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바꾼 경제권력…이재용·최태원 ‘투톱’ 더 강해졌다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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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은 시대의 희망이 되고, 어떤 이름은 시대의 과제가 된다. 국민이 누구에게 열광하고 누구에게 힘이 있다고 느끼는지, 그 이름들을 한 줄로 세우면 한 시대의 초상이 된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제인 또는 경제관료 부문 조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거머쥐었다.
방산·우주항공·조선·에너지 사업을 이끌며 그룹 변화를 주도해온 김 수석부회장은 한국 경제를 이끌 차세대 경영인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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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11년 연속 1위·崔 지목률 2년 새 3배…정의선도 건재
젠슨 황 ‘깜짝 진입’·신현송 첫 10위권…여성 리더는 ‘전멸’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어떤 이름은 시대의 희망이 되고, 어떤 이름은 시대의 과제가 된다. 국민이 누구에게 열광하고 누구에게 힘이 있다고 느끼는지, 그 이름들을 한 줄로 세우면 한 시대의 초상이 된다. 그리고 이름이 뜨고 지는 자리에는 당대의 민심이 있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37년째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물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권력의 이동이 역동적인 해다. AI(인공지능)가 산업의 판을 흔드는 사이, 탄핵이 남긴 정치적 여진은 대한민국의 권력 지도를 다시 그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톱3'에 진입했다. 1년 새 주가가 5배 넘게 뛴 SK하이닉스의 고속 성장과 맞물려 그룹 총수의 영향력도 한층 커진 셈이다. 정치의 부침은 더욱 극적이다. 지난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혔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올해 톱10에서 빠졌다. 그 빈자리에는 역설적으로 윤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던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시대의 명암을 읽으려면, 명단의 빈칸도 직시해야 한다. 올해 전체 영향력 톱10에는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세대의 벽도 여전히 높았다. 톱10에 오른 정치·경제 인사 6명의 평균 나이는 만 60세다. 손흥민과 BTS(방탄소년단)가 그라운드와 무대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동안, 대한민국 권력의 시계는 여전히 더디게 흘렀다. 떠오른 이름과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한 얼굴들. 그 엇갈린 풍경 속에 대한민국의 현재가 있고, 앞으로 넘어야 할 벽이 있다. 2026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2026년 한국 경제의 주연은 단연 반도체다. 상반기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의 40%에 육박하며 매월 역대 최고 수출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증시에서는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며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 같은 경제 지형 변화는 대중과 전문가 평가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제인 또는 경제관료 부문 조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거머쥐었다. 특히 두 경영인의 지목률은 일반 국민과 전문가 집단 모두에서 전년 대비 대폭 상승하며 한국 경제에 미치는 미증유의 영향력을 증명했다.

이재용, 2016년 이후 11년 연속 1위
올해 조사에서는 통화 정책 수장의 교체와 함께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석 달 만에 순위권에 진입하며 금융·통화 정책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했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 각각 4위와 9위에 오르며 '부자(父子) 경영인 동시 10위권 진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반면 예년과 달리 국민과 전문가 집단 모두에서 10위권 내 여성 경제인 및 경제관료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또는 경제관료' 부문에서 압도적인 주목률을 기록하며 2016년부터 11년 연속 1위 자리를 수성했다. 그는 일반 국민 조사에서 전년(83.4%)보다 소폭 상승한 84.6%의 지목률을 기록했다. 전문가 조사에서의 기세는 더욱 거셌다. 전년 대비 15.0%포인트 폭등한 89.8%의 지목률을 받아, 전문가 10명 중 9명이 이 회장을 한국 경제의 절대적 리더로 꼽았다.
공고해진 위상의 배경에는 반도체(DS) 부문의 폭발적인 실적 반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DS 부문에서만 89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엔비디아와 애플을 제치고 전 세계 기업 중 2분기 영업이익 1위에 올랐다. 1분기 영업이익(53조7000억원)을 합친 상반기 DS 부문 누적 영업이익은 143조원에 육박했다. 증권가가 전망하는 올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386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촉발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발과 메모리 전반의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이 역대급 실적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이를 단순히 '슈퍼사이클'의 수혜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HBM 초기 대응 지연으로 시련을 겪을 당시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오히려 늘리고 HBM3E 재설계와 조직 쇄신을 감행한 이 회장의 '기술 초격차' 뚝심이 AI 붐과 맞물리면서 결실을 맺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도 뜨겁게 응답했다. 1년 전 6만원대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6월 장 중 37만4500원까지 치솟았고, 5월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최근 조정장 속에서도 증권가는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매수 추천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AI 시대 주도권 확보를 위해 전국에 총 2655조원 규모의 초대형 생산 거점 투자를 발표했다. "AI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가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이 회장의 약속이 현실화할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최태원, 2년 만에 지목률 3배 이상 증가
2위에 오른 최태원 회장은 순위는 지난해와 같았지만 지목률에서 비약적인 상승을 이뤄냈다. 최 회장은 일반 국민 조사에서 66.6%, 전문가 조사에서 64.8%의 지목률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8.0%포인트, 33.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2024년 조사(일반 24.0%, 전문가 19.6%)와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지목률이 3배 이상 뛰어오른 셈이다.
최 회장의 영향력 급등은 SK하이닉스가 써내려간 역사적 실적에 근간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으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에서 보기 힘든 76%에 달했다. 주가 역시 올해 5월 장 중 200만원을 돌파하며 '200만 닉스' 시대를 열었고, 시가총액은 1400조원대로 부상했다.
이 같은 결실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당시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린 최 회장의 선구안과 2019년 반도체 불황기에도 HBM 투자를 집요하게 이어간 뚝심의 결과다. 엔비디아의 핵심 HBM 공급사로 입지를 굳힌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하며 미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 중 역대 최대 규모인 265억 달러를 조달했다. 최 회장은 이를 실탄 삼아 미국 인디애나 패키징 공장과 용인 클러스터 등 2100조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SK㈜와 SK에코플랜트 등을 통해 AI 데이터센터와 차세대 전력망까지 연결하는 '풀스택(Full-stack)' 밸류체인을 고도화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일반 국민(29.6%)과 전문가(19.8%) 조사 모두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일반 국민 조사에서는 전년(24.2%)과 동일한 순위를 유지했고, 전문가 조사(11.4%)에서는 한 단계 상승했다. 주목률 역시 매년 견조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톱 3' 완성차 제조사로서의 탄탄한 실적 기반 위에, 올 초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6'에서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피지컬 AI' 청사진이 대중과 전문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로보틱스와 모빌리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피지컬 AI 생태계 리더로의 체질 개선을 선언한 것이다.
이 구상은 총 9조원이 투입되는 '새만금 AI 밸리' 프로젝트로 가시화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GPU 5만 장급 초대형 데이터센터,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대규모 수전해 플랜트 및 기가와트(GW)급 태양광발전 시설이 들어서며,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로봇·수소 기술이 집약된 미래형 산업도시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올해 조사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취임 석 달 만에 순위권에 진입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다. 신 총재는 일반 국민 조사 7위(4.2%), 전문가 조사 6위(3.8%)에 이름을 올렸다. 기준금리와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한국은행 수장으로서, 취임 직후부터 제시해온 긴축적 통화 정책 기조의 방향과 속도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다.
한은은 올해 7월 신 총재 취임 후 열린 두 번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1년2개월간 이어진 동결 흐름을 깨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신 총재는 물가, 환율, 주택시장 등의 상황을 고려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금융, 주식, 부동산 시장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신 총재에 대한 주목도는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한화 父子 동반 진입…젠슨 황 10위
전문가 그룹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곳은 한화그룹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문가 조사에서 4.6%의 지목률로 4위에 올랐고(일반 국민 9위, 3.6%),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은 전문가 조사 9위(1.6%)로 10위권에 처음 진입했다. '부자(父子) 경영인'이 동시에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김 회장은 김 수석부회장으로 그룹 경영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산·우주항공·조선·에너지 사업을 이끌며 그룹 변화를 주도해온 김 수석부회장은 한국 경제를 이끌 차세대 경영인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일반 국민 4위(10.4%), 전문가 5위(4.0%)를 기록하며 고른 주목도를 유지했다. AI·바이오·클린테크(ABC)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내실 있는 투자가 실속 리더십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관료로는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일반 5위 6.2%, 전문가 8위 2.8%)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일반 8위 3.8%, 전문가 7위 3.2%)이 이름을 올렸다. 구 부총리는 지난해(일반 7위 6.2%, 전문가 8위 3.2%)에 이어 2년 연속 10위권 내에 자리했고, 김 실장은 처음으로 순위권에 진입했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률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부동산 세제 개편,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겐 달갑지 않은 관심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일반 국민 6위(5.4%), 전문가 10위(1.4%)로 지난해 대비 지목률과 순위가 모두 하락했다. 올해 5월 벌어진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과 관련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한 결과로 풀이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10위권 진입(일반 국민 2.8%)이다. 외국인 CEO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순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글로벌 AI 붐과 반도체 공급망에서 엔비디아가 한국 증시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이 입증된 셈이다. 방한 당시 보여준 친근한 모습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0위권 내 여성 경제인이 전멸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지난해 일반 국민 조사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4%), 전문가 조사에서 최수연 네이버 대표(2.4%)와 정신아 카카오 대표(2.0%)가 이름을 올렸던 것과 대비된다. 플랫폼·유통 업계의 부진과 반도체·방산 등 중후장대 제조 대기업으로의 경제적 권력 쏠림이 심화하면서 여성 리더들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성 경제인 및 관료 중 최고 순위는 전문가 조사 11위(1.0%)에 오른 한성숙 국무총리다.

■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100명씩 전문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2022년부터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 국민 조사를 신설해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7월6일부터 7월24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 국민 조사는 패널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올해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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