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아침 별세한 백인천…끝내 풀리지 않은 ‘요시 그란도 시즌’의 미스터리

2026. 8. 1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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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MBC 감독 겸 선수로 뛰며 타율 4할1푼2리를 기록한 백인천이 타석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LG 선수들이 28일 대구구장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백인천 감독을 행가레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광복절인 15일 아침, 한국 프로야구의 ‘유일한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백 전 감독은 전날인 14일 오전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한때 별세 소식이 전해졌으나 심폐소생술 뒤 맥박과 호흡이 돌아와 천안 단국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았다. 그러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5일 오전 6시41분 영면했다. 여러 차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도 재활을 거듭했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다운 끈질긴 투혼을 보였다.

백 전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개척자였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인 196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했다. 낯선 환경에서 경쟁을 버텨낸 그는 1975년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소속으로 타율 0.319를 기록해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19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1969경기를 뛰며 통산 타율 0.278, 1831안타, 209홈런을 남겼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는 이력은 백 전 감독이 한국 야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프로야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더 큰 무대에서 살아남아 한국 야구인의 가능성을 먼저 증명한 시간이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돌아온 백 전 감독은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그해 71경기에서 250타수 103안타를 기록하며 타율 0.412를 남겼다. 출범 44년이 지난 지금도 누구도 넘지 못한 KBO리그 유일의 시즌 4할 기록이다.

지도자로서도 한국 야구사에 굵은 자취를 남겼다. 1990년 LG 트윈스 초대 감독으로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는 젊은 이승엽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성장을 도왔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 등에서도 지휘봉을 잡았다. 강한 훈련 방식과 지도자 말년의 성적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렸지만, 선수와 감독으로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의 한 축을 세웠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젊은 야구팬들에게 백 전 감독은 불멸의 4할 타자 못지않게 ‘요시 그란도 시즌’이라는 말로 기억된다. 이 말은 2008년 7월 27일 SBS스포츠의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야쿠르트 스왈로스 경기 중계에서 나왔다.

당시 심각한 부진과 2군행을 겪었던 이승엽은 뒤늦게 시즌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타구가 담장을 향하자 해설을 맡은 백 전 감독은 “갔어, 갔어”를 거듭 외쳤다. 공이 넘어간 순간 그가 내뱉은 말이 많은 사람에게 “요시, 그란도 시즌”으로 들렸다. 이어 “라지에타가 지금 터졌어”라는 특유의 감탄도 쏟아냈다.

이 음성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졌다. ‘요시’는 일본어로 ‘좋다’라는 뜻이고, ‘그란도 시즌’은 ‘그랜드 시즌’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이후 야구뿐 아니라 기다리던 일이 마침내 성사되거나 예상 밖의 큰일이 벌어졌을 때 사용하는 인터넷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나왔다. 백 전 감독이 실제로 한 말은 “역시, 하나 둘 셋이야”였다는 주장이다. 그는 홈런이 나오기 전부터 이승엽이 ‘하나, 둘, 셋’의 타격 박자에 맞춰 방망이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때문에 느리게 재생하면 ‘그란도 시즌’이 아니라 ‘하나 둘 셋이야’로 들린다는 것이다. 야구팬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음성을 반복해 들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백 전 감독은 생전에 이 논쟁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2015년 펴낸 자서전에도 해당 중계에 관한 설명은 실리지 않았다. 이제 그날 자신이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 당사자에게 물어볼 길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 장면을 일본식 말투에 대한 희화화로만 기억하면 정작 중요한 맥락이 사라진다. 영상에 담긴 것은 일본에서 오래 활동한 노야구인의 어눌한 감탄이 아니라, 깊은 부진에서 빠져나온 제자의 홈런을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렸던 스승의 기쁨이었다. 정제된 해설보다 먼저 터져 나온 환호였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요시 그란도 시즌’인지 ‘역시 하나 둘 셋이야’인지는 이제 어느게 맞는 지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어찌됐던 그 말에 담긴 마음만은 분명했다.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버텨낸 개척자이자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4할 타자, 그리고 제자의 홈런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던 야구인이 남긴 마지막 미스터리다.

백 전 감독의 장례는 한국야구위원회가 주관하는 KBO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고인이 남긴 0.412 타율은 여전히 한국 프로야구 기록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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