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연의 인사이트 노트] 하이닉스가 바꾼 '사람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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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요즘 SK하이닉스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좋은 실적을 낸 직원들이 억대 성과급을 받았다는 뉴스가 화제였지요. 지난 6월에는 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없앴고, 7월에는 채용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없애는 대신 AI 활용 역량과 직무 전문성을 쓰게 하고, 짧은 면접 대신 반나절 동안 과제를 수행하며 심층 인터뷰를 하겠다고 합니다.

"성과급 많이 받은 하이닉스 직원들은 좋겠다." "고졸도 뽑는다고? 저거 보여주기 아니야?" "신입부터 AI 활용 능력을 본다면, 경력자에게는 더 높은 AI 역량을 요구하겠지?"
많은 분이 이 뉴스에 반응하는 방식은 대략 이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변화가 아주 중요하게 읽힙니다. 단순히 남의 회사 성과급을 부러워하고, 남의 회사 채용 방식이 바뀌었다며 지나칠 뉴스가 아닙니다. 따로 보면 몇 가지 인사 제도의 변화이지만, 한 줄로 연결하면 꽤 큰 흐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입구의 문턱은 낮추는 대신, 실제 실력은 훨씬 깊게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보상합니다. 저는 이것이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왜 하이닉스는 사람을 보는 기준을 바꾸었을까
하이닉스는 자본도 인력도 훨씬 큰 '초격차'의 경쟁자 삼성전자를 HBM으로 넘어선 경험을 했습니다. 만년 국내 2위였던 하이닉스에게 삼성전자는 넘어설 수 없는 아성이었지요. 한때 감자(減資)까지 논의되고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던 회사입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하이닉스가 AI 시대의 핵심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기술과 투자, 시장의 요구와 흐름을 잘 만난 덕입니다. 그런데 이 흐름은 1등이었던 삼성전자에게도, 다른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왔습니다. 다만 그 기술을 선택하고, 남들이 가능성을 낮게 볼 때 먼저 가능성을 보고,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하이닉스, 바로 그 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하이닉스를 보면 산전수전 끝에 정상에 오르는 성장 서사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본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하산할 것인가, 그 자리를 지킬 것인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설 것인가. 주인공들은 대부분 하산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전에서 배운 것들이 또 다른 도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함께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지점에서 하이닉스가 가장 탐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후발주자라면 남의 기술이 탐날 겁니다. 그러나 이제 독보적인 선발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시 만들어낼 사람입니다. 돈도, 공장도, 장비도 아닌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다시 만들어낼 사람'입니다.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한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 실패해도 다른 길을 찾아내는 사람.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자신의 전문성과 결합해 전에 없던 답을 만들어내는 사람. 한마디로 최고의 인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억대 성과급과 학력 제한 폐지, 자기소개서 폐지, 반나절 심층면접, AI 활용 능력 검증을 각각의 뉴스로 보지 않습니다. 최고의 인재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불러 모으고, 어떻게 붙잡아둘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체불가 인재 전략으로 봅니다.
문제는 이것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거대한 변화라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한 회사에서 효과를 내면 경쟁 기업도 가만히 있기 어렵습니다. 한 회사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좋은 인재가 그쪽으로 움직이면, 다른 회사는 인재를 놓치기 싫어 따라갑니다. 몇몇 기업이 움직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시장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이닉스에 입사하려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하고, 평가받고, 보상받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높은 직급, 긴 연차가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실력을 대신 설명해주었습니다. '대기업에서 20년 일한 부장'이라는 한마디 안에 많은 신뢰가 들어 있었지요. 그런데 신입사원에게조차 대학 간판보다 실제 실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경력자에게도 언젠가 같은 질문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답할 수 있습니다. 10년, 20년 직장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단어 몇 개를 더 붙여보겠습니다.
"AI라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지금, 당신은 무엇을 잘할 수 있습니까?"
그 순간 질문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어제까지 잘하던 일을 오늘도 잘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내가 가진 전문성은 AI와 만나 더 커질 수 있는가. 반대로 내가 잘한다고 믿어온 일 가운데 AI가 더 잘하게 될 것은 무엇인가. 내가 맡은 조직과 역할 자체가 달라진다면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조금 서늘해지는 질문입니다.
특히 젊은 리더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지금의 조직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원에서 시작해 팀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피라미드 말입니다. 연차가 쌓이면 더 많은 사람을 관리하게 되고, 그것이 곧 리더의 성장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AI가 이 구조를 그대로 놓아둘까요? 자료를 찾고 취합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일정을 관리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맡게 된다면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리더의 가치는 '몇 명을 거느리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얼마나 좋은 판단을 하는가', '사람과 AI를 함께 움직여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가'에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여성 리더라면 조금 야속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렵게 유리천장을 뚫고 이제 겨우 사다리 한 칸을 올라섰는데, 사다리의 모양까지 바뀐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변화가 여성에게 나쁜 소식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굴곡진 경험도 실력이 됩니다
많은 여성의 커리어는 직선으로만 뻗어오지 않았습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잠시 속도를 늦추기도 했고, 가족 때문에 좋은 기회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조직의 중심에서 한발 비켜난 시간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경력이 동료보다 덜 매끈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 굴곡의 시간은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익힌 조율의 힘, 예상치 못한 상황을 수없이 해결하며 생긴 순발력, 서로 다른 이해관계 사이에서 답을 찾아온 경험. 어쩌면 비주류였기에 감당해야 했던 시간이 만들어준 잔근육들입니다. 주류가 아니었기에 더 자주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하려 했던 노력, 작은 변화를 먼저 알아채 의견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험까지도 그렇습니다. 잘 들여다보고 언어로 바꾸면 그것 역시 나만의 실력입니다.
근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근육은 편안한 반복이 아니라 부하(負荷)에서 자랍니다. 직선 경력이 같은 궤도를 도는 훈련이라면, 굴곡 경력은 궤도가 끊길 때마다 길을 다시 설계해야 했던 훈련입니다.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이 '익숙한 길을 빨리 달리는 힘'이라면 굴곡은 약점입니다. 그러나 '길이 지워졌을 때 다시 찾는 힘'이라면, 그 힘은 지워진 길을 이미 여러 번 건너본 사람에게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앞으로 필요한 인재의 힘을 '생각 근육, 적응 근육, 공감 근육'이라는 말로 표현해왔고, 하이닉스의 이번 채용 개편도 이 인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이 세 단어가 반가웠습니다.

생각 근육은 많이 아는 힘이 아닙니다. "왜 그렇지?"를 한 번 더 묻고 문제의 본질까지 파고드는 힘입니다. 지식은 AI가 순식간에 찾아주지만,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어떤 답을 선택할지는 여전히 사람이 판단해야 합니다.
적응 근육은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배우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내가 해온 일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다시 정의하는 힘입니다. "저는 인사를 20년 했습니다"에서 멈추는 대신 "저는 사람의 강점을 발견하고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는 일을 잘합니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다시 읽어내는 힘이지요.
공감 근육은 사람을 읽고 움직이는 힘입니다. AI가 더 많은 일을 할수록, 서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함께 가게 만드는 능력은 오히려 귀해질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일의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았습니다.
LG전자가 아직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들던 시절, 대학에 진학한 아들에게 LG폰을 사줬더니 처음엔 좋아하다가 한 달 뒤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폰 자체는 좋은데, 케이스를 살 때마다 초라해진다는 겁니다. 삼성폰과 애플폰은 케이스 선택지가 넘치는데 LG폰은 몇 개 없어서, 내가 열위의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말을 듣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휴대폰은 정체성으로 연결되었던 겁니다. 이렇게 일상의 관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순간들, 여성은 그 공감의 기회에 누구보다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AI와 한번 제대로 면접해보십시오
그렇다면 나는 생각 근육, 적응 근육, 공감 근육이라는 세 가지 근육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요. 스스로 테스트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을 꼭 해보시라고 권합니다.

가상의 회사를 하나 정해보십시오. 당장 이직할 생각이 없어도 됩니다. 5년 뒤 가보고 싶은 회사도 좋고,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자리도 좋습니다. 그 회사에 실제로 지원한다고 생각하고 자기소개서를 써보십시오. 내가 해온 일, 가장 자신 있는 경험, 나의 강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적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AI에게 읽혀보십시오. 가능하면 음성 대화 기능을 켜고 이렇게 주문해보세요.
"너는 지금부터 AI 시대의 인재를 뽑는 심층면접관이야. 학벌이나 회사 이름보다 실제 문제 해결 능력, 사고력, 적응력, 공감 능력을 중심으로 나를 면접해야 해. 특히 내가 강점이라고 적은 부분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를 세 번씩 파고들어 질문해줘. 마지막에는 내 답변을 논리성, 구체성, 진정성 측면에서 평가해줘."
해보시면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어떤 질문에는 첫 번째 '왜?'도, 두 번째 '왜?'도, 세 번째 '왜?'도 끄떡없이 답합니다. 그런 경험과 능력은 이미 내 안에 깊이 체화된 것입니다. 반면 어떤 강점은 두 번째 '왜?'에서 말문이 막힙니다.
"저는 전략적 사고가 강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여기까지는 대답합니다. "그 판단이 전략적이었다는 것을 어떤 결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조금 어려워집니다. 한 번 더 들어옵니다. "그 결과가 정말 당신의 판단 때문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갑자기 말문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은 발견입니다. 우리는 오래 해온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주변에서 몇 번 들은 평가를 어느 순간 나의 강점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왜'를 세 번 통과하고 나면, 내가 정말 잘하는 것과 잘한다고 믿어온 것이 조금씩 구분됩니다.
미래형 나를 만드는 일은 새로운 것을 무작정 더 배우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1년 뒤 세상이 사막으로 변한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1년 뒤, 우리가 일하는 세상이 사막처럼 변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모든 것이 황폐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제 걸어왔던 길이 밤새 불어온 바람에 지워지고, 익숙했던 이정표가 더 이상 방향을 알려주지 못하는 곳 말입니다. AI가 만드는 변화도 어쩌면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오늘 당연한 일이 내일도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의 조직도가 그대로 남아 있을지도, 지금 높이 평가받는 능력이 몇 년 뒤에도 같은 값을 받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 변화를 알고 있는 당신은, 앞으로 1년 동안 무엇을 준비하시겠습니까?"
사막에서는 어제의 길이 의미를 잃고, 새롭게 방향을 찾는 힘이 중요해집니다. 저는 그것이 앞에서 말한 세 근육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판단하는 힘, 지형이 바뀌면 새 길을 찾는 힘,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건너는 힘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AI와 면접해보라는 것은 이직을 준비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곳에 남아 더 큰 자리로 올라가도 좋고, 다른 회사로 옮겨도 좋고, 어느 날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해도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 가운데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새로 익히고, 무엇을 과감하게 내려놓을지를 먼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조금 먼저 변화의 방향을 알아차리고, 지형이 달라져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조직도 안의 다음 직급만 준비하지 마십시오. 사다리는 조직이 놓아주지만, 나침반은 내가 챙기는 것입니다.
앞으로 1년, 지형이 바뀌어도 나를 데리고 갈 수 있는 힘을 준비해보셨으면 합니다.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 은행원, 증권사 IT 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 최초의 여성 전무 자리까지 오른 33년 경력의 리더십 전문가. 최근 <공감 지능 시대>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강연가로 활동 중이다. 개인의 성과를 넘어 조직의 성과를 만드는 리더십, 차가운 데이터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공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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