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평생 마신 샴페인은? 현대 샴페인의 표준을 설계한 영국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6. 8. 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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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의 연회장으로 가보겠습니다.

1882년 영국의 와인 저술가 헨리 비제텔리가 당시 시장별 샴페인 당도를 분류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드라이 샴페인의 상업적 성공은 영국에서 시작됐고, 세계 최대 샴페인 수입국이던 영국의 지갑이 샹파뉴의 레시피를 바꿨다는 것.

수요가 공급을 설계한다영국 땅에서 샴페인은 한 방울도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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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의 표준을 바꾼 영국

19세기 유럽의 연회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에도 테이블 위 샴페인은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향을 맡아보고, 입에 머금어본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술이 아니라는 점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달달한 느낌이 순식간에 혀를 감싸기 때문이죠.

1882년 영국의 와인 저술가 헨리 비제텔리가 당시 시장별 샴페인 당도를 분류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러시아행 샴페인에는 리터당 275~330g의 설탕이 들어갔습니다. 코카콜라의 당분이 리터당 100g을 조금 넘으니, 콜라보다 세 배 가까이 단 술이었던 셈입니다.

끝 없이 펼쳐진 프랑스 샹파뉴의 포도밭. 이 밭에서 나오는 포도로 만든 와인이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샴페인이 된다. [전형민 기자]
러시아만이 아닙니다.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행은 165~200g, 미국행은 110~165g. 당시 샴페인은 식사 뒤에 마시는 디저트 와인이었고, 설탕이 사치품이던 시절 단맛은 곧 부의 과시였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식탁에서는 그것도 모자라 잔에 설탕을 숟가락으로 퍼 넣어 마셨다는 기록이, 뵈브 클리코 여사와 러시아 거래처가 주고받은 편지에 남아 있죠.

그런데 이 분류표에서 튀는 시장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행: 22~66g. 유일하게 자릿수가 다릅니다. 런던만 “설탕을 빼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던 겁니다. 같은 술을 시장마다 다른 레시피로 팔던 시대에, 한 도시의 취향은 결국 제품의 세계 표준을 갈아치우게 됩니다. 샴페인 포도는 한 송이도 나지 않는 나라, 영국은 어떻게 현대 샴페인의 맛과 얼굴을 설계하게 됐을까요?

볼랭저 하우스 지하 까브에서 숙성 중인 샴페인. 작업자들이 르뮈아주(리들링·샴페인의 효모를 수개월에 걸쳐 병목으로 모으는 작업) 중인 샴페인병 속 효모를 보여주고 있다. [전형민 기자]
설탕을 뺀 자들
영국인들이 유난했던 이유는 마시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대륙에서 샴페인이 디저트였다면, 영국인들은 식사 처음부터 끝까지 샴페인을 곁들였거든요. 식전주가 콜라처럼 달아서야 곤란하죠. 19세기 중반부터 일부 하우스가 영국 시장용 라벨에 ‘드라이(dry)’, ‘베리 드라이(very dry)’를 붙이기 시작했고, 1857년, 1865년, 1870년, 1874년 빈티지에서 그 흔적이 확인됩니다.

이 흐름의 아이콘으로 흔히 거론되는 게 1874년입니다. 남편을 잃고 하우스를 물려받은 마담 루이즈 뽀므리가 영국 시장을 겨냥해 설탕을 확 뺀 ‘뽀므리 나뛰르 1874’를 내놨고, 이것이 최초의 브뤼(brut) 샴페인이 됐다는 이야기죠.

샹파뉴 사람들이 즐겨 하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자꾸만 설탕을 빼달라는 런던 손님들에게 질린 양조가들이 그들을 ‘브뤼트’(brut·날것의, 무례한)라고 불렀고, 그 투덜거림이 그대로 드라이 샴페인의 공식 명칭이 됐다는 겁니다.

현대의 달지 않은 샴페인의 시초로 알려진 마담 뽀므리의 초상화. 샹파뉴 랭스 뽀므리 하우스 내 접객실. [전형민 기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마케팅인지는 이제 와 가리기 어렵습니다만, 방향만큼은 분명합니다. 드라이 샴페인의 상업적 성공은 영국에서 시작됐고, 세계 최대 샴페인 수입국이던 영국의 지갑이 샹파뉴의 레시피를 바꿨다는 것.

정작 프랑스 내수 시장이 브뤼로 돌아선 건 1920년대 이후입니다. 브뤼가 전체 샴페인 출하량의 절반을 넘긴 게 1950년대 초이고, 지금은 85~90%에 이릅니다. 현행 규정상 브뤼는 리터당 잔당 12g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데요. 150년 전 런던의 까다로운 입맛이, 오늘날 전 세계 샴페인의 기본값이 된 셈입니다.

최초의 브뤼 샴페인을 만든 뽀므리 하우스의 끌로 퐁사르뎅. [전형민 기자]
검은 테두리의 라벨 — 처칠과 폴 로저
맛의 표준을 바꾼 영국은, 20세기에 두 번째 일을 합니다. 샴페인에 얼굴을 붙여준 것이죠. 1944년 11월, 해방 직후의 파리. 다시 문을 연 영국 대사관의 오찬장에서 윈스턴 처칠은 한 프랑스 여성 옆자리에 앉게 됩니다. 에페르네의 샴페인 하우스 안주인, 오데트 폴-로제였습니다. 처칠은 이미 1908년부터 폴 로저의 고객이었지만, 이 만남 이후 관계는 거래를 넘어섭니다.

오데트는 매년 처칠의 생일에 그가 사랑한 빈티지를 한 상자씩 보냈고, 처칠은 자기 경주마에 ‘폴 로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말이 1953년 켐튼 파크 경마장에서 우승했을 때, 광고로 치면 값을 매길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됐죠. 처칠이 평생 마신 폴 로저가 4만2000병에 달한다는 얘기까지 전해지는데, 이쯤 되면 검증보다는 전설의 영역입니다.

프랑스 샹파뉴 에페르네에 있는 폴 로저 본사의 ‘처칠룸’. 응접실로 쓰이는 공간이지만 처칠과 폴 로저 하우스 사이를 보여주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오른쪽 상단 사진 액자 속 여성이 오데뜨 폴 로저. [전형민 기자]
1965년 1월 처칠이 서거하자, 오데트는 영국으로 나가는 모든 병의 라벨에 검은 테두리를 두르라고 지시합니다. 한 나라의 국장(國葬)에 한 외국 기업이 상복을 입은 겁니다. 10년 뒤인 1975년 빈티지로 하우스 최고의 퀴베가 조성됐고, 1984년 처칠의 생가인 블레넘 궁전에서 ‘퀴베 서 윈스턴 처칠’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습니다.

흥미로운 건 계약 구조입니다. 폴 로저는 처칠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유족에게 로열티를 한 푼도 내지 않습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새 빈티지를 출시하기 전, 반드시 처칠 가문 사람들이 먼저 시음하고 승인할 것. 지금도 에페르네 본사 주소는 ‘뤼 윈스턴 처칠 1번지’입니다. 도로명이 통째로 그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본사 곳곳에 처칠을 기리거나 처칠과 함께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폴 로저 하우스 내부에 설치된 그림 그리는 윈스턴 처칠의 동상. 윈스턴 처칠은 실제로 상당한 양의 작품을 남긴 화가이기도 했다. 하우스 곳곳에서 처칠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형민 기자]
수요가 공급을 설계한다
영국 땅에서 샴페인은 한 방울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샴페인의 맛은 런던의 식탁이 정했고, 샴페인 하면 떠오르는 얼굴, 시가를 문 정치가도 영국인입니다. 산지가 만든 술을 시장이 완성한, 수요가 공급을 설계한 완벽한 사례가 아닐까요? 와인은 만드는 자의 것이라고들 하지만, 가끔은 마시는 자가 역사를 씁니다.

다음에 샴페인 잔을 들 일이 있다면, 라벨을 한번 들여다보시죠. ‘브뤼(Brut)’라는 글자가 보인다면, 그 잔에는 150년 전 런던의 고집이 담겨 있는 겁니다.

※ 매경+ 와인프릭에서 더 자세히 다룬 이야기

- 007의 샴페인은 이렇게 정해졌다 — 1956년 이언 플레밍의 소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시작해 1973년 ‘죽느냐 사느냐’로 스크린에 데뷔한, 제임스 본드와 볼랭저의 반세기

- 악수 한 번의 가격 — 1978년 본드 제작자 ‘커비’ 브로콜리와 볼랭저 가문이 계약서 없이 맺은 신사협정, PPL 비용 0원으로 14편의 영화에 등장하고 ‘볼리(Bolly)’라는 애칭까지 얻은 비결

- 2029년, 200번째 축배 — 1884년 빅토리아 여왕의 로열 워런트부터 창립 200주년 준비까지, 지난 6월 직접 찾은 볼랭저 하우스가 포도밭 위에 짓고 있는 것

볼랭저 하우스. [전형민 기자]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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