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표석에 ‘中 조선족 저명시인’… “조선족, 길어야 두 세대 갈 것”

룽징=조종엽 기자 2026. 8. 1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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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1917∼1945)이 다녔던 명동학교 옛터 기념관 앞엔 "(중국) 각 민족은 석류 알갱이처럼 단단하게 하나로 뭉치자(各民族要像石榴籽一样紧紧抱在一起)"라고 적힌 석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중국 측이 복원한 명동촌의 윤동주 시인 생가 앞엔 '中國 朝鮮族 著名(저명)詩人·중국 조선족 유명시인'이라고 쓰인 표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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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조선족자치주 명동촌 가보니
尹 생존 당시엔 없던 ‘조선족’ 사용… 다닌 학교엔 ‘각 민족 뭉치자’ 조형물
한민족 지우고 중화민족으로 조명
조선족 학교 통폐합-한글교육 축소… 우리말 못하는 학생들 크게 늘어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 명동촌 명동학교 옛터 기념관 앞에 들어선 대형 석류 조형물. “(중국) 각 민족은 석류 알갱이처럼 단단하게 하나로 뭉치자”라고 쓰여 있다. 명동촌은 한인들의 간도 개척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룽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지난달 16일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용정)시 명동촌(明東村).

윤동주 시인(1917∼1945)이 다녔던 명동학교 옛터 기념관 앞엔 “(중국) 각 민족은 석류 알갱이처럼 단단하게 하나로 뭉치자(各民族要像石榴籽一样紧紧抱在一起)”라고 적힌 석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석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과 소수민족의 단결을 촉구할 때 즐겨 사용하는 비유다.

거리의 게시판엔 ‘촌(村) 간부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라며 “민족분렬(분열)세력과 그들의 활동을 방임 또는 지지하는 행위”가 명시됐다. 용정은 북간도 개척과 항일운동의 중심지로, 여전히 옌볜에서도 조선족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 중국 당국이 경계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중국 조선족 시인 윤동주’

지난달 중순 이계형 국민대 교수(중국조선족연구소장)와 함께 중국 용정과 옌지(延吉·연길) 일대를 답사한 결과,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희미해지거나 ‘중화민족의 일원’인 조선족의 활동으로 조명되는 모습이 목격됐다.

윤동주 시인을 ‘중국 조선족 유명 시인’으로 소개한 생가 입구 표석. 룽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중국 측이 복원한 명동촌의 윤동주 시인 생가 앞엔 ‘中國 朝鮮族 著名(저명)詩人·중국 조선족 유명시인’이라고 쓰인 표석이 있었다. ‘조선족’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절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수식어로는 맞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2024년 봄 무렵까진 이 자리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었다. “佩, 鏡, 玉(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별 헤는 밤’에서)이라며 중국을 이국(異國)으로 인식했던 시인을 두고 ‘조국 중국을 사랑했던 시인’으로 규정했던 것. 그나마 ‘너무 말이 안 된다’는 걸 뒤늦게 인정한 결과 바뀐 것으로 풀이된다.

1994년 복원돼 윤동주기념관으로 탈바꿈했던 옛 대성중학교 건물은 가려졌다. 김재홍 규암독립사상연구소 소장(전 함북도지사)은 “대표적 민족주의 학교였던 이 학교 건물은 올해 들어 바로 앞에 2층 높이의 담장이 둘러쳐져, 밖에서 아예 보이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이 건물은 이미 2018년경 관람이 차단됐을 뿐 아니라, 팬데믹 당시 시비(詩碑)가 철거되고 흉상은 구석으로 옮겨졌다.

우리말 못 하는 조선족 아이들

항일운동 기념사업에서도 한국과의 연계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1919년 서전대야(瑞甸大野)에서 1만여 명이 모인 ‘3·13 만세운동’ 당시 이를 진압하는 중국 군벌의 발포로 현장에서만 한인 13명이 순국했다. 하지만 최근엔 ‘조선족과 중국인이 함께 벌인 항일운동’으로 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용정에서 조직돼 한국 측과 함께 꾸준히 이날을 기념해 오던 ‘3·13 기념사업회’는 약 3년 전 중국 당국의 지시로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사업회 관계자였던 조선족 인사가 당국 눈치를 보느라 3·13 당일엔 열사릉에 못 가고, 다음 날 살짝 가서 술을 올리고 왔다”고 전했다.

답사에서 바라본 연길 등지의 상점 간판은 한자가 먼저 쓰이고 한글이 병기돼 있었다. 원래 한글이 앞에 쓰였지만 몇 년 전부터 앞뒤 순서를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온 결과다.

특히 우리말을 못 하는 조선족 아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족 학교가 한족 학교와 통폐합돼 사라진 데다, 용정과 연길 등지의 초등학교에서도 3, 4년 전부터 한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소도시 도서관에선 우리말로 된 책을 없애버리고 있다고 한다. 올 3월 중국이 소수민족 모두 학교 교육을 표준 중국어로 통일한다는 내용의 ‘민족단결진보촉진법’을 가결하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 교수는 “조선족 인구 감소와 맞물리며 그나마 전통을 유지하던 조선족 마을도 급속히 관광지화되고 있다”며 “앞으로 길어봐야 두 세대만 지나면 조선족은 만주족처럼 한족에 동화돼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룽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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