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지시 거절 뒤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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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5년차 직장인입니다. 오래 방황하다 서른을 넘겨 시험 준비를 한 끝에 지금 직장에 자리 잡았습니다. 6개월 뒤에 다시 인사 시기가 오면 나를 저 자리에 보내려는 건가? 내 사정을 설명했는데 그새 잊으셨나? 또 나를 그 자리에 보내려고 하면 어떻게 못 한다고 말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저는 누구도 미워하지 말고 제 일만 열심히 하자는 주의라 사람들과 남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데 뒤에서 도는 과장님에 대한 평을 보니 욱하는 성미 때문에 과장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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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한마디에 자책과 불안의 진자운동
미워하고 미움 받는 일 받아들여야

마음돌봄, MZ가 MZ에게
저는 5년차 직장인입니다. 오래 방황하다 서른을 넘겨 시험 준비를 한 끝에 지금 직장에 자리 잡았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쁜 날이 많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합니다. 젊은 사람 같지 않게 착실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3주 전 과장님에게 고압적인 지시를 받은 뒤부터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인사 발령 시기에 맞춰 업무 배치를 새롭게 하면서 과장님이 스트레스가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자리에 공백이 생겼는데 누구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 자리로 갈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간병해야 하는 처지라 새로운 업무를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장님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저의 사정을 설명했고 다행히 과장님이 제 사정을 이해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과장님 자리로 가 다시 한번 사과했더니 “다음번에는 홍 주임 차례입니다!” 하고 눈도 보지 않고 단호하게 얘기하셨습니다.
그 뒤부터 너무 심장이 뜁니다. 6개월 뒤에 다시 인사 시기가 오면 나를 저 자리에 보내려는 건가? 내 사정을 설명했는데 그새 잊으셨나? 또 나를 그 자리에 보내려고 하면 어떻게 못 한다고 말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과장님이 저에게 앙심을 품고 벼르고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과장님 표정을 살피는 게 일이 됐습니다. 저를 격려하거나 웃으면서 대해주면 안심이 됐다가 차가운 말투가 나오면 저를 괘씸해하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을까요? 그 일을 하겠다고 해야 했을까요? 하지만 퇴근이 늦어지면 하루 종일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몸이 약해지고 있는 어머니도 병이 날 것 같아 도저히 그렇게 못 하겠습니다. 저는 누구도 미워하지 말고 제 일만 열심히 하자는 주의라 사람들과 남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데 뒤에서 도는 과장님에 대한 평을 보니 욱하는 성미 때문에 과장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동의 없이 인사 발령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어떡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홍정혜(가명·37)
하지만 과장님이 냉담한 태도를 보인 이후 3주 동안 정혜님이 걱정하는 보복이 현실화되고 있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정혜님은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고, 과장님은 차갑게 말할 때도 있지만 격려할 때도 있습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욱하는 기분파입니다. 변덕스러운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긴 하지만 과장님이 정말로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되갚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어쩌면 정혜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실질적인 보복 가능성보다 누군가 정혜님을 못마땅해할 가능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혜님 마음속에는 타인의 요청을 거절하더라도 좋은 평가는 잃지 않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과장님의 양해를 얻고도 다음날 다시 한번 자리에 찾아가 사과한 것도 이 소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나를 회사 일보다 개인 사정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큰 나머지 과장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니 부모님 잘 보살펴드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면 ‘날 나쁘게 보고 있지 않구나’ 하고 안심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과장님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정혜님을 위협하는 건 타인의 미움만이 아닙니다. 정혜님 안에서 자라난 타인을 향한 미움 역시 스스로를 낯설고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착실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나에 대한 규정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직장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애써 억눌러왔던 억울함과 미움이 피어오르며 마음에 균열을 낸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미움은 금기시할수록 커집니다. 나의 미움을 정당화해줄 정보가 모여야 마음이 편해져서 그 사람의 안 좋은 면에 더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정혜님의 마음이 ‘내가 잘못한 건가?’ ‘아니야. 과장님이 나쁜 사람이야’ 하는 양극을 오가는 진자운동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진자운동은 누군가가 ‘정혜님이 잘못한 건 없다’고 확인해준다고 해서 끝나지 않습니다. 뭐가 나쁘고 어떤 입장이 옳은지 몰라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자운동은 한쪽 입장을 취했을 때 생기는 불편감을 견디는 것이 괴로워 반대편으로 급하게 이동하면서 비롯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붙들면 죄책감이 들고 내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현실에 화도 납니다. 이 감정에서 벗어나려 ‘내가 아니라 강압적인 과장님이 문제다’라는 생각을 붙들면 저 이상한 사람에게 언제 또 부당한 강압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선한 사람’이라는 자기상도 무너집니다.
진자운동을 멈추려면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도 내 입장을 옹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장님이 정혜님을 그 일로 미워한다고 해서 정혜님이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정혜님의 거절과 미움이 정당하기 위해 과장님이 나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과장님을 미워할 수도 있고, 과장님 역시 나를 못마땅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누가 더 잘했고 잘못했는지 가리는 진자운동도 차차 잦아들 것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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