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위해 헌신한 두 목회자…강원용 20주기·박형규 10주기

고미혜 2026. 8. 1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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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사 격랑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행동했던 두 목회자, 강원용(1917∼2006) 목사와 박형규(1923∼2016) 목사가 나란히 20주기와 10주기를 맞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서울제일교회가 함께 마련한 추모 예배에선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인 김영주 목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등이 박 목사의 유산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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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화해 강조했던 강원용 목사…22일 경동교회서 추모 모임
길 위에서 믿음 실천한 박형규 목사…18일 기독교회관 추모 예배
강원용(왼쪽) 목사와 박형규 목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내가 살아온 한국의 70년은 계속 '빈 들'이었다. (중략) 이런 한국이란 빈 들에서 내가 한 일은 나의 유한한 판단력으로나마 가급적 정직하게 고발하고 증언하고 충언하고 위로, 격려하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강원용 '빈 들에서' 중)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는 사람의 영혼이 가난과 억눌림,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이웃들을 못 본 체하면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박형규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중)

한국의 현대사 격랑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행동했던 두 목회자, 강원용(1917∼2006) 목사와 박형규(1923∼2016) 목사가 나란히 20주기와 10주기를 맞는다.

목회자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 이들이 남긴 굵직한 족적을 조명하는 자리가 잇따라 마련된다.

2006년 강원용 목사 빈소 찾은 김수환 추기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빈 들의 소리' 강원용…'대화'를 통한 '화해' 추구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태어난 강 목사는 1931년 개신교인이 된 후 평생을 교회 발전과 민주화 운동 등에 헌신했다.

1945년 경동교회를 설립해 1958∼1986년 담임목사를 맡는 등 40여년간 이곳에서 목회 활동을 하며 오늘날의 경동교회를 이끌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 격동의 시기를 통과한 고인은 교회 밖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를 꾸준히 냈다.

1945년 해방 뒤 김규식, 여운형 등과 만나 청년대표로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했고, 1970년대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74년엔 악법 철폐, 인권 회복 등을 목표로 창립한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도 맡았다.

강 목사는 극단적인 대립 대신 '대화'를 통해 이념, 종교, 계층 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던 인물이었다.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현 대화문화아카데미)를 설립해 종교 간 대화와 토론 문화 형성에 힘썼고, 말년인 2000년엔 남북 평화를 위해 범국민적, 초당적 협력을 도모하는 대화 모임인 '평화포럼'을 발족하기도 했다.

평화포럼 등에서 마지막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그는 2006년 8월 17일 향년 89세로 타계했다.

고인의 호를 딴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와 경동교회는 오는 22일 오후 서울 중구 경동교회에서 강 목사 20주기 추모 모임을 연다.

박명림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 안재웅 YMCA전국연맹 이사장이 고인의 삶을 돌아보며 그가 강조한 대화, 화해의 의미를 돌아본다.

경동교회 경동갤러리에선 이달 말까지 고인의 생전 어록과 활동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도 열린다.

2016년 박형규 목사 장례예배 [연합뉴스 자료사진]

'길 위의 목사' 박형규…민주화

박형규 목사는 민주화운동에 더욱 깊숙이 뛰어든 목회자였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공덕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며 목회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4·19 혁명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73년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전단을 배포하려다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민청학련 사건으로도 구속되는 등 여섯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들이 그가 담임목사를 맡았던 서울제일교회를 장악하자 거리로 내몰린 박 목사와 교인들이 6년 동안 매주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예배를 이어가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내고, 철거민 등 빈민 선교에도 앞장섰던 박 목사는 2016년 8월 18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0주기를 얼마 앞두고 이달 초 법원은 1980년대 박 목사와 서울제일교회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에 대해 국가가 교회와 교인, 유족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고인의 기일인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선 10주기 추모 예배가 진행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서울제일교회가 함께 마련한 추모 예배에선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인 김영주 목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등이 박 목사의 유산을 되새긴다.

서울 중구 서울제일교회엔 고인을 기리는 박형규 목사 기념실도 23일 문을 열 예정이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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