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까지 의대에 기증’… 한평생 이웃 안았던 ‘의령 봉사왕’ 공도연 할머니 영면에 들어

강승우 2026. 8. 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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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든 나의 시신을 의대에 기증하거라."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며 어두운 곳을 밝혀왔던 '의령 봉사왕' 고(故) 공도연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이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공도연 할머니는 평생 이웃을 위한 나눔을 삶으로 보여주시고 마지막까지 봉사로 삶을 완성하신 분"이라며 "고인이 보여준 한결같은 이웃 사랑은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해야 할 참된 봉사의 모습이다. 의령군민과 함께 그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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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든 나의 시신을 의대에 기증하거라.”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며 어두운 곳을 밝혀왔던 ‘의령 봉사왕’ 고(故) 공도연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이다.

살아생전 옷 한 벌, 밥 한 끼 선뜻 내어놓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의학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자신의 몸마저 내어놓았다.

한평생을 바친 헌신과 마지막 시신 기증까지, 인생 전체를 아름다운 봉사로 가득 채운 공 할머니가 별세 3년 만에 ‘마지막 봉사’를 마치고 비로소 영면에 들었다.

17일 경남 의령군에 따르면 공 할머니와 남편 고(故) 박효진 할아버지는 지난 14일 진주시 안락공원에서 함께 화장됐다.

한평생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의령 봉사왕 고(故) 공도연 할머니와 남편 고(故) 박효진 할아버지. 의령군 제공
화장을 마친 부부의 유골은 같은 날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생명존중실에 나란히 안치됐으며, 앞으로 30년간 이곳에 모셔진다.

공 할머니는 2023년 9월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할머니의 시신을 경상국립대 의대에 기증했다.

앞서 2022년 4월에 먼저 세상을 떠난 박 할아버지 역시 시신을 기증해 대학에 보존돼 있었고, 부부는 떠나는 마지막 길까지 함께 의학 발전을 위한 봉사자로 남게 됐다.

두 사람의 시신은 지난 7월 말까지 의대생 해부학 실습과 교수진의 임상 연구에 활용되며 숭고한 소임을 다했다.

생전 공도연 할머니. 의령군 제공
공 할머니의 봉사 인생은 눈물겨운 삶의 궤적과 닿아 있다.

17살의 나이에 천막집으로 시집온 할머니는 끼니조차 잇기 힘든 가난 속에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 밤샘 뜨개질을 하며 겨우 살림을 일으켰다.

가난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는 형편이 조금 풀린 30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웃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아 마을 간이상수도 설치와 지붕개량을 돕고, 1985년에는 주민들의 의료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사비를 털어 구입한 땅 225㎡를 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를 세우게 했다.

주민들은 할머니의 선행에 고마움을 전하고자 1976년 당시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할머니의 나눔은 단 한 해도 쉬지 않았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쌈짓돈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이웃을 찾았다.

80세의 고령이 되어서는 35kg에 불과한 가녀린 몸으로 리어카를 끌며 고물과 나물을 팔아 번 돈까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60여 차례의 표창과 2020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지만, 할머니의 봉사일기에는 늘 겸손함과 사랑만이 적혀 있었다.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고(故) 공도연 할머니가 평생의 봉사활동을 빼곡히 적어 내려간 ‘봉사기록일기’. 의령군 제공
장녀 박은숙씨는 “엄마에게 봉사는 삼시 세끼 자식 밥을 챙기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을 돌보듯 정말 많은 사람을 거두고 살았다”며 “사람들이 그런 엄마를 오래 기억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전 꿈에 엄마와 아버지가 깨끗한 옷을 입고 함께 나왔다. 돌아가시고 2년 넘게 차가운 병원에 계셨는데 이제 마지막 봉사까지 다 마치고 좋은 곳으로 가시는 것 같다”며 “엄마의 10%라도 닮고 싶다. 그것이 엄마의 뜻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장남 박해곤씨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에도 자식으로서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며 “이제 두 분이 하실 일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크다. 이제는 정말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기억해준 군민들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공도연 할머니는 평생 이웃을 위한 나눔을 삶으로 보여주시고 마지막까지 봉사로 삶을 완성하신 분”이라며 “고인이 보여준 한결같은 이웃 사랑은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해야 할 참된 봉사의 모습이다. 의령군민과 함께 그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의령=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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