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영화표 찾아 ‘방랑’하는 2030

원종빈 기자 2026. 8. 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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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1분 숏폼 보는 시대에
3시간 영화 흥행… 왜
1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영화 ‘오디세이’의 잔여 좌석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 5일 개봉한 오디세이는 이날 누적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임지훈 기자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미국 영화 ‘오디세이’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직장인 권용휘(27)씨는 “유튜브 영상도 조금만 지루하면 넘겨버리는데, 3시간 가까이 영화를 집중해서 본 건 오랜만”이라고 했다.

1분 이내 유튜브 쇼츠 같은 ‘숏폼(짧은 길이 영상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대, 러닝타임 2시간 52분짜리 영화 오디세이가 16일 오전 기준 누적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5일 개봉한 지 12일 만이다. 올해 상반기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최종 관객 1691만명)보다 빠른 속도다. 예매 관객도 100만명을 넘어섰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다룬 172분짜리 영화에 한국 관객이 몰리는 까닭은 뭘까.

◇숏폼 시대에 3시간짜리 영화

극장가는 최근 수년간 침체를 겪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억2668만명이던 연간 극장 관람객 수는 2020~2021년 연간 6000만명 내외로 줄었다. 이후 2023년 1억2514만명까지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1억609만명으로 감소했다. 숏폼 콘텐츠가 보편화하고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영화관 업계 1위인 CJ CGV의 국내 사업부는 영업 손실 128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상영 시간이 3시간 가까운 오디세이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그것도 ‘숏폼 세대’인 20·30대가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CGV 예매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예매 관객 중에선 30대가 26%로 가장 많았다. 20대와 40대가 각각 23%로 뒤를 이었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서는 숏폼 세대도 ‘볼 만한 이유’가 분명한 콘텐츠에는 기꺼이 돈과 시간을 쓴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조건 짧은 콘텐츠만 선호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오디세이를 관람한 20대 이성주씨는 “오디세이는 압도적인 영상미에 더해 줄거리와 메시지가 비교적 선명하다”고 했다.

영화 소재가 20·30대에 친숙하다는 점도 관객을 극장으로 불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30대는 2000년대 초반 1000만 부 넘게 팔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을 통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접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맥스 영화관 찾아 지방 원정

오디세이 흥행에는 ‘아이맥스(IMAX)로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도 한몫했다. 아이맥스 상영 시설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용아맥(CGV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은 오디세이 팬들의 ‘성지’가 됐다. 2만원 안팎 용아맥 좌석 한 장이 6배 가까운 12만원에 거래되는 등 암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국의 아이맥스 상영관은 27곳(수도권 14곳, 비수도권 13곳)이다. 이런 가운데 오디세이를 보기 위해 수도권과 지방을 넘나드는 ‘원정 관람’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신명호(25)씨는 지난 8일 오디세이를 아이맥스로 보기 위해 대전에 다녀왔다. 신씨는 “서울에서 오디세이를 아이맥스로 보려면 최소 2주는 기다려야 했다”고 했다.

한 중고 거래 앱에 올라온 영화 ‘오디세이’의 암표. 일요일 2만2000원짜리 티켓 두 장을 22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앱 캡처

아이맥스는 일반 영화관보다 훨씬 큰 화면과 높은 해상도, 특화된 음향 시스템을 통해 관객이 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에선 1985년 서울 63빌딩에 처음 문을 열었다. 아이맥스 영화관이 이번에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OTT로 보는 것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경험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오디세이는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로 영화 전체를 촬영한 첫 영화다. 황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국내 아이맥스 상영관이 한정돼 있다 보니 희소성 있는 경험이 됐다”고 했다.

◇놀런 영화, 개연성 따지는 한국인 취향 저격

영화계에서는 오디세이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작품이 한국인의 취향과 잘 맞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놀런 감독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에서 보듯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처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놀런 감독의 이런 각본·연출 스타일이 개연성이나 인과 관계를 따지는 성향이 강한 한국인의 취향에 맞았다는 얘기다.

한국 관객들 사이에선 비현실적인 소재를 블록버스터급 볼거리와 결합시켜 ‘놀런 감독 영화는 영화관에서 제대로 봐야 한다’는 입소문도 났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한국 관객은 새로운 기술이나 압도적인 시청각 경험을 직접 체험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놀런 감독이 AI(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지양한다는 점을 들어 오디세이를 두고 ‘아날로그의 정수’ ‘진짜의 힘’이라는 평도 내놓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무엇을 볼지’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디세이는 이런 소비 방식을 공략했다. 통상 극장 영화는 개봉 직후 관객이 몰렸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준다. 배급사가 영화 개봉 전후 마케팅을 집중해 첫 주 관객 수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디세이는 2주차 관객이 오히려 늘었다. 개봉 첫 주 금·토요일인 지난 7~8일 관객은 83만명이었지만, 일주일 뒤인 14~15일에는 97만명으로 증가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SNS를 통해 퍼져나간 오디세이 관련 입소문이 40대 이상 중장년층으로 번진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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