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처치, 학교 안의 교회일까? 교회로 가는 다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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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런 모임이 있는 줄 몰랐다고,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고 교회를 다녔지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기도 모임을 만들어 매주 모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스쿨처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예배와 기도 모임을 세워 가는 운동으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요컨대 스쿨처치라 부르는 이 모임은 그 자체로 학교 안의 '교회'인가, 아니면 교회로 가는 '다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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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유영 대표] 먼저, 이런 모임이 있는 줄 몰랐다고,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고 교회를 다녔지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기도 모임을 만들어 매주 모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도움 목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집계로, 스쿨처치로 모이는 모임이 전국에 1299개, 올해는 1600여 개다. 전국 중고등학교가 5679개이니 네 곳 가운데 한 곳꼴이다. 적은 수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 목사가 찾아다니는 스쿨처치의 실제 모습은 소박하다. 대개 점심시간이나 아침 자습 시간, 빈 교실이나 음악실, 동아리방 등 그날 비어 있는 공간에서 모인다. 모임 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찬양에 5~10분, 메시지는 10분 남짓이면 끝난다. 진행은 학생 리더가 맡고, 외부에서 온 사역자는 짧은 이야기 하나를 보태고 나온다. 급식을 먼저 먹은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와 앉았다가 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가는, 점심시간의 한 조각이다.
세우겠다는 기도가 아니라 |
"'어릴 때 있던 좋은 문화가 요즘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안타깝습니다.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가고 싶어요. 그러나 전주가 집인 사람이 서울에서 사역하며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니 소식을 접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반년을 기도만 하다 8월이 됐습니다. 그때 조건 하나를 덧붙여 다시 기도했죠. '거리와 시간에 상관없이 불러 주면 가겠습니다.'"
그가 모임을 세우겠다는 기도를 한 건 아니었다. 있으면 가겠다고 기도했을 뿐이다. 그 자신도 왜 그렇게 기도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길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열렸다. 얼마 뒤 스무 살 청년과 대화하다 알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그 청년의 후배가 졸업한 경기도 포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스쿨처치 모임이 있었고, 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와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임이 열린 날,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 학교 지하실에는 50여 명이 앉아 있었다. 평소 열 명 남짓 모이는 자리인데 외부에서 누가 온다고 홍보를 한 모양이다. 반가움과 뻘쭘함이 같이 왔다고 나 목사는 회고했다. 그는 포천에 가 본 적도 없고 아이들과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 벅찬 감정을 느꼈다. 1월에 한 기도가 8월에 이뤄지기도 했고, 학생들과 만남이 그런 감정을 들게 했다.
"저는 이 일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그림은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다 보니 10년이 넘었네요."


학생들이 만든 스쿨처치를 돕기 위해 몇 개 학교를 다녔는지 나 목사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14년이면 어림으로라도 셈이 될 법한데, 돌아온 답은 세어 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숫자를 밝히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세지 않았다고 했다. '스쿨처치를 돕기 위해 다닌 학교 수'는 이런 사역에서 대개 성과로 제시되는 항목이다. 그는 이 항목을 비워 둔 채 14년을 다녔다.
수백 개는 되겠지만 굳이 세지 않은 이유는 사유화하고 싶지도, 사유화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학교는 자기 소유가 아닐뿐더러, 기도 모임을 만든 아이들도 각자 출석하는 교회가 있다. 그가 스쿨처치 사역을 위해 세운 '스탠드그라운드'의 문서에는 아이들을 자기 소속으로 두지 않고 꾸준히 만나고 연결하는 역할만 한다는 방침이 적혀 있다.
내 것으로 소유하려 들지 않으니, 도리어 아이들이 겪은 변화와 사연 하나하나는 더 깊이 각인되었다.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는 주먹을 쓰던 아이가 수련회에서 마음을 고쳐먹고 모임을 세운 일이 있었다. 그 학생은 최근 군종목사가 되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다. 반면, 아쉬운 대목도 있다. 학교 자체 모임이다 보니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코로나19 때 많은 학교에서 모임이 없어졌다. 부산에서는 2019년에 160개였던 모임이 2022년에는 30여 개만 남았다.
"오죽하면 아침에 기도 모임을 했겠습니까. 그렇게 1년을 버티자 신입생들이 들어와서 아이들이 꾸준히 늘었어요. 아이들이 이런 모임을 만들고, 키워 가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라고 봐요."


어른이 세우면 |
모든 모임을 아이들이 세웠다지만,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른들이 마련해 둔 자리가 존재한다. 전남의 학생은 수련회에서 마음을 다잡았고, 수원의 학생들 역시 캠프에서 받은 도전을 안고 돌아가 모임을 시작했다. 씨앗을 뿌린 것은 어른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어른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학교라는 일상을 끝끝내 지켜 낸 것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었다. 학교 모임이 단연코 아이들의 자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매주 갔던 학교는 사라졌는데, 어쩌다 한 번씩 갔던 학교에는 여전히 존재하더라."
학생들의 기도 모임에 어른인 목사나 사역자들이 자주 가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 세워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고 그는 말했다. 동기 부여는 어른이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계속 붙어 있으면 모임은 그 어른의 소유가 되고, 어른이 떠나면 함께 사라진다. 매주 갔던 학교가 사라졌다는 말이 가리키는 지점이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도 |
이제 돕는 역할은 그만의 몫이 아니다. 얼마 전 스탠드그라운드는 기차를 타고 각지의 학교를 방문하는 '네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여 명의 청년이 4인 1조로 전국 스무 곳 남짓한 학교를 순회했다. 나 목사는 첫날만 동행하고 이후 일정에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상황을 공유받되 개입하지는 않은 것이다. 처음 발을 내딛는 일만 도울 뿐, 리더를 세워 권한을 넘김으로써 스스로 굴러가는 자발적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저한테 다 허락받고 하는 건 아니고요. 사역 멤버십 단톡방에는 저를 포함해 59명이 있어요. 스쿨처치팀 외에도 캠핑처치, 고3을 세우는 프로그램, 노숙인을 만나는 사역 등이 있죠. 각각 코어팀을 두고 돌아갑니다."


학교 안의 교회인가 |
"사실 교회로 가는 다리 역할이죠. 우리가 백날 교회라고 말한다고 해서, 교단에서 정식 교회로 인정받지 못할 테니까요. 교단법에서 말하는 교회는 일정 인원 이상이어야 하고 장소도 있어야 하잖아요. 임대든 매입이든 법적으로 검증되는 공간이 없으면 교회로 인정받기 힘들어요. 그 모임은 기도처 정도로 봐요. 그런 맥락에서는 (스쿨처치는)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단 한 번도 기독교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어른이 될 수도 있는데, 10대에 예배가 즐거웠다는 인상이 남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연어에게 회귀 본능이 있듯 언젠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어쨌든 삶의 예배라는 거에 강조점을 두게 된 건 맞아요. 우리가 주일예배는 강조하지만 일주일의 삶은 강조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근데 항상 문제는, 연결은 해 주는데 애들이 적응을 못한대요. 그 애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교회의 현실인 거죠. 스쿨처치에서 복음을 처음 접한 학생들은 교회를 처음 경험하잖아요. 그들에게는 너무 어색한 문화라고 생각해요. 다리는 놓였는데, 건너편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응원과 지지 |
종교 중립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시기다. 학교 안에서 종교 활동을 이어 가는 현실이 늘 매끄럽지는 않다. 주변 교회들이 연합해 점심시간마다 간식을 나누다 민원이 들어와서 그 규모를 줄인 구로의 한 중학교 사례처럼 크고 작은 마찰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도움 목사는 대립의 당사자로 나서기보다 한 발 물러나, 학교와 교사가 허락한 테두리 안에서 돕는 자리를 지켜 왔다고 했다.
스쿨처치 팀은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만나는 사역이기에 1대1 만남을 지양하고 소속 교회를 확인하는 등 나름의 안전망을 두고 있다고 했다. 다만 59명의 청년이 전국 단위로 움직이는 만큼, 안전 장치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성폭력 예방 교육 실시나 사역자 검증 등 제도 마련은 향후 과제로 보였다. 아무리 학생들에게 주도권을 내어 주는 사역이라 해도 그들을 안전하게 지킬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혼자 버티고 하는 게 너무 귀하고요. 때로는 나만 남았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꼭 나만 남은 거 아니잖아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지역에서, 가 보지 않은 학교에서 동일한 마음으로 버티고 견디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고 격려해 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결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경험들이 분명히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겠어요."
그렇다면 이 귀한 아이들을 놓치고 있는 교회에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14년 동안 그가 지켜본 대상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모임이 통째로 사라진 지역들, 다음 세대를 붙들 여력이 없던 교회들이 그 옆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교회를 탓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가평으로, 이튿날은 완도로 발길을 돌렸다. 나도움 목사의 이름처럼 곁에 서 달라고 도움을 청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유영 young2@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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