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판 아우슈비츠' 생존화가 별세…"대학살 역사적 증인"

박진형 2026. 8. 1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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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 정권(1975∼1980년) 당시 '캄보디아판 아우슈비츠'로 악명을 떨쳤던 S-21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킬링필드' 대학살을 증언한 화가 보 멩이 85세로 별세했다.

17일(현지시간) 유엔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ECCC) 등에 따르면 보 멩은 지난 14일 노환으로 숨졌다.

캄보디아 전범재판소는 "보 멩의 별세는 잔혹한 크메르 루주 정권 동안 자행된 심각한 범죄, 특히 전 S-21 보안 센터에서 일어난 역사와 비극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증인의 상실을 뜻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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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멩, 폴포트 초상화 그려 살아남아…수감자 2만명 중 12명만 생존
그림 등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의 학살 참상 생생히 증언
'크메르루주판 아우슈비츠' 생존 화가 보 멩 2011년 6월 25일(현지시간) 캄보디아의 '쩡액 대량학살 센터' 전시관에서 보 멩(앞쪽) 등 학살 생존자들이 희생자들의 유골 앞에 서 있는 모습. 2026.08.17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크메르 루주 정권(1975∼1980년) 당시 '캄보디아판 아우슈비츠'로 악명을 떨쳤던 S-21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킬링필드' 대학살을 증언한 화가 보 멩이 85세로 별세했다.

17일(현지시간) 유엔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ECCC) 등에 따르면 보 멩은 지난 14일 노환으로 숨졌다.

캄보디아 전범재판소는 "보 멩의 별세는 잔혹한 크메르 루주 정권 동안 자행된 심각한 범죄, 특히 전 S-21 보안 센터에서 일어난 역사와 비극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증인의 상실을 뜻한다"고 밝혔다.

보 멩은 뚜올슬랭 수용소로도 알려진 S-21에서 2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79년 베트남군이 크메르 루주를 몰아냈을 때 이곳에서 발견된 단 12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이들을 제외한 S-21 수감자 약 2만 명은 모두 이곳 또는 인근 쩡액 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1941년 캄보디아 중부 깜뽕짬주의 농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젊었을 때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영화관 간판을 그리다가 크메르루주에 가담, 선전 포스터 그리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1977년 대다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유도 모른 채 간호사인 아내와 함께 체포됐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아내와는 그날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는 2010년 출간된 자신의 전기에서 수감 당시 "매일 밤 달을 바라봤다"면서 "건물 주위에서 사람들이 울고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어머니 도와주세요, 어머니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회상했다.

보 멩은 이곳에서 7일 동안 전기고문과 채찍질 등 잔혹한 고문에 못 이겨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이유로 화가 일을 맡아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1925∼1998)와 중국 마오쩌둥, 북한 김일성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들 공산주의 지도자의 그림을 실제 인물과 똑같이 제대로 그리지 못하면 살해될 것이라는 위협 속에서도 그림을 잘 그려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하자 자신이 목격한 참상을 생생한 그림과 전기 등으로 남겨 대학살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2009년에는 S-21 소장을 맡았던 깡 겍 이어우(1942∼2020)의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나서 그가 종신형을 선고받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재판에서 보 멩이 깡 겍 이어우에게 자신과 함께 체포된 아내의 행방을 아느냐고 묻자 깡 겍 이어우는 아내가 학살 장소로 보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 멩 부부가 체포되고 이들의 두 자녀도 수용소로 보내져 그곳에서 굶주림 끝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살아남은 이후 재혼했지만, 지갑 속에 첫 아내의 작은 초상화를 계속 갖고 다니면서 "나는 그를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럴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고 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또한 꿈에 동료 수감자들의 유령이 나타나 자신들을 위해 정의를 이뤄달라고 요구한다면서 괴로워하기도 했다.

크메르 루주 대학살의 방대한 기록을 수집해온 캄보디아 기록센터의 창 육 소장은 보 멩의 정의를 위한 삶의 여정이 기록에 남았다면서 "전 세계 대량학살의 역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AP 통신에 밝혔다.

크메르 루주는 1975년 4월 론 놀의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이후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며 무수한 주민에 대해 학살과 고문을 자행했다.

이후 1979년 1월 베트남의 침공으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처형, 고문, 기아, 강제노동 등으로 당시 캄보디아 전 인구의 무려 약 4분의 1인 170만∼220만명을 숨지게 한 것으로 추산된다. 1984년 영화 '킬링 필드'로 이런 참상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대학살 50주년 추모 공연 작년 5월 20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쩡액에서 열린 크메르 루주 공산주의 정권의 대학살 50주년 추모 행사에서 학생 배우들이 크메르 루주의 고문 만행을 재연하는 모습. 2026.08.17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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