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작가’보다 사료 배달부가 더 좋아 [임보 일기]

이용한 2026. 8. 1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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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골에서 고양이와 삽니다'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낭만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시골과 고양이의 조합이 그들에게 뭔가 평화롭고 여유 있는 전원생활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 모양이다.

고양이와 함께 시골살이를 한 지 어언 20년 차에 접어든다.

하지만 고양이 작가보다 나는 '사료 배달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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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고양이와 산다고 하면 십중팔구 ‘낭만적’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러나 고양이 대여섯 마리를 잃은 사람에게 그 말은 공허하다. 2년의 침묵 끝에 다시 사료 포대를 들었다.
시골에서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삶에 낭만적인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용한 제공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골에서 고양이와 삽니다’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낭만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시골과 고양이의 조합이 그들에게 뭔가 평화롭고 여유 있는 전원생활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 모양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행복과 슬픔, 위로와 비난이 뒤엉킨 뒤죽박죽의 ‘삶’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그런 시골살이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 모든 눈총과 한숨 속에서도 고양이가 가져다주는 위로와 행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양이는 나를 견디게 한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책상 앞으로 데려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쓰도록 만든다.

고양이와 함께 시골살이를 한 지 어언 20년 차에 접어든다. 처음부터 무슨 뜻한 바가 있어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농사를 지을 생각도, 전원을 누리며 자연인처럼 살아볼 생각도 없었다. 살다 보니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 밀려난 영역에서 나는 도심의 고양이들과 다른 묘생을 사는 시골 고양이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삶 역시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다. 딱히 동병상련도 아니고 측은지심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 옆에 그저 주어진 환경에 충실한 고양이가 살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삶을 조용히 응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구에 이런 고양이가 살고 있다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들의 삶을 무심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시골 고양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그렇게 새 직업이 되었다. ⓒ이용한 제공

처음에는 그것이 직업이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고양이를 기록하는 사람. 세상에 없던 ‘고양이 작가’라는 수식어도 그렇게 생겨났다. 하지만 고양이 작가보다 나는 ‘사료 배달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사료 배달부가 더 직관적이고 고양이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사료를 배달하는 사람. 사실 사료 배달부의 고충은 배달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 있다. 시골에선 더욱 그렇다. 그 좋다는 시골 인심도 고양이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한번은 이웃 주민이 찾아와 나에게 대놓고 행패를 부린 적도 있다. 여기서 밥을 주는 바람에 고양이들이 텃밭을 파헤치고 농작물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나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쓰레기봉투도 뜯지 않고 농작물을 망치는 쥐와 두더지도 잡아주니 오히려 농사에 도움이 된다고 항변했다. 텃밭 주변에 그물을 둘러치면 농작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어느 날 아침 대문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이후 집으로 밥 먹으러 오던 다른 고양이 여러 마리도 발길이 뚝 끊겼다. 그 무렵 나는 집 안의 마당 급식소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의 캣맘 두 분에게도 사료 후원을 해왔고, 직접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네 군데의 이동 급식소까지 운영했다. 그런데 그중 두 곳의 이동 급식소에서도 연쇄적으로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동 급식소를 폐쇄하고 고양이를 기록하는 일조차 중단했다.

다시 사료 배달을 시작한 건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생각했다. 고양이가 있는 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터이고,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면 이곳은 영원히 지옥일 것이라고. 해서 나는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당사자에게 2년에 걸쳐 꾸준히 뇌물에 가까운 선물을 주고 꼬박꼬박 인사도 했다. 그 방법은 2년 만에 통했고, 당사자는 텃밭에 그물을 둘러치는 것으로 나에게 보답했다. 문득 돌아보면 암울하고 아득했으나 언젠가는 통과해야 할 의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용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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