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제주] 투박함 속에 새긴 역사…현무암, 성전이 되고 관청이 되다

광주일보 2026. 8. 1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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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에서 1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6·25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1951년~1956년) 정문 지주가 도로 양 옆에 서 있다.

강병대교회는 모슬포(서귀포시 대정읍 상·하모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이전(1951년 1월)된 후 1952년 1월 10일 훈련소장으로 취임한 장도영 소장이 장병들이 정신적 양식과 종교적 생활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지어졌다.

강병대교회는 수준 높은 건축물로 평가되지 않더라도 전쟁 시기 공병들의 손에 의해 제주 현무암을 사용한 순박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병대교회는 서귀포시가 지역에 산재해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탐방을 위해 선정한 '건축물 탐방' 11개 코스 중 1코스(전쟁과 근대건축)로도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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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대교회·옛 대정면사무소]
강병대교회
민간 기술자 없이 공병대 손으로 건축
6·25 출전 앞둔 장병들 마음의 안식처
제주 국군 사적지 유일 국가등록문화재
옛 대정면사무소
일제강점기 서귀포 → 모슬포항 이전
제주 특유의 현무암으로 지어진 강병대교회는 1952년 민간 기술자 없이 오로지 공병대의 손길에 의해 탄생했다. 장병들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 들러 마음의 안정을 찾고 용기를 키웠다.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1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6·25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1951년~1956년) 정문 지주가 도로 양 옆에 서 있다. 여기에서 대정읍내로 약 400m를 가면 오른쪽 낮은 구릉지에 강병대교회(强兵臺敎會)가 보인다.

건축물의 사전적인 의미는 물질적인 재료를 이용해 인간 생활에 필요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건축물은 단순한 주거 및 생활 공간을 넘어 도시 경관의 소중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쟁 당시 군 장병들의 정신적 위안 역할을 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교회(敎會)와는 다른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건축물이다.

◇6·25전쟁 당시 장병을 위한 기도 공간

강병대교회는 모슬포(서귀포시 대정읍 상·하모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이전(1951년 1월)된 후 1952년 1월 10일 훈련소장으로 취임한 장도영 소장이 장병들이 정신적 양식과 종교적 생활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지어졌다.

1952년 5월 1일 지금의 자리인 대정읍 상모리 3846번지에서 착공, 같은 해 9월 14일 건물이 준공됐다.

건물이 준공된 이듬해인 1953년 1월 21일 육군 제1훈련소가 ‘강병대(强兵臺)’로 명칭이 개정되면서 교회 이름도 자연스럽게 지금의 강병대 교회로 정착됐다.

교회 이름에는 ‘강한 병사’를 양성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전쟁에 나가기 전 두려움이 가득한 장병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어졌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장병들이 고된 훈련 중 이곳에 들러 마음의 안정을 찾고 용기를 키웠다. 전장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승리를 기원하거나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의 안녕을 빌기도 했다.

교회는 전쟁 당시 모슬포로 피란 온 많은 신자들의 의지처가 되기도 했고 근처에 있던 미군 고문단 1개 중대 병력도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1965년에는 공군 30단 308부대로 편입돼 기지교회로 발족되면서 이듬해 교회 부설 신우고등공민학교(야간 중학과정)가 개설됐다.

신우고등공민학교는 1981년 폐교될 때까지 13회에 걸쳐 2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지역 청소년들에게 향학열을 불어넣어줬다. 지금은 인근 공군부대, 해병부대 장병과 가족들이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민간 기술 없이 공병대 손으로 지어져

제주 특유의 현무암으로 지어진 건물은 민간 기술자 없이 오로지 공병대의 손길에 의해 탄생했다.

준공식에 당시 미8군 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이 참석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건물이다.

교회 터를 기준으로 서쪽 모서리 부분에 정문이 설치됐고 건물은 정문보다 조금 높은 구릉지에 자리해 있다.

3층 규모의 종탑과 단층인 본건물로 구성됐다. 벽체는 현무암을 이용한 ‘허튼층쌓기’(크기가 다른 돌을 줄눈을 맞추지 않고 불규칙하게 쌓음)로 구성됐고 돌 사이 사이에는 모르타르(시멘트에 모래를 섞어서 물에 갠 것)가 발라져 줄눈이 만들어졌다.

건물은 동서축으로 자리잡았는데 3층 종탑은 동쪽에 있다.

건축 초기 건물 서쪽에 비를 막기 위해 건물 입구(현관)에 조성된 지붕인 ‘포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3층 종탑 구조물 입구를 통해 단층의 본건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변경됐다.

종탑 구조물도 초기에는 첨탑이 없는 평지붕 형태였는데 이후 양철을 씌운 첨탑을 달아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

예배 공간인 건물 내부는 동쪽 끝부분에 제단을 두고 나머지 부분에 예배석이 있는 단순한 형태로 돼 있다. 길다란 건물 양쪽에는 채광을 위해 반원형의 창문을 일정하게 달았다. 건물 측면 양쪽에도 출입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됐다.

내부 마감은 벽체와 바닥은 시멘트를 이용한 모르타르로 처리됐고 천정은 합판 위에 폐인트로 마감됐다.

종탑과 본건물의 모서리 , 출입문, 창문은 교회 건물에서 흔히 보이는 ‘첨두아치’(두 개의 아치를 짝지워 꼭대기를 뾰족하게 한 아치로 고딕 건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에서 살짝 변경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동쪽 잔디밭에는 국한문 혼용으로 ‘이 교회는 육군소장 장도영 각하가 육군제1훈련소 제9대 소장으로 단기 4285년(1952년) 1월 10일 취임하여 국군장병의 정신적 양식과 종교적 생활을 함으로써 성전을 완수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 밑에 단기 4285년 5월 1일 기공하여 금년 9월 14일 185건평의 건물을 완성했다’는 내용의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강병대 장병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비석이 세워진 연도는 단기 4286년 6월 10일로 돼 있어 건물이 준공된 이듬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강병대교회는 수준 높은 건축물로 평가되지 않더라도 전쟁 시기 공병들의 손에 의해 제주 현무암을 사용한 순박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국군의 사적지 중 제주에서 유일하게 양호한 상태로 원형이 유지돼 보존 가치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사 기념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02년 5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강병대교회는 서귀포시가 지역에 산재해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탐방을 위해 선정한 ‘건축물 탐방’ 11개 코스 중 1코스(전쟁과 근대건축)로도 지정됐다.

준공=1952년, 건물 연면적=594.49㎡, 용도=종교시설.

원래 대정골 인성리에 있던 대정면사무소 청사는 1934년 대정초등학교 동쪽(서귀포시 상모대서로 17)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일제에 의해 모슬포항이 개발되면서 경제 중심지가 모슬포(상·하모리)로 이동된 데 따른 것이다.
◇강병대교회 인근 추천할만한 또다른 건축물...옛 대정면사무소

강병대교회에 나와 서쪽으로 약 15분을 걸어가면 오른쪽에 옛 대정면사무소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제주도 근대 관청 건축 물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대정골 인성리에 있던 대정면사무소 청사는 1934년 대정초등학교 동쪽(서귀포시 상모대서로 17)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일제에 의해 모슬포항이 개발되면서 경제 중심지가 모슬포(상·하모리)로 이동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같은 장소에서 1955년 8월 5일 신축, 준공됐다. 설계 과정에서 단층으로 계획됐다가 2층으로 변경됐다. 부지면적 1632㎡, 건축면적 142.08㎡, 연면적 284.16㎡ 규모로 지어졌고 공사에 사용된 현무암은 인근 주민들에게 할당해 공급받았다.

1956년 7월 8일 대정읍으로 승격된 이후 1980년 8월 읍청사가 지금의 청사(대정여자고등학교 인근)로 이전할 때까지 청사로 사용됐다.

1983년 보수 및 증축 공사가 이뤄졌고 같은 해 11월부터 남제주군 대정보건지소, 서귀포시 서부보건소 등으로 사용되다 2011년 4월 보건소가 하모체육공원 인근으로 신축 이전된 이후 한동안 ‘대정현역사자료전시관’으로 이용됐다.

건축 구조는 현무암 조적벽체, 경량 철골 트러스 지붕으로 이뤄졌다.

형태는 정면의 포치(porch·비바람을 막기 위해 지붕이 돌출되어 지어진 건물의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으로, 외부는 일정규격으로 가공한 현무암을 사용해 쌓았고, 외벽 모서리에서 벽체를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처리하는 등 입면에서 보이는 투박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세로로 길게 설계된 창문의 상·하 인방(引枋·창 따위의 아래위에 가로놓여 벽을 지탱해 주는 돌) 역시 현무암을 길게 다듬어 사용함으로써 건축미를 높였다.

2005년 4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됐다.

각종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청사 1층에는 부면장실, 민원실, 재무계, 호병계, 지출원실, 등사실이, 2층에는 면장실, 산업계, 총무계, 건설계가 배치돼 있었다.

제주 현무암을 건축의 주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특색있는 외관을 보여주는 한편 외벽을 기울게 하고 세로로 길게 낸 창문에 상·하 인방을 활용, 제주 근대 건축기법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제주일보 김문기 기자 kafka71@hanmail.net

/사진=제주일보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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