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티셔츠 입고 전쟁기념관 찾는 시민들… "베트남전 실체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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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3층 해외파병실에는 이런 문장이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쓰여 있는 커다란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이 해당 훈령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거짓'이 담긴 현재의 팻말을 철거하고 사진 자료로 대체하는 한편,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술과 피해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함께 전시해 훈령의 이면까지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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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병실 "베트남 양민 보호" 훈령 입간판에
'거짓' 포스트잇 부착… "한국군의 학살은 사실"
"전쟁 '기념' 아닌 성찰·고민 방식으로 접근해야"
기념관 "국가배상 소송 종결 후 전시 개편 검토"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3층 해외파병실에는 이런 문장이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쓰여 있는 커다란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을 지낸 채명신(1926~2013) 장군이 각 부대에 내린 훈령이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중남부 나트랑에 주둔했던 제100군수사령부(십자성부대) 정문에 실제로 세워져 있던 팻말을 전시장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현지 주민들 마음을 얻으려 했던 한국군의 민사심리전 목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고전했던 한국군으로서는 주민들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베트콩이 평소에는 주민들과 뒤섞여 지내다가 그때그때 기습적으로 게릴라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령'의 그 원칙이 전장에서 정말 그대로 지켜졌을까. 전쟁기념관이 보여 주는 베트남전쟁에는 '반쪽의 진실'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의 생존 피해자들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나머지 반쪽의 진실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1968년 베트남 중부 꽝남성 하미마을과 퐁니·퐁넛마을에서 각각 벌어진 학살 당시 살아남았던 동명이인, '응우옌티탄'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2명의 60대 여성이 그들이다.
학살 생존자 "양민 보호? 내 동생이 죽었는데…"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22일 이곳을 찾았다. 훈령 입간판을 맞닥뜨린 하미마을의 응우옌(69)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내용은 진실에 맞지 않아요.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피해자들이 이렇게 여러 번 한국에 올 일도 없었을 겁니다." 열변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문구는 당장 바뀌어야 한다"며 "여기를 다시 찾을 기회가 있다면 다시는 이 거짓말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68년 2월 22일 한국군 청룡부대는 하미마을에서 베트남 민간인 135명을 살해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었다. 하미마을에는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기부한 돈으로 세운 '하미 학살 희생자 위령탑'이 서 있다.
또 다른 응우옌(66) 역시 청룡부대 군인들이 같은 해 2월 12일 민간인 74명을 학살한 퐁니·퐁넛 마을에서 살아남았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그는 백마부대 소속 병사가 교전 중 베트남 어린이 둘을 양팔로 안아 구출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앞에서 멈춰 섰다. 어린 남동생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도 총상을 입었던 그는 "사실과 다른 것만 전시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제가 겪었던 전쟁에서는 다섯 살 남동생이 총을 맞아서 죽었습니다. 사촌동생은 10개월 된 아기였는데 이모 품에서 총에 맞아 죽었어요. 이 사진대로라면 한국군은 제 동생을 구조했어야 하겠죠."
두 명의 응우옌이 주장하는 바는 하나였다. "명백한 왜곡." 이들은 "전시에 가려진 기억의 진실이 너무도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업무방해죄 고소됐지만… '직접 행동' 계속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이하 탄탄이)는 이를 계기로 '직접 행동'에 나섰다. '탄탄이'라는 명칭도 두 명의 응우옌 이름인 '탄'에서 따왔다. 베트남인 3명을 포함해 약 30명이 느슨하게 활동 중인 탄탄이 회원들은 지난해 10월~올해 1월, 총 6차례에 걸쳐 포스트잇과 마스킹테이프로 '거짓' 글자를 큼지막하게 만들어 채명신 장군 훈령 입간판 위에 붙였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이 해당 훈령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전쟁기념관은 탄탄이를 업무방해·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탄탄이 활동가 4명에게 도합 200만 원(각 50만 원)의 벌금형 약식명령이 내려졌으나, 탄탄이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직접 행동 역시 멈추지 않았다. 전시물에 '거짓' 문구를 붙이지 말라 하니, 이번에는 '거짓'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전쟁기념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탄탄이의 요구는 간단하다. '거짓'이 담긴 현재의 팻말을 철거하고 사진 자료로 대체하는 한편,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술과 피해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함께 전시해 훈령의 이면까지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 다낭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뒤 탄탄이에서 통역을 돕고 있는 응옥 한(가명·25)은 '학살 피해'라는 과거사를 인지한 게 3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023년 하미마을 학살 55주기 추모 행사 때 통역을 하면서 학살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며 "베트남 사람으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게 부끄러워 탄탄이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또 한국인들에게 이 진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까지,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그 취지에 따라 전시물 개편을 검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앞서 퐁니마을의 응우옌은 2020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사실, 이에 따른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응우옌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정부는 항소심 판결에도 불복하며 지난해 3월 상고했고, 이 사건은 1년 넘도록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훈령 철거'는 출발점… "전쟁 실체 보여줘야"
탄탄이의 활동은 단지 훈령 하나를 철거하자는 게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게 이들의 얘기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훈령 철거는 그 변화를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아침(별칭) 탄탄이 활동가는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미화하거나 낭만화하면서 전쟁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의 실체와 피해를 보여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인 학살은 물론 귀환 후 트라우마나 고엽제 피해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참전군인들의 고통까지,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기억과 경험을 함께 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윤충로 동국대 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 연구초빙교수는 "우리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기억에서 벗어나, 전쟁이 정말 무엇이었는가를 성찰하고 고민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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