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 광물에 무릎 꿇은 미국, 한국 기술 발판삼아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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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북서쪽으로 약 80㎞를 달리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는 컴벌랜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편이라는 테네시의 산업용 전기와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는 풍부한 수자원, 제련소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춘 이곳에 미국 유일의 아연 제련소가 있다.
특히 미국은 자신들이 특히 취약한 제련·정련 관련 기술과 수십년의 운영 경험을 가진 고려아연을 접촉했고, 투자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스티븐 머클리 크루서블 징크 공장장은 "미국은 아연 순수입국"이라며 "고려아연이 새로 생산할 아연은 미국에서 전량 소비될 것이며, 그렇게 해도 미국 전체 수요의 약 30%밖에 충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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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북서쪽으로 약 80㎞를 달리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는 컴벌랜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편이라는 테네시의 산업용 전기와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는 풍부한 수자원, 제련소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춘 이곳에 미국 유일의 아연 제련소가 있다. 6일(현지시각) 찾은 공장에는 기존 이름 대신 ‘크루서블 징크’(Crucible Zinc)라는 새 이름이 걸려 있었다. ‘한국 기업-미국 정부’가 협력하는 전례 없는 프로젝트로 공장의 새 주인이 된 고려아연이 지난 4월 새로 붙인 이름이었다.

48년 쉬지 않은 제련소, 새 주인을 맞다

이곳에서 48년을 일한 공정 책임자 테리 댑스(71)는 한겨레에 “우리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공장을 돌린다”며 “1978년 문을 연 뒤 매년 한차례 정비 때 잠시 세우는 것을 빼면 가동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직원 300여명이 24시간 3교대로 일하며 꾸려온 이 제련소는 1978년 설립 이후 소유주가 총 7차례나 바뀌는 등 심한 부침을 겪어왔다.
약 20만평의 신규 공장 부지는 기존 공장과 맞닿아 있지만 아직 풀과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기존 부지 25만평을 합치면 전체 면적은 45만평으로 고려아연의 주력 생산기지인 울산 온산제련소 43만평과 비슷하다. 올해 안에 나무를 베고 땅을 고르는 정지 작업을 진행하고, 연말께 기공식도 열 계획이다. 내년 초 이곳을 통합제련소로 탈바꿈하는 본공사에 들어가 2029년부터 아연 등 일부 공정을 돌리고 2030년 전면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제련소 부지 안에는 숨겨진 ‘보물’도 있다. 잔잔한 인공호수처럼 보이는 거대한 저류지, 이른바 ‘폰드’였다. 수십년간 제련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침전물이 물밑에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는 곳으로 총 6개의 폰드가 조성돼 있다. 겉보기엔 파란 하늘이 비치는 고요한 연못 같지만, 수면 아래에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막대한 핵심 광물이 잠들어 있다. 테리는 “이 안에는 철과 아연, 연뿐 아니라 미국의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게르마늄·갈륨·은·구리 등 희소금속이 다량 함유돼 있다”며 “정확한 값을 매기기는 어렵지만 수십억달러 규모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부지를 직접 시찰한 뒤 ‘폰드 가치만 봐도 매력적인 딜이다’라고 단언했는데, 그게 정확히 맞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이 회사는 제련 부산물에서 유가금속을 경제성 있게 분리·회수할 기술과 설비가 부족했다. 고려아연은 부산물을 다시 원료로 활용해 여러 유가금속을 추가로 회수해온 기술을 이곳에 적용할 계획이다. 신공법이 적용되면 게르마늄, 갈륨, 인듐 등 부가가치가 풍부한 전략광물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지붕이 있는 창고에는 또 다른 ‘보물’인 ‘하이 실버 케이크’도 보였다. 은이 주로 함유된 폐기물로, 고려아연 관계자는 “약 800톤으로, 은 함유율이 2%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함유율이 2%라면 은만 약 16톤이다. 현재 시가를 단순 적용하면 400억~5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달 첫 물량을 한국 온산제련소로 보내 은을 추출·정련할 계획이다.
관세전쟁 뒤 ‘광물 독립’ 나선 미국
이때부터 미국은 핵심 광물 광산부터 제련·정련까지 공급망 전체를 자국 안에 구축하는 방향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자신들이 특히 취약한 제련·정련 관련 기술과 수십년의 운영 경험을 가진 고려아연을 접촉했고, 투자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해 한국 조선업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제련업 버전’인 셈이다.

새 통합제련소가 완공되면 연간 약 110만톤의 원료를 처리해 54만톤의 제품을 생산한다. 아연·연·구리와 금·은을 비롯해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갈륨·게르마늄 등 비철금속 12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11개 품목이 미국 정부 지정 핵심 광물이다. 스티븐 머클리 크루서블 징크 공장장은 “미국은 아연 순수입국”이라며 “고려아연이 새로 생산할 아연은 미국에서 전량 소비될 것이며, 그렇게 해도 미국 전체 수요의 약 30%밖에 충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게르마늄과 갈륨이다. 머클리는 “게르마늄과 갈륨의 미국 내 수요 전체를 충당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들 금속은 국방 장비와 반도체,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비스무트와 인듐도 미국 수요의 약 절반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사업에 뛰어든 방식도 이례적이다. 전체 투자 규모는 운전자금과 금융비용을 포함해 74억달러(약 10조5000억원)다. 미 국방부가 최대 주주로 참여하고 미국 전략적 투자자들이 함께 출자한 조인트벤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했다. 미 상무부도 반도체법을 통해 2억1천만달러(약 2900억원)를 지원한다. 단순히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 정부가 참여한 투자기구가 한국 민간기업의 주요 주주로까지 들어가는 구조다.
미국은 아연을 비롯한 핵심 광물의 대규모 순수입국인 동시에 반도체·인공지능·방산 등 첨단 산업 수요가 집중된 세계 최대 시장 가운데 하나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면 관세와 장거리 물류 부담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장기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 중국 중심으로 재편된 핵심광물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제련 기술이 미국의 국가안보 공급망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한-미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74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가 미국에 집중되면서 국내 설비투자와 고용에 미칠 영향, 미국 정부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면서 향후 경영 자율성이 제약될 가능성 등은 한국 입장에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머클리는 “소유주가 바뀔 때마다 단기 이익만 취하려는 ‘관리자’들이 왔다”며 “고려아연은 현장에서 직접 공정을 다뤄본 ‘운영자’들이라서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클라크스빌(미국 테네시주)/글·사진 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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