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장관 ‘중국은 996’ 강조했지만···현지에선 “인생이 사라졌다” 불만

박은하 기자 2026. 8. 1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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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도 기업인·노동자 엇갈리는 시선
‘996’은 불법, ‘내권식 경쟁’은 심층정비 대상
‘중국식 속도’ 개념에도 피로와 불안 호소
13일 베이징의 쇼핑객들이 궈마오 번화가에서 하늘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시아의 사업 환경에서는 모두가 참 바쁜 것 같습니다.”

중국 저장성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연구와 사업을 하는 레이핑(가명)은 최근 두 달 동안 쉬는 날이 손에 꼽는 수준이다. 평일에는 연구하고 주말에는 출장을 다녔다.

저장성은 중국에서 AI 관련 연구와 창업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알리바바 본사도 저장성 항저우에 있으며, 딥시크를 만들어낸 량원평도 저장성 출신이다. 미국 기업과의 경쟁까지 염두에 두고 연구·개발을 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이핑은 인맥 형성을 위해 쓰는 시간도 많으며 늘 지쳐 있다 보니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레이핑은 “책 한 권 들고 여유롭게 기차여행을 하는 것, 밤에 호숫가에서 낚시하는 것, 비 오는 날 조용한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모두 아주 오래된 일이 돼 버렸다”며 “해외에서 공부도 제대로 하고 찬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의 빠른 발달이 한국에서 ‘노동시간 규제 완화’ 논쟁을 부르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쉴 여유는 없다는 것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위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손봐야 한다며 중국의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근무)’을 언급한 것이 단적이다.

김 장관은 사기업 재직 시절 “충칭의 한 IT기업이 ‘996’ 제도를 도입하려 하자 종업원들이 ‘그렇게 일해서 다른 기업과 어떻게 경쟁하겠느냐’며 반발해 결국 밤 12시까지 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중국 노동자들도 회사가 성장해야 본인이 월급을 받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회사가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한 직원이 중국 기업 자이노바 부스에서 로봇 손의 성능을 시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에서 장시간 노동은 만연하지만 이에 대한 불만과 우려도 크다. 우선 중국에서 ‘996 노동’은 불법이다. 중국 노동법상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평균 40시간이며, 초과노동도 주 평균 44시간까지 가능하다. 중국의 대법원 격인 최고인민법원은 2021년 996 관행이 법정 연장근로 상한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초과근무를 거부한 노동자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장시간 노동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올해 업무보고에서 “내권식 경쟁을 심층정비(深入整治)한다”고 밝혔다. 내권식 경쟁은 장시간 노동이나 제살 깎아먹기식 가격 인하 등 ‘소모적 경쟁’을 의미하는 말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연설이나 중앙경제공작회의 등 당정 문건에서는 2024년 내권식 경쟁을 ‘방지한다’고 했고, 2025년에는 ‘종합정비한다’는 표현이 사용됐다. 당정이 점점 표현 수위를 올리면서 내권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에서도 기업가와 노동자들 간의 장시간 근무에 대한 의견은 다르다. 베이징의 한 기업인은 “과학기술 회사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야근은 매일 한다고 봐야 한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대신 기업 측은 야근 수당과 교통비 등을 지급하고 주택을 제공하는 등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전했다.

취징 전 바이두 홍보 담당 부사장은 2024년 12월 더우인에 올린 홍보 동영상을 통해 장시간 초과 노동을 옹호했다가 역풍을 불렀다. 그는 영상에서 “휴대전화를 24시간 켜놓고 항상 응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내가 어머니도 아닌데, 왜 직원 가정까지 생각해야 하나”, “너무 바쁘게 일하다 보니 동료 생일은 기억하지만 큰아들 생일은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대중의 반발이 쏟아졌고, 미국·홍콩 증시에 상장된 바이두 주가는 한때 4%가량 떨어졌다. 취 전 부사장은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하고 사임했다.

베이징의 한 30대 노동자는 “내권은 노력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나온다”며 “위에서 무리한 목표를 세워 경쟁을 시키니까 계속 앉아있는 것이다.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의 한 30대 남성은 “일만 있고 인생은 없다. 내 시간이 사라졌다”며 “그러니 연애할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명한 재료공학자 류융펑 저장대 교수의 과로로 추정되는 사망도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류 교수는 지난해 1월 출장길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그의 아내가 업무용 컴퓨터를 분석해 보니 2024년 3월부터 쓰러진 2025년 1월 5일까지 류 교수가 일을 한 날은 319일이었다. 매일 일한 셈이다. 이 가운데 105일은 오후 10시 이후에 퇴근했다.

류 교수의 아내는 지난해 3월 온라인에 “대학 과학 연구자들의 과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호소한다”는 공개서한을 올렸다. 전국 각지의 연구자들이 SNS에 류 교수 아내의 글을 공유하면서 “연구자들이 죽어간다”고 토로했다.

중국에서 ‘996’은 불법이고 ‘내권식 경쟁’ 역시 뜯어고쳐야 할 대상이지만 장시간 노동과 관련해 관영매체 등에서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개념이 있다. ‘중국식 속도’다. 중국이 빠른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뤄낸 것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된다.

2023년 4월 건설이 발표된 상하이 테슬라 메가팩토리가 착공 8개월 만에 완공돼 2025년 4월 가동에 돌입하자 차이나데일리 등 관영매체는 ‘중국식 속도’를 언급하며 중국이 글로벌 사업환경에 최적화된 곳이라고 보도했다. 마이클 슈나이더 테슬라 부사장도 준공식에서 “상하이와 테슬라의 속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상찬했다.

일상에서 ‘중국식 속도’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에 모두 쓰인다. ‘강호일기’란 이름을 쓰는 한 누리꾼은 ‘왜 중국은 당대 최고로 불안한 국가들 가운데 하나가 됐나’는 제목의 SNS 글에서 ‘중국식 속도’를 이유로 꼽았다. 그는 “사회의 리듬이 개인의 적응 속도보다 빨라지면 사람은 ‘영원히 따라갈 수 없다’는 구조적 불안감을 갖는다”며 “2010년대 이후 중국의 핵심 변화는 노력과 보상이 더 이상 비례하지 않다는 사실이며, 운명이 분투를 누른다고 생각해 불안감이 더욱 확대된다”고 적었다.


☞ [뉴스 깊이보기] 중국 대법원도 “996은 불법”이라는데…‘장시간 노동할 자유’ 허하라는 산업부 장관
     https://www.khan.co.kr/article/202608080600101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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