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수해 현장 르포] “너무 무서워 뜬눈으로…” 하루아침에 이재민된 산사태 아파트 주민 한숨만

“토사를 치워야 하는데 양도 많고 비도 계속 오고 있어 언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7일 새벽 단지를 덮친 산사태에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남 거제시 옥포동 A 아파트. 이 아파트는 8~15층 6개 동에 총 384세대가 살고 있다.
이날 오전 1시부터 시간당 100mm가 넘는 극한 호우가 일대에 쏟아졌고 오전 4시 20분께 단지와 맞닿은 뒤편 야산이 붕괴하며 산사태로 이어졌다.
막대한 양의 흙더미가 쏟아져 내린 104동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흙더미와 뒤엉킨 집기류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곳곳에 깨진 유리창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마저 그치지 않으면서 복구 작업도 더딘 모양새였다.

거제시는 추가 붕괴 등을 우려해 총 3개 동에 대피 명령을 내렸다. 입주민들은 대피소가 마련된 인근 성지중학교 1층 급식소로 피신했다.
입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다는 듯 퀭한 얼굴에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간밤 물난리에 잠을 자지 못한 이들은 구석에 돗자리를 깔고, 얼굴까지 덮어쓰고 휴식을 취했다.
한 입주민은 “살면서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현장에선 자원봉사단체 등이 점심을 마련해 대피소 주민들에게 배식 봉사도 했다.
정오를 기해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자 인근 상가에선 복구에 나선 상인과 이들을 도우러 나온 주민이 바쁘게 움직였다.
물이 빠진 점포 안은 진흙과 쓰레기가 그대로 남아 폭우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곳에서 40여 년간 사진관을 운영해 온 이종욱(73) 씨는 흙탕물로 엉망이 된 가게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 씨는 “밤사이 비가 많이 오더니 물이 역류하면서 무릎 높이 이상으로 차올랐다. 흙탕물이 가게 안으로 몽땅 쏟아져 들어와 사진관 물품들이 전부 젖었다”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근 건물 지하 1층 노래주점에도 빗물과 흙탕물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내부 집기와 물품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됐다.
업주는 “물이 지하 1층까지 차올라 손쓸 겨를도 없었다”며 “남은 것 중에 쓸만한 게 하나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기상청은 이날 오후 4시를 기해 거제에 호우주의보를 발효했다.
호우주의보는 3시간 강우량이 60mm 또는 12시간 강우량이 110mm 이상으로 예측될 때 내려진다.

오후 1시 기준 거제 지역 누적 강수량은 577.4mm로 집계됐다.
1972년 1월 24일 거제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일강수량 최고치이자 기상청이 강수량 등 순위를 관리하는 97개 종관기상관측지점 역대 일강수량 중에도 세 번째로 많은 양이다.
특히 오전 1시 32분부터 1시간 동안 124.5mm에 달하는 재난성 폭우가 쏟아졌다.
이 역시 1시간 강수량으로는 거제 기상관측 이래 최대치다. 기존 기록은 2001년 7월 5일 기록된 96.5mm였다.
강수가 시작한 광복절부터 이날까지 누적된 강수량은 851.1mm다.
거제 평년(1991∼2020년 평균) 여름 강수량이 각각 935.1mm인 점을 고려하면 여름 한 철 내릴 비의 90% 이상이 만 사흘도 안되는 기간에 내린 셈이다.
이는 200년 만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극한 호우라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