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들녘-정호승
정훈탁 2026. 8. 16. 08:00

들녘
정호승
날이 밝자 아버지가
모내기를 하고 있다
아침부터 먹왕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다
비온 뒤 들녘 끝에
두 분 다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들녘, 정호승]
바쁘다와 부지런하다는 너무 다르다. 날이 밝자마자 모내기를 하는 아버지와 아침부터 거미줄을 치는 거미는 부지런하다.
나는 요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상대방에게도 많이 바쁘지라고 근황을 묻는다. 부지런하다는 말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좀처럼 쓰지 않는다.
'바쁘다'는 일이 많거나 또는 서둘러서 해야 할 일로 인하여 딴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비슷한말은 '경황없다'이다. 따라서 '바쁘다'는 주어진 일이 먼저가 되는 객체 지향적인 단어다.
반면에, '부지런하다'는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태도가 있다는 뜻으로, 비슷한말은 '근면하다'이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이 먼저가 되는 주체 지향적인 단어다.
더이상의 주객전도를 막기 위해 이제부터는 바쁘다는 말보다 부지런하다는 말을 많이 써야겠다.
나는 요즘 부지런히 일하고 있어. 너도 정말 부지런히 일하고 있구나.
정훈탁/광주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