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 고구려인? 중국인? 경주 월성 비석조각 누가 새겼나…국적 논란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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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이었다. 신라 고도 경주 월성에서 나온, 가로 27.2cm, 세로 16.6cm에 불과한 옛 비석 조각 두개를 어느 나라 사람이 만들었을까.
1937년과 2020년, 83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신라 왕성터 경주 월성의 서쪽과 북서쪽 진입로 인근에서 따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보관해온 비석 조각 2점의 실체를 놓고 소장학자들은 각기 치밀하게 준비한 근거를 갖고 진검토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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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인가? 신라인인가? 중국인인가?
점입가경이었다. 신라 고도 경주 월성에서 나온, 가로 27.2cm, 세로 16.6cm에 불과한 옛 비석 조각 두개를 어느 나라 사람이 만들었을까.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한자 서체를 빼닮았고, 글자들도 상당수가 일치하는 이 비석 조각에 대해 학자들의 상상과 해석이 만발했다. 이들은 쓴 사람의 국적부터 따졌다. 고구려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신라에 가서 세웠다는 주장이 나오자 고구려인들이 신라 경주의 재료를 조달해 만들었다는 주장과 고구려인한테 글씨를 배운 신라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뒤얽혔다. 돌비석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은 솜씨가 고구려의 것인지, 신라의 것인지 등에 대한 논란도 불붙었다.
지난 13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열린 ‘월성 서편 수습 비편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학술대회는 새로운 가설과 담론들로 시종 뜨거웠다. 1937년과 2020년, 83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신라 왕성터 경주 월성의 서쪽과 북서쪽 진입로 인근에서 따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보관해온 비석 조각 2점의 실체를 놓고 소장학자들은 각기 치밀하게 준비한 근거를 갖고 진검토론을 펼쳤다.
두 비석은 앞서 지난 2월11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처음 학계에 공개됐다. 이날 두 비편 실체 검토를 위한 중견 전문가 포럼이 같이 열려 고구려사·신라사·금석문·서예사 전문가들은 모여 논의를 거듭했으나 광개토왕비 계통의 고구려 비석 가능성에 무게를 둔 고구려사 연구자들과 추가 실물 분석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피력한 신라사 연구자들 사이에 팽팽한 의견 차이가 확인된 바 있다.

이날 학술대회는 이런 신라, 고구려 비석을 둘러싼 의견 차이는 여전했지만, 단순한 대립 구도를 넘어 기술적 측면의 쟁점을 탐색했다.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제기된 것은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제기한 비석 표면의 물갈기 정도였다. 윤 교수는 “월성 비석조각은 매우 매끈하게 표면에 물갈기로 다듬어져 있는데, 이런 물갈기는 충주 고구려비나 광개토왕비 등 5세기 고구려 비석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런 물질적 조건을 무시하고 섣불리 고구려 비석으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광개토왕비 서체와의 유사성을 처음 짚어냈던 서예사가인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충주비 등 고구려비에도 매끈하게 다듬질한 흔적이 분명하게 확인되기 때문에 물갈기 흔적으로 국적이나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월성 수습 비석조각이 예서체와 비면의 구성 등에서 중성리비, 냉수리비 같은 6세기 신라비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5세기 특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신라 월성에서 발견된 정황 측면에서도 400년 광개토왕이 왜구 등에 포위된 신라를 구원한 뒤 속국으로 삼았던 사실을 기리는 정치적 기념비 성격을 보여준다”며 고구려 비 석이란 견해를 강조했다.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도 발표문을 통해 월성 비석 조각의 자형이 4세기 말~5세기 초의 것으로 400년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 원정 때 고구려군이 세운 석비일 가능성이 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구려비석일 가능성까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광개토왕이 수도 집안에서 당시 낙랑의 중심지 평양까지 일부러 내려와 신라 사신의 구원요청을 받은 뒤 원군을 파견한 광개토왕비의 기록을 들어 당시 평양에서 신라 원정을 준비하면서 중국계 장인이 종군해 경주에서 석비를 제작했을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당시 남북조시대 중국은 매끈하게 물갈이한 비면을 쓰고 있었고, 낙랑지역에서도 이런 관행이 정착했기 때문에 중국계 장인의 작품이라면 물갈기 정도를 둘러싼 의문도 풀릴 수 있다”는 견해다. 하지만, 처음 물갈기 기법의 문제를 제기한 이현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와 윤선태 교수는 “비석 표면을 매끈하게 물갈기하는 기법이 통일신라에서 정립되기 때문에 이 기법만 보면 6세기 후반대 이후로 건립연대가 내려갈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관련한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서예사가인 정현숙씨는 월성 수습 비편을 ‘광개토대왕비’의 예서를 익힌 신라인이 5세기에 변용해 쓴 글씨로 추정하며 6세기 신라 글씨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아 비석 조각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다기한 가지를 쳐나가가는 양상이다. 한편, 박물관 쪽은 ‘83년 만에 만남, 경주 월성에서 찾은 비석 조각’이란 제목으로 경내에서 진열중인 두 비석 조각의 전시 종료 시점을 17일에서 12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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