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가, 독립운동가 진희창 외증손이었다 "상하이 임시정부 운영 뒷받침"

오승현 기자 2026. 8. 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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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빽가언니'〉

그룹 코요태 멤버 빽가가 독립운동가 외증조부를 공개했다.

15일 빽가는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 올라온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내 외증조부가 독립운동가였다"고 밝혔다.

빽가는 "한 번도 방송에서 꺼내지 않았던 얘기다. 20년 넘게 활동한 멤버들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운을 뗐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우리 집은 사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다. 그러니 어디가서 기죽지 말고 마음의 긍지를 갖고 살아라'라고 말씀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진희창 선생의 후손이었다. 빽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있을 때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하셨던 중요한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1874년에 태어난 진희창 선생은 1910년에 나라를 뺏긴 후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낮에는 운수회사 감독으로 일하고 고국에서 상하이로 건너오는 독립 투사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자본을 마련해주는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독립투사 회의에 참석했으며 이동녕, 신익희와 함께 임시의정원 의원을 맡았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는 임시헌정을 의정한 회의도 함께했다.


빽가는 "안창호 선생과 우리 외증조부 진희창 선생이 임시정부 경제후원회를 만들었다"며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고 이를 바탕으로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외증조부는 임시정부의 재정과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계속 했다"며 "그렇게 뒷바라지 하시다가 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3년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가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고 말했다.

외증조부의 업적에 얹혀가는 느낌이 들까 조심스러웠다는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누구를 도울 상황이 되지 않았는데 이젠 그럴 수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 중 형편이 어렵거나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시면 도움이 드리고 싶어 이야기를 꺼낸다"며 외증조부를 공개한 이유를 전했다.

오승현 엔터뉴스팀 기자 oh.seunghyun1@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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