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처치, 학교 안의 교회일까? 교회로 가는 다리일까? 

유영 2026. 8. 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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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런 모임이 있는 줄 몰랐다고,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고 교회를 다녔지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기도 모임을 만들어 매주 모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스쿨처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예배와 기도 모임을 세워 가는 운동으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요컨대 스쿨처치라 부르는 이 모임은 그 자체로 학교 안의 '교회'인가, 아니면 교회로 가는 '다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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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찾아서] 14년째 복음 위해 학교로 가는 스탠드그라운드

[뉴스앤조이-유영 대표] 먼저, 이런 모임이 있는 줄 몰랐다고,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고 교회를 다녔지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기도 모임을 만들어 매주 모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도움 목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집계로, 스쿨처치로 모이는 모임이 전국에 1299개, 올해는 1600여 개다. 전국 중고등학교가 5679개이니 네 곳 가운데 한 곳꼴이다. 적은 수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스쿨처치를 만든 건 '어른'이 아니다. 학교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모임을 세웠고, 그 학교들이 모여 1600여 개가 됐다. 나도움 목사는 그중 연락이 온 곳으로 간다. 이름이 도움인 사람이 정말 돕기만 한다니,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움 목사와 인터뷰는 많은 지점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 우리가 교회를 교회라고 부르는 지점을 생각하게 했다. 뉴스앤조이 유영

나 목사가 찾아다니는 스쿨처치의 실제 모습은 소박하다. 대개 점심시간이나 아침 자습 시간, 빈 교실이나 음악실, 동아리방 등 그날 비어 있는 공간에서 모인다. 모임 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찬양에 5~10분, 메시지는 10분 남짓이면 끝난다. 진행은 학생 리더가 맡고, 외부에서 온 사역자는 짧은 이야기 하나를 보태고 나온다. 급식을 먼저 먹은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와 앉았다가 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가는, 점심시간의 한 조각이다.

규모는 학교마다 다르다. 다섯 명이 모이는 곳이 있고 백 명이 모이는 곳도 있다. 나 목사는 그 자리를 예배 같지 않다고 표현했다. 거의 도떼기시장처럼 소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왜 왔느냐고 물으면 과자 먹으러 왔다고 답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강제로 앉혀 놓는 채플이 아니라 오고 싶은 사람만 오는 자리에 아이들이 왔다가 간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신기했다.

세우겠다는 기도가 아니라 
있으면 가겠다는 기도

이 사역의 시작은 그의 그리움이었다. 나도움 목사는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기도 모임을 주변 학교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주의 한 학교에는 1974년에 생긴 기도 모임이 나 목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2008년을 넘어가면서 그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총신대학교 신대원에 다니던 2012년 1월, 그는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어릴 때 있던 좋은 문화가 요즘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안타깝습니다.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가고 싶어요. 그러나 전주가 집인 사람이 서울에서 사역하며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니 소식을 접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반년을 기도만 하다 8월이 됐습니다. 그때 조건 하나를 덧붙여 다시 기도했죠. '거리와 시간에 상관없이 불러 주면 가겠습니다.'"

그가 모임을 세우겠다는 기도를 한 건 아니었다. 있으면 가겠다고 기도했을 뿐이다. 그 자신도 왜 그렇게 기도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길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열렸다. 얼마 뒤 스무 살 청년과 대화하다 알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그 청년의 후배가 졸업한 경기도 포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스쿨처치 모임이 있었고, 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와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임이 열린 날,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 학교 지하실에는 50여 명이 앉아 있었다. 평소 열 명 남짓 모이는 자리인데 외부에서 누가 온다고 홍보를 한 모양이다. 반가움과 뻘쭘함이 같이 왔다고 나 목사는 회고했다. 그는 포천에 가 본 적도 없고 아이들과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 벅찬 감정을 느꼈다. 1월에 한 기도가 8월에 이뤄지기도 했고, 학생들과 만남이 그런 감정을 들게 했다.

그해 2학기에는 네댓 곳을 다녔고, 그렇게 만남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어느덧 14년이 지났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남들이 말하는 비전이라 부르기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어릴 때 추억이 떠올라 한 기도가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이 일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그림은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다 보니 10년이 넘었네요."

포천의 한 학교에서 시작한 만남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올 줄 몰랐다. 지금은 전국을 돌며 학생들이 예배하는 일을 돕고 있다. 사진 제공 나도움

학생들이 만든 스쿨처치를 돕기 위해 몇 개 학교를 다녔는지 나 목사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14년이면 어림으로라도 셈이 될 법한데, 돌아온 답은 세어 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숫자를 밝히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세지 않았다고 했다. '스쿨처치를 돕기 위해 다닌 학교 수'는 이런 사역에서 대개 성과로 제시되는 항목이다. 그는 이 항목을 비워 둔 채 14년을 다녔다.

수백 개는 되겠지만 굳이 세지 않은 이유는 사유화하고 싶지도, 사유화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학교는 자기 소유가 아닐뿐더러, 기도 모임을 만든 아이들도 각자 출석하는 교회가 있다. 그가 스쿨처치 사역을 위해 세운 '스탠드그라운드'의 문서에는 아이들을 자기 소속으로 두지 않고 꾸준히 만나고 연결하는 역할만 한다는 방침이 적혀 있다.

내 것으로 소유하려 들지 않으니, 도리어 아이들이 겪은 변화와 사연 하나하나는 더 깊이 각인되었다.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는 주먹을 쓰던 아이가 수련회에서 마음을 고쳐먹고 모임을 세운 일이 있었다. 그 학생은 최근 군종목사가 되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다. 반면, 아쉬운 대목도 있다. 학교 자체 모임이다 보니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코로나19 때 많은 학교에서 모임이 없어졌다. 부산에서는 2019년에 160개였던 모임이 2022년에는 30여 개만 남았다.

수원의 한 학교는 그 긴 공백기를 무사히 이겨 냈다. 2018년 캠프에서 도전받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이 모임은 코로나19로 인해 연락이 두절되며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한 남학생에게서 연락이 닿았다. 내성적인 데다 누군가를 이끌 만한 성격도 못 되지만, 나라도 하지 않으면 모임이 사라질 것 같아 매주 아침 8시마다 홀로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오죽하면 아침에 기도 모임을 했겠습니까. 그렇게 1년을 버티자 신입생들이 들어와서 아이들이 꾸준히 늘었어요. 아이들이 이런 모임을 만들고, 키워 가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라고 봐요."

스쿨처치는 학생들이 만들고, 이끌어 간다. 학생이 예배 인도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나도움
학생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2026년 전국 스쿨처치 수련회. 사진 제공 나도움

어른이 세우면
어른의 모임이 된다

모든 모임을 아이들이 세웠다지만,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른들이 마련해 둔 자리가 존재한다. 전남의 학생은 수련회에서 마음을 다잡았고, 수원의 학생들 역시 캠프에서 받은 도전을 안고 돌아가 모임을 시작했다. 씨앗을 뿌린 것은 어른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어른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학교라는 일상을 끝끝내 지켜 낸 것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었다. 학교 모임이 단연코 아이들의 자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도움 목사가 스쿨처치라는 말과 그 정의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스쿨처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예배와 기도 모임을 세워 가는 운동으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핵심은 자발성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배 사역자에게 들은 말을 내놓았다.

"내가 매주 갔던 학교는 사라졌는데, 어쩌다 한 번씩 갔던 학교에는 여전히 존재하더라."

학생들의 기도 모임에 어른인 목사나 사역자들이 자주 가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 세워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고 그는 말했다. 동기 부여는 어른이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계속 붙어 있으면 모임은 그 어른의 소유가 되고, 어른이 떠나면 함께 사라진다. 매주 갔던 학교가 사라졌다는 말이 가리키는 지점이다.

어른이 주도하는 모임은 학생들에게는 '그분이 하는 모임'이 된다고 나 목사는 설명했다. 반대로 학교에서 '우리가 세워 가는 모임'이 되면 어려움에 처할 때 반응이 달라진다. 포기하겠다는 연락 대신, 힘드니 기도해 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불려 가는 사람이다. 설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딱 10분만 한다. 그가 하는 일의 크기는 딱 그만큼이다.
나도움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사진 제공 나도움

그가 없는 자리에서도

이제 돕는 역할은 그만의 몫이 아니다. 얼마 전 스탠드그라운드는 기차를 타고 각지의 학교를 방문하는 '네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여 명의 청년이 4인 1조로 전국 스무 곳 남짓한 학교를 순회했다. 나 목사는 첫날만 동행하고 이후 일정에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상황을 공유받되 개입하지는 않은 것이다. 처음 발을 내딛는 일만 도울 뿐, 리더를 세워 권한을 넘김으로써 스스로 굴러가는 자발적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동참한 청년들은 대부분 10대 때 스쿨처치를 통해 그와 만난 학생들이다. 학교에서 스스로 모임을 지키던 학생들이 자라서 이제 다른 학교를 찾아가는 쪽이 됐다. 자발성으로 자란 아이들이라 알아서 잘한다고 그는 말했다.

"저한테 다 허락받고 하는 건 아니고요. 사역 멤버십 단톡방에는 저를 포함해 59명이 있어요. 스쿨처치팀 외에도 캠핑처치, 고3을 세우는 프로그램, 노숙인을 만나는 사역 등이 있죠. 각각 코어팀을 두고 돌아갑니다."

억지로 내 것을 세우려 하지 않은 나도움 목사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자발적이고도 단단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덩치를 키우지 않은 만큼 단체의 살림살이도 단출하다. 종교색을 뺀 응원 카드 등 굿즈를 만들어 팔고, 나 목사의 외부 강의료를 보태 운영비를 충당한다. "대형 교회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다는 일각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전용 사무실 없이 한 재단이 무상으로 내어 준 공간을 빌려 쓰며, 단체 소유의 차량도 없다. 1년 치 이동 거리를 합치면 지구 한 바퀴에 달하지만, 매달 100만 원 남짓한 교통비에 의지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실정이다.
네일로에 참석한 후 간증을 나누고 있는 청년의 모습. 사진 제공 나도움

학교 안의 교회인가
교회로 가는 다리인가

이 사역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물음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학생들의 기도 모임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제도를 벗어난 이 자발적인 모임 자체를 하나의 온전한 예배 공동체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언젠가 지역 교회로 아이들을 안내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보아야 할까. 요컨대 스쿨처치라 부르는 이 모임은 그 자체로 학교 안의 '교회'인가, 아니면 교회로 가는 '다리'인가.

"사실 교회로 가는 다리 역할이죠. 우리가 백날 교회라고 말한다고 해서, 교단에서 정식 교회로 인정받지 못할 테니까요. 교단법에서 말하는 교회는 일정 인원 이상이어야 하고 장소도 있어야 하잖아요. 임대든 매입이든 법적으로 검증되는 공간이 없으면 교회로 인정받기 힘들어요. 그 모임은 기도처 정도로 봐요. 그런 맥락에서는 (스쿨처치는)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가 붙드는 본문이 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이다. 성도 개개인이 교회이고 함께 모인 이들이 교회라면, 건물을 넘어 길가에서든 들판에서든 예배하는 자리를 교회라 부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아니겠지만 예배 공동체이기는 하다. 로컬 교회를 부정하는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바로 교회로 가지 못할 때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스쿨처치에서 복음을 처음 접한 학생을 잘 잡아 주는 일은 기존 교회의 몫이라고 나 목사는 생각했다. 사진 제공 나도움
교회라고 불린다면 믿지 않는 학생에게 좋은 인식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아이들에게 교회는 그저 건물, 고리타분한 곳인데 '이렇게 모여 예배하는구나' 하는 인상이 생긴다. 반대로 잃는 것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예배를 드렸으니, 주일에 교회에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평생 단 한 번도 기독교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어른이 될 수도 있는데, 10대에 예배가 즐거웠다는 인상이 남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연어에게 회귀 본능이 있듯 언젠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어쨌든 삶의 예배라는 거에 강조점을 두게 된 건 맞아요. 우리가 주일예배는 강조하지만 일주일의 삶은 강조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나 목사는 전주의 한 학교 채플을 축제처럼 바꿔 놓은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같은 곡을 반복해 부르다 보니 아이들이 떼창을 하게 됐고, 신입생이 들어와도 선배들을 따라 했다. 문화가 되자 아이들이 주변에 괜찮은 교회를 추천해 달라고 물었다는 내용이다.

"근데 항상 문제는, 연결은 해 주는데 애들이 적응을 못한대요. 그 애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교회의 현실인 거죠. 스쿨처치에서 복음을 처음 접한 학생들은 교회를 처음 경험하잖아요. 그들에게는 너무 어색한 문화라고 생각해요. 다리는 놓였는데, 건너편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응원과 지지
그만큼이면 충분하다

종교 중립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시기다. 학교 안에서 종교 활동을 이어 가는 현실이 늘 매끄럽지는 않다. 주변 교회들이 연합해 점심시간마다 간식을 나누다 민원이 들어와서 그 규모를 줄인 구로의 한 중학교 사례처럼 크고 작은 마찰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도움 목사는 대립의 당사자로 나서기보다 한 발 물러나, 학교와 교사가 허락한 테두리 안에서 돕는 자리를 지켜 왔다고 했다.

스쿨처치 팀은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만나는 사역이기에 1대1 만남을 지양하고 소속 교회를 확인하는 등 나름의 안전망을 두고 있다고 했다. 다만 59명의 청년이 전국 단위로 움직이는 만큼, 안전 장치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성폭력 예방 교육 실시나 사역자 검증 등 제도 마련은 향후 과제로 보였다. 아무리 학생들에게 주도권을 내어 주는 사역이라 해도 그들을 안전하게 지킬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단단한 보호막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의 공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른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간식 정도를 말하거나 필요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저 이상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귀하게 여겨 주는 정도면 족한데 어른들은 자꾸만 과하게 무언가를 해 주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14년 동안 해 온 일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의 힘으로 아이들을 세워 주기보다, 스스로 모임을 세운 아이들 곁에 서서 그저 "잘하고 있다"고 끄덕여 주는 것 정도가 우리 역할이라고 나 목사는 생각했다.
학교에서 나눠 줄 종교색을 뺀 응원 카드. 학생들이 잘하고 있다는 칭찬, 교회가 지켜보며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나도움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어딘가에서 혼자 기도하고 있을 학생을 떠올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우선 혼자 버티고 하는 게 너무 귀하고요. 때로는 나만 남았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꼭 나만 남은 거 아니잖아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지역에서, 가 보지 않은 학교에서 동일한 마음으로 버티고 견디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고 격려해 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결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경험들이 분명히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겠어요."

그렇다면 이 귀한 아이들을 놓치고 있는 교회에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14년 동안 그가 지켜본 대상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모임이 통째로 사라진 지역들, 다음 세대를 붙들 여력이 없던 교회들이 그 옆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교회를 탓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가평으로, 이튿날은 완도로 발길을 돌렸다. 나도움 목사의 이름처럼 곁에 서 달라고 도움을 청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유영 young2@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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