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美군함 건조 길 열렸다?”…트럼프 각서에도 의회 장벽 그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투자하는 외국 조선업체에 미 해군 함정을 본국에서 최대 2척까지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안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국내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미 군함을 건조할 길이 열렸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가 조건을 충족하는 만큼 한국 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을 직접 건조할 수 있게 됐다는 식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나오는 반응과 진행 중인 의회 입법 상황은 이 같은 해석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으로 미 군함의 해외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연방법의 국가안보상 예외를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군함을 해외 조선소에 발주할 수 있도록 하는 예산과 조달 권한을 놓고 백악관과 의회가 정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방산전문매체 브레이킹디펜스는 14일 “백악관과 의회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해외 군함 건조에 반발하는 의회는 상·하원 모두 각자의 국방수권법(NDAA)안에 제한을 두고 있다. 또 양당에는 외국 조선업체의 해군 함정 건조를 강하게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각서 하루 만에 하원의원 공개 반발
실제 트럼프 각서가 발표된 직후 의회에서는 공개 반발도 나왔다. 메인주 배스아이언웍스 조선소를 지역구에 둔 제러드 골든 민주당 하원의원은 14일 소셜미디어에 “이 행정부가 미국의 조선업 일자리를 해외로 보내고, 이제는 미국 조선소를 외국 기업에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듯한 상황에서, 우리가 이 행정부의 거창한 ‘미국 우선주의’ 언사를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 하원은 이미 이 근시안적인 해외 이전 계획을 차단하기 위해 내가 마련한 조항에 초당적 지지를 보냈고, 상원도 같은 조치를 취할 태세”라며 “의회는 국가안보와 미국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자신의 임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골든 의원이 언급한 조항은 지난달 하원을 통과한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들어 있다. 하원안은 전투함뿐 아니라 군수지원함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상원 역시 전투함 해외 건조에는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 6월 상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한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은 해외에서 전투함을 건조하는 것을 제한했다. 다만 미국 해양산업 기반에 투자한다는 조건으로 외국 조선소에서 비전투 보조함을 최대 2척 조달하는 방안은 허용했다. 즉 비전투 보조함의 해외 건조에는 상원도 일부 문을 열어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각서에서 포함시킨 수상전투함의 해외 건조는 상원안도 허용하지 않고 있어 핵심 쟁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통령 ‘면제권’으로 의회 예산 제한까지 못 풀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각서에서 국가안보상 면제권을 명시했다는 점을 근거로 ‘의회의 NDAA 논의와 관계없이 해외 건조가 가능해졌다’고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대통령 면제권은 미군 함정의 해외 건조 금지 조항(번스-톨레프슨법)의 적용을 특정 계약에 대해 면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하지만 이 권한이 의회가 다른 법률에 넣은 별도의 해외 건조 금지나 세출예산 사용 제한까지 무효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방세출법은 별개의 문제다. 미 의회는 연례 국방세출법을 통해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에 국방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해왔다. 결국 대통령이 번스-톨레프슨법상의 면제권을 행사해 ‘해외에서 지어서는 안 된다’는 한 가지 법적 장벽을 제거하더라도, 의회가 ‘해외에서 짓는 데 이 돈을 써서는 안 된다’고 세출법으로 막으면 실제 계약은 진행될 수 없다. 대통령 각서가 의회의 세출권까지 면제하는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각서 이전부터 내년도 NDAA에 수상전투함 2척과 비전투함 2척의 해외 조달 권한을 넣어달라고 의회에 요청해온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상·하원은 모두 행정부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각자의 해외 건조 제한을 법안에 넣었다. 대통령이 면제권을 발동했으니 의회와 관계없이 한국에서 미 군함을 건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아닌 셈이다.
◇美조선업계 “트럼프 방침 철회하라”
반발은 의회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조선소들을 대표하는 미국조선업협의회(Shipbuilders Council of America)는 트럼프 각서가 발표되자 성명을 내고 “트럼프 행정부는 방향을 전환하고 이 자금을 자격을 갖춘 미국 조선소로 돌리라”고 촉구했다.
매슈 팩스턴 협의회 회장은 성명에서 “미국에 기반을 둔 조선소와 시설에 대한 외국 투자가 조선 산업 기반을 되살리려는 행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환영하지만, 국방부에 해외에서 건조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연방 해양행동계획과 상업·정부 선박 건조에 대한 세대적 투자를 약화시킬 뿐”이라며 “해외에서 건조되는 모든 선체는 이 행정부가 재건하겠다고 약속한 미국 조선소에서 수요와 일자리, 산업 역량을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상전투함까지 직접 해외 건조 대상으로 거론하고 국가안보상 면제권을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는 것은 행정부 차원에서는 분명한 진전이지만, 실제 한국에서 미 군함을 건조하는 것은 트럼프의 각서가 아니라 향후 의회가 국방수권법과 국방세출법에서 해외 건조를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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