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 찾기 위해 계급장도 포기했다" [우리는 유해발굴감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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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전투가 있다.
"기자님, 유해발굴감식단 신진욱 주무관입니다. 설악산으로 오세요. 오세암에서 뵙죠. 거기서 마등봉까지 갈 겁니다. 출입금지구역이지만 국립공원 측에 허가받아 놨어요.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설악산은 유해발굴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산"이라는 신 주무관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조사팀의 신진욱 주무관(46, 팀장), 최응규 조사관(48), 하종찬 중사(3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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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전투가 있다. 설악산 해발 1,500m 고지, 총알이 빗발쳤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 설악산에는 지금도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해가 수없이 묻혀 있다. 우리가 웃으며 설악을 걷는 동안에도 발아래 이름조차 찾지 못한 이들이 묻혀 있다.
"기자님, 유해발굴감식단 신진욱 주무관입니다. 설악산으로 오세요. 오세암에서 뵙죠. 거기서 마등봉까지 갈 겁니다. 출입금지구역이지만 국립공원 측에 허가받아 놨어요.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강원도 양구와 인제를 잇는 800고지 개골령에서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설악산으로 오라는 말에 내심 김이 샜다. 월간<산>에 이미 수백 번도 더 소개된 산이 아닌가. 수목이 우거지고 길은 지워진 동부 전선의 산악 고지를 취재할 생각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유명한 설악산으로 오라니. "설악산은 유해발굴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산"이라는 신 주무관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백담사에서 2시간을 걸어 오세암에 도착하자 꾀죄죄한 얼굴의 세 남자가 다가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조사팀의 신진욱 주무관(46, 팀장), 최응규 조사관(48), 하종찬 중사(33)다. 오세암에서 하룻밤 묵었다는 이들은 간밤에 보일러실에서 발생한 불을 끄느라고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제복을 갖춰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군인이었다. 여느 군인과 다른 점이라면 조끼에 소총과 단검 대신 지뢰탐지기와 호미를 달고 있다는 것. 블랙다이아몬드·머렐·K2 로고가 적힌 등산스틱에도 눈길이 갔다.

"저희는 3인 1조로 움직입니다. 언제 지뢰를 밟을지 모르고 조난 위험도 있으니까요. 군무원 2명에 군인 1명으로 구성됩니다. 수도권, 강원도, 충청·경상·전라로 나뉘어 총 세 팀이 활동하는데, 저희는 강원도를 맡고 있습니다."
그 넓은 강원도를 단 세 명이서 담당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6.25전쟁 대부분의 전투가 산악 지역에서 벌어졌음을 감안하면,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내기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보통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에 닷새 동안 산을 탄다고 했다. 길도 없는 산을.
등산객이 쭈그려 앉다가 두개골 부서져
"많고 많은 곳 중에 하필이면 설악산이라 좀 의아했어요."
오세암 경내를 벗어나자마자 취재 대상지를 바꾼 이유부터 물었다.
"그래서 부른 겁니다. 아직도 수많은 전사자 유해가 설악산에 묻혀 있거든요. 거의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등산객이 볼일을 보다가 무언가 밟히는 소리가 들려서 발아래를 봤더니 전사자 두개골이 부서져 있었다는 둥 웃지 못할 일화들이 들려올 뿐입니다."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더 지났는데도 이토록 발굴 작업이 더딘 이유가 궁금했다. DMZ 접경 지역도 아닌, 국가의 손길이 닿는 국립공원에서 말이다.
"자연공원법 때문입니다. 산을 보존하는 자연공원법은 영구히 지속되겠지만, 유해발굴은 한시적인 작업입니다. 우선순위를 따지면 유해발굴이 아닐까요?"
산악지대라 포크레인이 올라올 수도 없을뿐더러 굴착기를 동원하면 유해가 훼손될 수 있어 유해발굴은 일일이 삽으로 퍼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설악산은 전쟁을 통해 쟁취한 땅입니다. 그전까진 38선 이북의 북한 땅이었죠. 조금 이기적으로 말해 볼게요.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보다 설악산의 보존이 중요한가요? 우리가 이 아름다운 설악산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분들의 희생 덕에 있는 건데. 그들의 피와 목숨이 없었다면 설악산은 북한 땅이었을 겁니다."
유해 매장 장소를 찾아내더라도 행정관서와 토지소유주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국유단의 큰 과제다. 국유단은 최대한 법을 따른다. 잡목이어서 베도 괜찮다고 하면 베고, 옮겨 심었다가 제자리에 다시 심으라고 하면 그렇게 한다. 정말로 희귀종만 아니라면 유해발굴을 허가해줘야 한다는 게 중론인데, 법의 허들이 높고 책임 소재 문제 때문에 다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고 한다. 그나마 사유지는 장뇌삼을 재배하거나 송이가 나오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발굴을 허락해 주는 편이다.

"그래도 많이들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국회의원님들께서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투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웃음)"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현재까지 식별된 지역으로 대청, 중청, 상봉, 신선봉, 오색, 감투봉, 안산, 마등령, 저항령이 있습니다. 저항령에서 89구, 대청에서 1구, 상봉에서 80구, 신선봉에서 66구 발굴됐습니다. 이 중 다섯 분의 유해가 신원 확인되어 봉환됐습니다.영시암 스님 말씀으로는, 옛 스님들께서 설악산에 유해가 많아서 일단 보이는 유해만 수습해 화장하고 천도재를 지내드렸다고 합니다. 중청 일대에 공군 레이더를 설치할 때 그렇게 유해가 많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저항령低項嶺은 원래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나,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국군은 적군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했다. 총성은 사라지고 없지만, 평화로운 풍경과 이질감이 들 정도로 낯선 이름이 시간을 건너 오늘에 닿고 있었다. 그런데 발굴된 유해라고 해서 모두 전쟁터에서 죽은 이들의 것일까. 옛날 조상의 유골일 수도 있고, 최근에 실종된 일반인 시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경치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요. 명확한 전사戰史(전쟁 당시 기록한 자료)와 실제 전투에 참여했던 참전용사의 증언이 있고, 과거 데이터를 종합해 몇 명의 사상자가 나왔는지 조사하기 때문에 전투지역에서 민간인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요."
"발굴했는데 유해가 안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포기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거죠. 가령 저항령에서 수백 명의 국군 전사자가 나왔다고 적혀 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럼 뭔가 잘못된 거죠. 전사가 잘못 기록됐거나, 전사에는 설악산 저항령이라 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금강산 저항령을 설악산 저항령으로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요."
유해발굴은 문화재 발굴과 다르다
국유단은 2000년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출범했다. "유해들이 아직 있겠냐" 하며 3년짜리 한시 사업으로 시작했는데 격전지에서 유해들이 마구 나오는 것이었다. 특히 첫 발굴지인 경북 칠곡 다부동에서 고故최승갑 일병의 유해가 나왔는데, 부인은 유해와 함께 수습된 호루라기를 보더니 "남편이 휴가 때 가져간 것"이라며 통곡했다. 이 일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다. 결국 "다시 한 번 봐야 되는 거 아니냐" 해서 한 차례 연장 끝에 2007년 국방부 산하 유해발굴감식단이 정식 출범했다.

국유단은 조사과, 발굴과, 감식과, 유전자분석과, 유가족관리과가 분업한다. 조사과가 발굴 지점 찾으면, 발굴과가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과가 전사자 여부를 식별한 뒤, 유전자분석과가 DNA를 분석해, 유가족관리과가 유가족의 소재를 찾아 가족관계를 확인한다. 발굴도 발굴이지만 유가족을 찾는 게 어려운 상황. 애써 찾아드려도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피하는 경우도 있다.
발굴팀의 미션은 '한 분도 빠짐없이' 발굴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간 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어'라는 각오다. 한편 조사팀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명확한 전사에 대한 이해와 명확한 발굴 지점 선정"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명확함'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들어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 지명에 맞춰서 조사를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매봉'이 많잖아요. 수많은 매봉 중에는 전투 지역도 많아요. 전라도였다가 충청도로 편입된 금산처럼 행정구역이 바뀐 지역들이 많죠.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지도는 지금과 좌표체계가 달라요. 고지도와 현지도를 비교해야 합니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지형이 바뀌었다. 유해발굴이 시간과의 싸움인 이유다. 전투현장은 훼손되었고, 그때의 중요한 도로와 지금의 중요한 도로가 다르다. 일본 지도에서 시작해 미군 공병이 새로운 측지를 통해 보완한 지도를 거쳐, 현재는 세계지구좌표시스템WGS84을 사용한다.

"유해발굴은 문화재 발굴과 다른가요?"
"문화재 발굴에서 전투 배치를 생각하진 않죠. 국유단에 군인 출신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했을 때 가상의 전투 배치를 해야 해요. '소대·중대·대대급 규모일 때 어떻게 병력을 배치했을 것이고, 적은 어느 방향으로 공격해 왔을 것이다' 식으로요. 전술적 식견이 있어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발굴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장교 출신 군무원, 산 타는 공군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등령에 다다랐다.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세 남자는 마주 오는 등산객마다 유해발굴감식 사업 내용과, 유해 소재 제보 및 유가족 DNA 채취 문의번호인 "1577-5625(오! 육이오)"를 끊임없이 홍보했다. 옆에서 보기에 그 외침은 수요 없는 공급처럼 보였다. 등산객들은 "좋은 일 하시네요"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숨 쉬기도 버거운데 왜 이토록 열심인지 묻자 "홍보도 우리의 중요한 임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들이 모는 SUV 차량에도 '6.25 전사자의 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스티커가 래핑돼 있다고 했다. 서울 현충원에 있는 본부를 떠나 주 5일을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동하는 모든 동선이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는 셈이다.
워낙 이동이 많다 보니 기름은 출장지 인근 부대의 협조를 받아 보충하고, 잠은 읍내 모텔이나 군 관사에서 잔다. 최근 지원율이 30:1에 달할 만큼 관심이 높지만, 이런 역마 낀 생활을 못 버티고 그만 두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신진욱 주무관과 최응규 조사관은 예외였다.
최응규 조사관은 원래 장교였다. 2007년 중대장 시절 유해발굴 TF에 참여해 경기도 연천 금굴산에서 형체가 완전한 유해를 발굴한 경험이 있다. 당시 숭고한 사업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군 특성상 순환 보직을 거쳐야 했다. 그러다 유해발굴장교 공석이 생겨 지원했고, 임무가 끝나자 23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다들 이해 못 했죠. 봉급 차이도 나고요. 지금은 계급장 없이 임무만 갖고 하는 겁니다. 제일 후회되는 건 역시 급여죠. 돈을 목적으로만 한다면 절대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고귀함이오."
이어지는 말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20대 중반 소위 때 결혼했어요. 군인 되면 오지 전전하느라 결혼도 못 하는 줄 알고 서둘렀죠. 아이들이 다 커준 덕분에 전역 후 마음 편히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조사팀에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샤워하는데 욕조에 때 같은 게 후드득 떨어지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전부 진드기였어요."
고려대 유전공학과를 나온 그는 학사장교를 거쳐 본인의 전공을 따라 국유단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설악산 신선봉과 상봉이오. 구름을 즈려 밟고 갔으니까요. 정상에 올랐을 때는 바다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경치를 보며 다닐 겨를이 없었는데, 그날은 유해도 찾았겠다, 경치라는 걸 처음 즐겨봤네요. (웃음)"
나이는 최 조사관보다 아래지만 팀장을 맡고 있는 신진욱 주무관도 장교 출신이다. 그 또한 일찍 결혼해 첫째 아이가 벌써 대학생이다. 소령 전역 후 잠시 민간 회사에 몸담기도 했으나, 사명감을 잊지 못하고 2014년부터 국유단에 합류했다.
가장 궁금한 건 하종찬 중사였다. 그는 공군이다. 공군인데 산을 탄다.
"국유단은 국방부 직할부대입니다. 공군과 해군이 발굴사업은 하지 않지만, 유해를 발굴하고 유가족을 찾는 임무는 모든 군의 임무입니다. 진급 후 인사교류 시기가 되어 '서울 현충원으로 가라' 해서 왔더니 국유단이었습니다. (웃음) 한마디로 낚인 겁니다. 알고 보니 전임자가 버티지 못하고 나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안 힘든 일 없지 않습니까. 공군 전체를 통틀어 한 명뿐이라는 자부심도 있지 말입니다."
두 베테랑과 달리 조사팀에 배치된 지 1년이 채 안 된 하 중사는 30분에 한 번씩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휴식 타이밍은 전적으로 하 중사의 체력에 맞춰 결정됐다. 팀에서 유일한 미혼인 하 중사를 보던 신 주무관이 말했다.
"친구도 못 만나, 애인도 못 만나. 젊은 친구들한테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주무관님은 외롭지 않으세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집에 있는 가족들이 늘 보고 싶죠. 제 인생의 전부인데."
이토록 가치 없는 삶
마등령에서 잠시 쉬고, 공룡능선과 비선대로 이어진 정규 탐방로를 버리고 마등봉(1,327m)으로 향했다. 설악산 북부의 마등봉~미시령 일원 10.52km²(여의도 면적의 약 3.5배)는 산양 서식지 보호를 위해 20년 가까이 사람의 출입 통제된 구역이다. 출입제한 펜스를 넘자, 금단의 땅을 밟는다는 생각에 주저되면서도 야릇한 기분이 뒤따랐다. 15분 정도 걸어 마등봉 정상에 서자 울산바위와 푸른 동해가 멀리 뻗고, 미시령의 깊은 골짜기와 건너편 산군이 시선 가까이 닿았다.
마등봉에서 북사면 산비탈을 조금만 내려가면 축구장만 한 크기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설악산 여느 구역에서 볼 수 있는 너덜인 줄 알았는데, 모양을 잘 살펴보라는 신 주무관의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인위적인 흔적이 보였다. 두 세 사람씩 들어갈 만한 반원 모양의 호壕가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다.
"설마 이게 전부 사람이 쌓아 올린 거라고요?"
전쟁이 멈춘 지가 언젠데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석축 진지의 상태가 놀라웠다. 이 높은 곳에서까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설악산을 사수해야 했던 국군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스쳤다. 지뢰탐지기를 몇 군데 쓱쓱 갖다 대자, 돌 틈에서 탄피가 나왔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석축 진지에 몸을 숨기고 반대편 적군을 향해 사격을 가했던 증거다.
"국군 보병이 사용한 M1개런드라는 소총의 탄피입니다. 탄피는 청동으로 만들다 보니, 예전에는 사람들이 돈 된다고 주워다 팔곤 했답니다. 심지어 인간 뼈는 몸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내다팔기도 했고요."
이야기는 더 들어간다.
"구술조사 인터뷰하면요, 별별 얘기가 다 나옵니다. 너무나 슬프고 끔찍하고 비극적이고 아픈 이야기들이죠. 한번은 횡성에 조사를 나갔는데, 마을 주민들이 한 할머니께 전쟁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거예요. 포격을 피해 동굴로 도망가다가 등에 업은 젖먹이가 죽었다는 겁니다. 정말 아픈 얘기를 70년 만에 꺼낸다는 게 정말 죄송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너덜에서 올라와 점심을 먹었다. 칙칙폭폭 김을 뿜던 발열 전투식량은 어느새 뜸이 들어 맛있게 익어 있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바라보는 설악산 풍경이 이전과 달라 보였다. 아름다움이 슬픔 위에 있었고, 슬픔이 아름다움 아래 고여 있었다. 옆에 있던 신 주무관이 말했다.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하는 나라잖아요. 미국은 끝까지 데려오는 나라로 유명하죠. 그런 걸 통해서 선진국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은 마지막 한 명까지 찾는 반면 우리는… 사실 베트남전도 공식적으로는 유해를 다 모시고 왔다고 하지만 참전용사 얘기를 들으면 그렇지 않아요. 급하게 퇴진하느라 휘발유로 태우고 그랬다죠. 예전 어르신들이 '잿봉지 받았냐'고 하는 게 그런 의미예요.
국가가 필요할 때 써먹고 나중에 나 몰라라 한다? 국민들이 볼 때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처럼 전쟁은 또 일어날 수 있는 건데, 제대로 된 국가의 품격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세대가 국가에 충성할 수 있을까요. <죽은자들의 증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의 최후와 그 마지막을 누군가 들여다보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인간이 이토록 가치 없는 삶을 살고 갈 수 있나' 하는 회의와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수습된 유해 중 국군 전사자의 경우 현충원에 안장되고, 유엔군의 경우 본국으로 송환하거나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 북한군의 유해는 파주 적군묘지에 임시 매장하고, 중국군 유해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매년 송환한다.
"인류애적 접근도 필요해요. 우리는 중국군 유해 찾으면 중국에 보내 주는 '위상'이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을 보면, 처음에는 승리한 북군만 워싱턴 알링턴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었어요. 남북전쟁이 끝나고 35년이 지난 1900년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가 국가 통합과 화해를 위해 공식 법률로 승인해, 남군도 알링턴 묘지에 같이 묻혔습니다."
그들을 취재하러 가는 길,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AI와 반도체가 국부를 창출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시대에, 유해발굴이란 최첨단과는 대척점에 있는 구석기 같은 일이 아닐까 하는. 그러나 그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유해발굴이야말로 지금의 '잘 나가는' 대한민국을 있게 한 호국영웅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임을. 어느덧 산행시간은 10시간을 넘어섰고, 산행 거리도 20km를 넘었다.
"오늘 고생했는데 내일은 좀 쉬셔야죠."
"우리 팀은 열다섯 개 부대를 맡고 있습니다. 장마 기간과 땅이 언 겨울을 제외하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내일은 (고성) 까치봉으로 넘어갑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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