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른 색으로 함께 빛나는 동네 사람들 [출장 편집국]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올해 도내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문화공동체와 함께하는 출장 편집국'을 진행합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지역공동체활성화프로젝트' 사업 지원을 받은 일종의 체류형 지역 기록 프로젝트입니다.
그렇게 봉숫골 동네지도를 만들기도 했고, 한산한 겨울을 이용해 '봉수골 화양연화전'이란 축제도 진행했다.
동네 주민 중 뜨개질 고수가 몇 명 있어 교육도 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봉숫골 가로수 대부분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뜨개옷이 만들어졌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 통영에서 만난 사람- 봉평동 동네 모임 봉수비전
통영이 좋아 봉숫골에 자리 잡은 사람들
‘비수기 재밌게 보내자’ 자연스레 모여
가로수 뜨개옷 입히기, 동네지도 제작 등
느슨한 연대와 다양한 결합으로 활동 중

봉숫골은 예쁜 동네다. 통영 여느 주택가처럼 좁은 골목과 오래된 아파트,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서 정겨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봉평동이고, 옛 지명은 봉수동(烽燧洞)이다. 조선시대부터 불리던 이름인데, 미륵산 정상 근처에 봉수대가 있어 봉수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토박이말로는 봉숫골이다.
이곳에는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카페, 식당 같은 공간이 제법 많다. 사람이 엄청나게 몰리는 동네는 아니지만, 취향이 확실한 여행객들이 자주 찾아온다. 겉으로 보면 조용한 동네 같지만, 은근한 활기가 있다. 이 활기의 중심에 봉평동 동네 모임 봉수비전이 있다.

봉숫골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로 이름이 봉수로다. 용화사거리에서 시작해 봉평주공아파트 지나 주차장까지 600m 정도 되는 느슨한 오르막길이다. 미륵산 용화사 가는 길 혹은 미륵산 등산로 입구라고 해도 좋다. 이 주변으로 식당, 편의점, 카페 등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봉수로는 통영시가 지정한 '화가 전혁림 거리'다. 전혁림미술관이 이곳에 있다. 봉숫골은 '색채의 마술사',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며 통영 특유의 바다색을 화폭에 담았던 서양화가 전혁림(1916~2010)이 만년에 정착해 많은 작품을 남긴 곳이다.
언젠가부터 이 거리에 예쁘고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체로 2014년 전혁림미술관 옆 주택을 개조해 문을 연 '봄날의 책방'을 시작으로 본다. 이곳은 남해의 봄날이란 출판사가 운영하는 조그만 동네 서점이다. 요즘 곳곳에 많이 생긴 동네 책방의 시초라고 해도 좋을 곳이다.
남해의 봄날은 서울에서 살던 부부가 굳이 고향도 아닌 통영에다 차린 출판사다. 시작할 때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지역 이야기를 찾고, 지역 저자를 발굴하고, 지역 젊은이들을 채용했다. 통영 이야기가 아니라도 지역 공동체 문화나 지역성의 소중함을 담은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전혁림미술관에 이어 봄날의 책방이란 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봉숫골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조용하면서도 정다운 봉숫골의 매력을 알아본 이들이 하나둘 가게를 내기 시작했다.

통영이 좋아 봉숫골로 스며든 이들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통영이라는 도시의 매력과 함께 저마다 삶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려는 생각도 크다. 이렇게 삶의 방향이나 태도가 비슷한 봉숫골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만든 모임이 바로 봉수비전이다.
"8년 전인가 외부에서 봉숫골로 오신 분들이 조금 계셨습니다. 한 열 분 정도? 초창기에는 남해의 봄날을 포함해서 서로 코드가 맞고 결이 비슷한 이들이 왕래를 조금씩 하고 있었죠. 그러다 몇몇 분들이 더 합류했고, 모임이란 걸 하면서 그래도 이름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 해서 봉수비전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지난해까지 봉수비전 대표를 맡았던 장재윤(57) 봉숫골 사진관 모노드라마 대표의 이야기다. 봉수비전은 '봉숫골 비수기 전문가'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봉숫골이 의외로 관광객이 많이 유입되는 곳은 아니에요. 오시는 분들은 대게 목적이 뚜렷하고 취향이 있는 분들이에요. 성수기라고 해봐야 여름 한철 그리고 봄 벚꽃 시즌 정도고, 나머지 기간은 거의 비수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시간 여유도 좀 있고, 비수기를 어떻게 사업적으로든 아니면 생활적으로든 좀 슬기롭게 극복할지 고민했죠. 모임 구성원들이 대부분 봉숫골이나 그 근처에 살고 있어서 재미있게 뭔가를 한 번 같이 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름을 지었어요. 중의적으로 봉숫골 비전도 같이 한번 고민해 보자는 의미도 있죠."


만나는 횟수가 늘고 조금씩 서로를 파악하게 된 후로는 다 같이 혹은 뜻이 맞는 이들끼리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숫골 동네지도를 만들기도 했고, 한산한 겨울을 이용해 '봉수골 화양연화전'이란 축제도 진행했다. 올해도 열릴 예정인 화양연화전은 봉수비전에 속한 봉숫골 가게들이 함께 다양한 체험과 전시, 투어, 누리소통망(SNS) 이벤트까지 여는 행사다.
그러다 전 대표가 2024년부터 대표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2024년과 지난해 봉숫골 가로수 뜨개옷 입히기를 들 수 있다.
"봉숫골 가로수가 전부 벚나무거든요. 3~4월 벚꽃 필 때만 주목받으니까 가을, 겨울 비수기에도 효용 가치를 높여보자고 해서 뜨개옷 입히기 사업을 했어요."
통영시 공모 사업 신청으로 재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동네 주민 중 뜨개질 고수가 몇 명 있어 교육도 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봉숫골 가로수 대부분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뜨개옷이 만들어졌다.
뜨개질로 기부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겨울 동네 어르신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나도록 뜨개 모자와 목 방한대(넥워머)를 봉평동행정복지센터에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통영문화도시센터가 진행하는 통영예술여행 사업에도 참여해 봉숫골 사진투어, 나만의 조향클래스, 카드 지갑 뜨개 클래스 등 '봉평 도남권역 봉수골 오감여행'을 진행했다.
모임 구성원들은 저마다 재주가 있으니 다양한 협업이 가능하다. 봉수비전 구성원 5명이 만드는 봉숫골 소식지 <봉다리>가 대표적이다.
봉다리는 '봉숫골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줄인 이름이다. 2025년 통영청년동아리 육성 지원사업에 지원해 일상 속 다양한 물건을 담는 봉다리(봉지)처럼 봉숫골에 누가 무슨 일을 하는 지, 통영에서 무슨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 등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바쁨과 즐거움 사이에서
현재 봉수비전 단체 카카오톡방에는 20명 정도가 들어와 있다. 매달 정기 모임에는 7~8명 정도가 나온다.
"요즘 봉숫골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2~3곳 정도인데, 그런 곳 사장님들은 자주 못 오시죠. 바쁘다는 건 장사가 잘 된다는 겁니다. 다들 장사가 잘 돼서 아무도 모임에 안나오면 그것도 좋지만, 우리가 그렇게 바쁘게만 살려고 통영 봉숫골에 온 건 아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적당한 선을 찾는 게 늘 고민이죠." (장 전 대표)
봉수비전은 올해 조금 쉬어가자는 뜻으로 대표 없이 조금은 느슨하게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느슨함이야 말로 봉수비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큰 비결 중 하나다.
한편, 지난 17일 거제·통영 극한 호우로 봉숫골 도로가 계곡같이 급류로 변했고, 토사는 1층 건물을 휩쓸어 큰 피해가 났다. 봉수비전 구성원들 저마다 피해가 클 것이다. 하루 빨리 아픔을 이겨내도록 응원을 보탠다.
/이서후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