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사리손도 보탠 광복, 한국소년운동사
ㆍ'어린이가 조선의 미래'...어른 소유물에서 인식변화
ㆍ삼일만세운동 후 성장한 소년들 '대한독립만세!'
ㆍ소파 방정환, '어린이가 곧 미래' 알아본 시대의 선각자
"어린이운동은 삼일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18세 미만의 소년들이 적극 참여했고 그 영향을 받아서 1920년대 어린이운동이 힘차게 일어난 겁니다."

이날 대회는 오후 1시 40분부터 시작해 4부에 걸쳐 이어졌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가 몰랐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소년운동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였다.
한국소년운동사는 민족의 암흑기, 18세 미만 소년들의 소년운동을 말한다. 이는 곧 어린이운동에서 청소년운동까지 아우르기도 한다. 또 성장 단계의 소년들의 인식과 몸의 변화 그리고 전근대와 근대 이행 과정에서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년들이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고 참여 운동을 펼쳐 나간 것을 뜻하기도 한다.
대회 개회사에서 방정환연구소 장정희 이사장은 "방정환(1899~1931·독립유공자 및 아동인권운동가) 선생이 '어린이날'이란 메시지로 미래세대의 근대성을 알렸고, 그 영향으로 1920년대 이후 어린이운동은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항일운동으로 전개됐다"라고 밝혔다.
국가보훈부 권오을 장관도 축사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소년운동에 바탕을 둔 독립운동사적 전진이었음에도 그간 국가가 잘 챙기지 못했다"며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학술대회 기조 강연은 '김정의 한국소년운동사 연구의 성과와 후학의 과제'를 주제로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가 연사로 나섰다.
이 대표는 "1990년대 김정의(전 한양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선생이 '한국소년운동사'를 출간한 것을 계기로 일제강점기 어린이운동이 서구와 일본처럼 '아동애호' 차원이 아닌 인권 차원의 어린이 해방운동으로 확대되었음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며 "이는 곧 1919년 3~4월 소년들이 졸업식을 하다 말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나가는 등 삼일만세운동의 불길을 확산시켰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소년운동의 배경에 방정환 등의 조직적 운동이 큰 성과를 낳았다고 보았다. 방정환은 당시 '어린이날'을 제정(1922년 5월 1일)하며 "조선 어린이에게 어른은 모두가 좋은 뿌리가 되어야 한다"며 "어린이를 존중하고, 그들의 뜻을 세워주어야 조선의 미래가 있다"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로 생각했을 뿐 어린이가 식민지 조선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는 인식이 없었다. 이때 방정환의 소년운동이 피압박민족이었던 우리에게 희망이 되었던 셈이다.
이 학술대회는 이어 '독립운동과 지역소년운동사' '한국소년운동사 연구의 전망과 과제' 등으로 계속됐다. 최미선 교수(경상국립대)는 '독립운동과 서부 경남 소년회 및 문예활동 고찰', 정을경 책임연구원(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천도교의 소년운동과 소파 방정환의 역할' 등을 발표했다.
전정희 기자 oklaka@oknew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