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고 또 쪼개고"… SK '4중 상장' 공포에 개미도, 이재명도 시험대

김태현 기자 2026. 8.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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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들이는 돈은 지구상 어느 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그 회사를 가진 주주들은 웃지 못한다. 탑처럼 쌓여 올라가는 상장 구조의 맨 아래에서, 개미들은 자신의 몫이 층층이 옅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우먼센스] 시가총액 1000조 원을 넘긴 반도체 대장주가 정작 주주들에겐 미움받는 종목이 됐다.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나스닥행 정황, 국내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다단계 중복상장 구조, 주당 375원짜리 배당까지 겹치면서 SK하이닉스 소액주주들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여기에 800조 원짜리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가 얽히면서, 그간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 못 박아온 이재명 정부의 정책 일관성까지 시험대에 올랐다.

CNBC에 출연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CNBC

정부 문 두드린 SK… '세이프하버'로 여는 4중 상장의 문

8월 10일 투자업계에 SK그룹이 미국에 세울 'AI컴퍼니' 출범과 자회사의 장래 상장을 염두에 두고, 정부와 중복상장 규제를 손보는 협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베스트조선 보도에 따르면 그룹은 최근 당국에 관련 방안을 제출하고 제도 개선을 타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핵심은 '조건부 허용'이다. AI 자회사의 투자유치나 해외 상장을 일률적으로 막는 대신, 모회사 주주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면 규제를 비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이른바 '세이프하버' 방식이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지배구조를 풀어보면 이렇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인텔의 낸드·SSD 사업부를 약 90억 달러(당시 약 10조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지난해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편입된 미국 법인이 옛 솔리다임이다. 올해 1분기 낸드·SSD 사업은 새 별도 법인 '솔리다임(Solidigm Inc.)'으로 옮겨졌고, 기존 법인은 그룹의 미국 AI 투자 지주 격인 'AI컴퍼니'로 탈바꿈해 하반기 출범을 앞두고 있다.

연초 SK하이닉스가 최대 100억 달러 출자를 의결했고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도 공동 출자에 나선다. 신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 기준으론 손자회사지만, 그룹 최상단 SK㈜에서 보면 고손회사다. SK㈜–SK스퀘어–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상장 계열에 솔리다임이 나스닥에 얹히면, 상장사가 네 단계로 겹치는 사상 초유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회사는 8월 5일 거래소를 통한 해명공시로 답을 대신했다. 해외 종속회사 솔리다임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미국 새너제이에서 SEC 제출용 연차·분기·주요사항 보고서(Form 10-K·10-Q·8-K)와 증권신고서 작성을 총괄할 '외부보고 담당 이사'를 채용 중이며, IPO·증권등록·채권발행 지원 경험을 우대 조건으로 내걸었다.

실제 솔리다임 채용 페이지에도 이 직책(Director - External Reporting)이 새너제이 재무 부문 공고로 올라와 있다. SEC 보고 체계가 상장 외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반론이 있지만, 재공시 예정일(9월 4일)까지 못 박아둔 터라 시장은 준비가 상당히 진척됐다고 읽고 있다.

관련 기사: [단독] SK하이닉스 F-1엔 이미 적혀 있었다… 솔리다임 상장 '면책 포석' 정황

"4단이 아니라 5단"… 거버넌스포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수출 멈춰라"

구조뿐 아니라 '무엇을 상장하느냐'를 두고도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심혜섭 변호사는 솔리다임이 독립된 완결형 기업이라기보다 사실상 사업부에 가깝다고 봤다. SSD의 핵심인 낸드 웨이퍼 가공은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의 다롄 공장이 맡고, 컨트롤러·완제품 제조도 솔리다임이 직접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솔리다임이 SK하이닉스의 낸드 공급에 기대어 설계·검증·판매를 맡는 만큼, 팹 없는 회사가 독자적인 가격결정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에 '수직계열화가 불가피하거나 그룹 내 거래로 효율성이 인정되면 독립성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단서가 붙은 점을 짚으며, 이 예외가 솔리다임 상장에 적용될 경우 앞으로 다른 그룹들도 사업부 단위의 쪼개기 상장에 나설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여기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해온 민간단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공식 논평으로 가세하면서 논란은 한층 커졌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8월 13일 논평에서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이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5단 중복상장' 사례가 된다며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내 보도가 '4단'으로 짚은 것과 달리, 포럼은 SEC에 제출된 외국기업용 유가증권신고서(Form F-1)를 근거로 실제 단계가 하나 더 깊다고 봤다.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 지분을 직접 쥔 게 아니라, 100% 자회사인 미국 법인(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이 올해 1분기 신설된 솔리다임 지분 전량을 보유하는 구조여서,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의 '손자의 손자'격인 고손(高孫) 기업이라는 것이다.

포럼이 특히 문제 삼은 건 '키맨 리스크'다. 회사의 가치가 특정 지배주주 한 사람의 판단에 지나치게 휘둘릴 수 있다는 위험을 뜻한다. 이 회장은 모건스탠리 추정 기준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2개월 선행 이익 대비 3배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며, 이는 회계 부정 가능성이 없는 한국 대표기업에서 나올 수 없는 저평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근본 원인을 지배주주·경영진·이사회에 대한 불신에서 찾았다. JP모건 추정대로 SK하이닉스가 향후 3년간 800조 원대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더라도, 그 과실이 일반주주에게 온전히 돌아올 것이라 시장이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황이 좋아진 자회사 지분을 늘리기는커녕 매각설이 도는 상황 자체가 투자자 불안을 키운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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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은 규제 우회 가능성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남우 회장은 미국 현지 법인의 투자라고 해서 금융당국·국회·투자자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기면 오산이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근거로 국내 자회사 중복상장을 제한한다면 해외 자회사·손자회사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태원 회장을 향해 '가깝게 지내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게 왜 엔비디아에는 자회사 중복상장이 없는지 물어보라'며, 대만 TSMC 역시 자회사 상장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가깝게 지내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게 왜 엔비디아에는 자회사 중복상장이 없는지 물어보라'

나아가 포럼은 SK하이닉스 이사회의 침묵을 문제 삼았다. 이 회장은 상법상 이사가 이사회 안건 상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고승범 의장을 비롯한 사외이사들이 솔리다임 상장의 주주 권익 침해 여부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려 스스로 독립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상장 단계를 늘릴 때가 아니라 오히려 SK㈜–SK스퀘어–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기존 3단 구조부터 풀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순자산의 대부분이 SK하이닉스 지분 가치인 SK스퀘어가 중간에 끼면서 SK㈜와 최 회장의 하이닉스 실질 지분율이 낮아졌고, 이것이 저조한 주주환원과 이번 상장 시도의 뿌리라는 것이다.

375원의 굴욕… 폭발한 주주들

주주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직접적 도화선은 배당도 있었다. 솔리다임 상장 논란이 확산하던 8월 초, SK하이닉스는 장 마감 뒤 공시로 보통주 1주당 375원 현금배당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당총액은 2733억여 원, 시가배당률은 0.02%에 그쳤다. 1주에 약 170만 원인 회사가 1주당 375원을 배당 발표하면서 주주들 분노가 극에 달했다. 회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추가 방안을 3분기 안에 확정해 발표하겠다고 덧붙였지만, 개미들의 실망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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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보면 박탈감의 배경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연말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순현금은 2634억 달러(약 375조 원)로, 엔비디아 보유 현금의 두 배를 웃돌고 미국 대표 빅테크 7곳의 합산 순현금보다도 많다. 두 회사 모두 잉여현금흐름의 50%를 환원하겠다고 했지만, 100% 환원을 내건 마이크론이나 샌디스크와 비교되며 '이런 국장 모습을 보면 미장으로 가는 게 맞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ADR 발행을 주관한 JP모건도 8월 초 자본 배분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제시가 투자심리 회복에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주주들이 주목하는 부분에는 '타이밍'도 있다. 주주환원 확정 시점(9월 내)과 솔리다임 관련 재공시 예정일(9월 4일)이 나란히 9월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주주환원 방안과 솔리다임 상장 카드가 같은 시기에 함께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경우 주주환원이 무색하게 주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회사의 '미확정' 해명을 두고도 시장의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여기에 온라인을 타고 번진 소문도 반발에 기름을 부었다. 텔레그램 등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시세보다 크게 낮은 값에 넘기는 대신, SK텔레콤이 미국 데이터센터용 GPU를 우선 확보한다는 식의 연계 계약이 있다는 주장이 돌았다. 주주에게 손해를 안기고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준다는 의심으로 번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를 명확히 부인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이 각자의 경영판단에 따라 엔비디아와 개별적으로 사업을 논의한다고 밝히며, 지라시 형태로 유포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주주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HBM 판매가격은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수익성과 고객사와의 협력 관계를 고려해 정해진다는 입장도 내놓은 바 있다.

'호남 반도체'와 얽힌 의심… 이재명의 정책 일관성 시험대

이 사안이 유독 폭발력을 갖는 건 정부의 그간 행보와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중복상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뿌리로 지목해왔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 5000을 돌파한 지난 1월 22일 여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오찬에서, 대통령은 'L자 들어간 주식은 안 산다'는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중복상장이 저평가의 원인이라고 못 박았다.

이 대통령은 '송아지 밴 암소를 샀는데 송아지 주인이 남이면 화가 나지 않겠느냐'는 비유로 물적분할 뒤 쪼개기 상장을 겨냥했고, LS그룹의 증손회사 에식스솔루션즈 상장 추진을 소액주주 가치 훼손의 전형으로 콕 집었다. 실제 그 흐름 속에서 글로벌텍스프리와 LS의 분할상장 건이 제동을 받았다.

사진 청와대

그런데 공교롭게도, SK가 정부에 중복상장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진 8월 10일 바로 그날,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800조 원 규모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다룬 '메가프로젝트 2차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광주 군공항 부지를 2028년 중순까지 비워 반도체 산단으로 조기 활용하라고 지시하며, 일본 구마모토에 못지않은 속도로 밀어붙이라고 주문했다. 이 회의에는 정승일 ㈜SK 미래성장담당 사장 등 기업인이 참석했고, 대통령은 향후 1년을 골든타임으로 삼아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정부가 호남 반도체라는 초대형 국책 사업에 SK의 협조를 얻는 대가로 4중 중복상장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상법 개정과 지배구조 개선을 자본시장 정책의 간판으로 내세워온 대통령이라면, 같은 날 SK의 규제 완화 요청을 두고 한마디쯤 짚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뒤따랐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고, 정부와 SK 어느 쪽도 두 사안의 연관성을 밝힌 바 없다.

핵심은 정부의 명분이다. 만약 이 4중 상장이 허용된다면, 소액주주 권익 보호와 자본시장 정상화를 앞세워온 정부의 기조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복상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LS를 겨냥했던 정부가 국내 재벌 중에서도 전례 없는 4단 구조를 SK에 허용할 경우,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이프하버가 일반주주를 지키는 안전장치가 될지, 아니면 다단계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명분을 깔아주는 장치가 될지가 이 사안의 분수령이다.

연간 250조~300조 원 안팎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회사가 굳이 외부 자본에 기댈 이유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솔리다임 상장 구상의 본질이 자금 조달보다 그룹 계열사 간 'AI 성장 과실 공유'에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 측은 솔리다임 상장에 대해 "8월 5일 거래소를 통해 해명공시를 한 사안"이라며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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