 노라는 담담히 대답한다. "우리는 진지한 대화를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어요." 그러고는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그녀가 등 뒤로 닫은 문소리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크게 울린 문소리"로 불리게 된다.

1879년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초연한 '인형의 집'. / 출처. Dansk Film & Teater(덴마크 영화·연극 아카이브)

1879년 헨리크 입센이 이 희곡을 처음 냈을 때, 유럽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출간: 노르웨이, 초연: 덴마크). 아내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는 결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일부 극장은 입센에게 결말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입센은 결국 독일 공연을 위해 노라가 아이들 방문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대안 결말을 마지못해 써주기도 했다. "나는 그 야만적인 결말을 내 작품에 대한 폭력이라 여긴다"고 훗날 그는 밝혔다. 당대 평론가들은 노라를 두고 "이기적인 어머니", "타락한 신여성"이라 비난했고, 어떤 극장은 아예 이 작품의 상연 자체를 거부했다. 그만큼 이 작품이 건드린 신경은 예민했다. 재미있게도 정작 입센 자신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작품이 여성해방보다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라가 마주한 억압의 실체가 다름 아닌 경제적 무능력이었다는 사실은, 의도했든 아니든 이 작품을 세계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 반열에 올려놓았다.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표지. / 출처. 민음사

여기서 지난 글에서 다룬 엥겔스의 통찰을 다시 꺼내 볼 만하다. 그는 일부일처제가 사랑이 아니라 사유재산 상속의 필요에서 생겨났다고 봤다. 공교롭게도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출간한 해가 1884년이니, <인형의 집>이 무대에 오른 지 불과 5년 뒤다. 유럽 지성사의 같은 시기에, 한쪽에서는 철학자가 이론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극작가가 무대로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인형의 집>은 바로 그 경제적 종속의 실체를 무대 위에 정확히 옮겨놓은 작품이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는 '커버처(coverture)'라는 법 원리가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아내의 법적 인격은 남편의 인격에 흡수되어 사라진다는 개념이다. 아내는 재산을 소유할 수도, 계약을 맺을 수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노라가 남편 몰래 돈을 빌리려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노르웨이가 기혼여성의 독자적 재산권을 법으로 인정한 것은 이 작품이 나오고도 한참 뒤인 1888년이었다. 극이 현실보다 9년이나 앞서 있었던 셈이다.

2008년, 리 브루어가 연출한 '인형의 집' 공연 장면. / 출처. LG아트센터

노라의 비극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녀에게는 신용(credit)이 없었다. 은행이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은 남편이었다. 결혼 자체가 여성에게는 일종의 대체 신용시장이었던 셈이다. 남편의 사회적 신용, 남편의 소득, 남편의 자산이 곧 아내의 신용등급이었던 것이다. 결혼이 감정의 결합이기 이전에 여성에게 허락된 사실상 유일한 경제적 생존 수단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노라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은 낭만적 해방이 아니라, 아무런 안전망 없이 시장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대 관객들이 그토록 충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 앞에 놓인 미래는 낭만이 아니라 생계의 벼랑이었다. 노라가 문밖으로 나간 뒤 무슨 일을 했을지 상상해 보라. 당시 중산층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정교사나 삯바느질 정도였다. 그녀는 자유를 얻은 대신 계급을 잃을 각오를 한 것이다. 이 결단이 지금까지도 논쟁적인 이유는, 자유와 생존이 서로를 배반하는 순간을 이 작품이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벼랑 끝의 선택이 지금도 반복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이혼 후 여성의 가처분소득이 남성보다 큰 폭으로 줄어드는 현상, 이른바 '이혼의 여성화된 빈곤'은 여러 나라 통계에서 공통으로 확인된다. 경력단절로 노동시장에서의 협상력이 떨어진 상태로 결혼 밖으로 나서야 하는 구조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노라가 마주했던 딜레마와 본질적으로 멀지 않다. 반대로 최근 수십 년간 여성의 대학 진학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면서 만혼과 비혼이 늘어난 흐름을 두고, 어떤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마침내 노라의 문 뒤에 있던 세상, 즉 독자적인 신용과 소득을 갖게 되면서 결혼이라는 대체 시장에 덜 의존하게 된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결혼율이 떨어지는 걸 순전히 세태 탓, 개인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시선이 놓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라가 살던 시대에는 '문을 열고 나가는 자유'조차 없었다면, 지금은 그 자유가 생긴 대신 '애초에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자유'가 새로 생긴 셈이다. 같은 경제 논리가 시대를 건너 정반대의 선택으로 나타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결혼을 감정이 아니라 경제로 읽을 때 보이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2019년,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인형의 집: 파트 2' 공연 장면. / 출처. LG아트센터

물론 노라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어떻게 살았는지, 입센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 침묵이야말로 이 작품이 여전히 논쟁적인 이유다. 노라의 선택을 페미니즘 서사의 원형으로 읽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안전망 없는 결단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경고로 읽을 수도 있다. 실제로 훗날 몇몇 작가들은 "그 뒤 노라는 어떻게 됐을까"를 주제로 속편 격의 소설과 희곡을 써보기도 했는데, 결말은 저마다 갈렸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노라가 재봉사로 자립하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는 결국 빈곤에 시달리다 다시 결혼제도로 돌아온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결혼이 사랑의 언어로만 이야기될 때 우리는 그 절반만 보게 된다. 나머지 절반은 언제나 돈의 언어로, 누가 신용을 가졌고 누가 못 가졌는가의 언어로 쓰여 있었다. 노라의 문소리가 14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크게 들리는 이유다.

이 작품을 경제학의 언어로 가장 정확히 풀어낸 것은 아마르티아 센의 이론일 것이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센은 1987년 논문 "젠더와 협력적 갈등(Gender and Cooperative Conflicts)"에서, 가정이라는 공동체는 협력의 공간인 동시에 은밀한 협상의 공간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 협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결렬 시 처지(breakdown position)'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관계가 깨졌을 때 각자가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는가, 즉 밖으로 나갔을 때의 대안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따라 안에서의 발언권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노라의 결렬 시 처지는 사실상 0에 가까웠다. 독자적 신용도, 소득도, 심지어 법적 인격조차 없었으니, 그녀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이미 진 패였다. 그런 그녀가 그 형편없는 결렬 시 처지를 알면서도 문을 열고 나간 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단순한 낭만적 반란이 아니라, 협상력 제로 상태에서 감행한 가장 비합리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조원경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