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AI 개발하는 디즈니...‘마법’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들
로봇·AI 기술 적용하는 디즈니
팬 경험 확장

15일(현지 시각) 오전 9시 30분쯤 미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월트디즈니(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가 뒤뚱뒤뚱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진행자가 “올라프,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해줘”라고 하자 고개를 돌린 뒤 무대 왼편으로 걸어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래 한 곡 해달라”고 하자 노래를 불렀고, “이제 들어갈 시간이야”라는 말에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한숨을 쉬며 작별 인사를 했다.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며 사람의 말과 주변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이 로봇은 애니메이션 속 올라프와 같은 크기인 높이 약 89㎝, 무게 약 15㎏으로 만들어졌다. 두 팔은 가느다란 나뭇가지이고 머리는 크지만 목과 몸통, 다리는 가늘어 일반적인 이족 보행 로봇보다 균형을 잡기가 까다로운 구조다. 이를 위해 몸체 곳곳에 액추에이터 25개를 넣고, 내부에 컴퓨터 3대를 탑재했다. 디즈니는 인공지능(AI)의 한 종류인 강화 학습과 로봇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올라프가 걷고 균형을 잡는 방법을 학습하도록 했다. 디즈니 관계자는 “앞서 비슷한 기술이 적용된 로봇 개발에는 1년이 걸렸지만, 당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하면서 올라프 개발 기간은 약 4개월로 줄였다”고 했다.
월트디즈니는 지난 14일부터 미국 애너하임에서 최대 팬 행사 ‘D23 2026’을 열고 영화와 캐릭터, 테마파크에 적용할 AI·로봇 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D23’은 디즈니(Disney)의 ‘D’와 디즈니가 창립된 해인 1923년의 ‘23’을 합친 것으로, 2년마다 개최되는 이 행사에선 디즈니의 신작과 캐릭터 기술 등이 공개된다.
◇AI로 걷고 균형 잡는 캐릭터 로봇
디즈니는 AI와 로봇, 시뮬레이션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화면 속 캐릭터와 이야기를 현실 공간으로 옮기고 있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핵심 조직은 ‘이매지니어링’이다. 카일 러플린 월트디즈니 이매지니어링 연구개발(R&D) 수석부사장은 “우리 연구팀은 앞으로 10년 동안 AI와 로봇을 이용해 어떤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스크린 속 이야기를 물리적인 공간으로 옮기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디즈니가 집중하는 기술 중 하나가 올라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로봇이다. 이를 위해 엔비디아와도 협력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 기반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가상 공간에 여러 개의 ‘가상 올라프’를 만들고, 걷기와 균형 잡기 같은 동작을 반복 학습시키는 식이다. 실제 로봇을 움직이기 전 가상 공간에서 AI 강화 학습을 통해 동작을 익히는 것이다. 지난 3월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행사 ‘GTC 2026’에서는 올라프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 무대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디즈니가 테마파크에 오랫동안 적용해온 ‘애니매트로닉스’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애니매트로닉스는 사람이나 캐릭터의 얼굴과 몸을 기계 장치로만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그간 대부분 한 장소에 고정된 채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직접 테마파크를 돌아다니거나, 자연스럽게 고개와 몸을 움직이며 캐릭터마다 다른 성격을 표현하도록 하고 있다. 스타워즈의 ‘BDX 드로이드’가 대표적이다.
표정 구현에도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고 있다. 기계식 얼굴 위에 실시간 전면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더해 기존 기계 장치만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섬세한 감정 표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얼굴이 붉어지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의 표정도 디지털 영상을 실시간으로 입혀 표현할 수 있다.
지난 6월 애너하임 디즈니랜드의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기계식 애니매트로닉 얼굴에 실시간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캐릭터가 처음 적용됐다. 얼굴 위에 디지털 영상을 실시간으로 입혀 사람이 해골로 변하는 모습을 구현하고, 기존 기계 장치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표정과 감정 표현까지 확장한 것이다.
디즈니는 이처럼 첨단 기술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공연과 로봇,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관람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라이트보드 디즈니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수석 부사장은 “지금 가장 설레는 점은 라이브와 물리적 공간, 디지털과 로봇이 만나는 지점”이라며 “이것이 우리의 경험을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개인화’되는 테마파크 경험
기술을 활용해 테마파크 관람객의 경험도 점차 개인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워즈 놀이기구 ‘밀레니엄 팔콘: 스머글러스 런’이다. 올해 영화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개봉에 맞춰 새로운 미션이 추가됐다. 기존에는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면, 새 미션에서는 탑승객이 직접 어느 행성으로 갈지를 고를 수 있다. 같은 놀이기구를 타더라도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같은 기술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들어설 새 디즈니 테마파크에도 대거 적용될 전망이다. 디즈니는 이곳을 회사 역사상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테마파크 가운데 하나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러플린 부사장은 “지난 70년 동안 배운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빈 캔버스”라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개인화’는 테마파크 밖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디즈니 계열 스포츠 채널 ESPN은 이용자마다 서로 다른 스포츠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스포츠센터 포 유(SportsCenter For You)’를 선보였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대량 송출하던 방식에서 수십만 개의 개인화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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