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딸아, 진짜 광복을 느껴보렴"…발길 이어진 광주 양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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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책 밖에서 진짜 광복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어 함께 나왔습니다."
제81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전남광주 남구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가족과 함께 소녀상과 현대사의 종을 둘러본 김 모 씨(50)는 "조상들이 겪은 혹독한 시련과 독립의 소중함을 3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뜻깊었다"며 "아이들도 오늘 보고 들은 역사를 오래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해설사회 김동원 회장은 양림동을 일제강점기와 광주의 근현대사가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야외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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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조상의 시련과 독립의 소중함 나눈 뜻깊은 시간"

(광주=뉴스1) 조수민 기자
"아이에게 책 밖에서 진짜 광복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어 함께 나왔습니다."
제81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전남광주 남구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이날 양림동 골목은 한 권의 역사책처럼 펼쳐졌다.
붉은 벽돌로 지은 근대 건축물과 울창한 숲 사이로 어린 자녀의 손을 잡은 부모와 어르신,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나선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이 걸은 길은 도보로 10분 남짓한 짧은 거리였다. 그러나 골목 안에 담긴 시간은 일제강점기부터 3·1운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광주의 근현대사까지 100년을 훌쩍 넘었다.
시민들의 첫걸음은 사직공원 아래 자리한 일제강점기 방공호 '뒹굴동굴'로 향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찾아온 이들에게 동굴은 처음엔 시원한 피서 공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입구에 적힌 설명을 읽고 내부의 거친 암벽을 살펴보던 시민들의 표정은 이내 진지해졌다.
뒹굴동굴은 일제강점기 광주 도심에 살던 일본인들이 미군의 공습을 피해 숨을 수 있도록 단단한 화강암 지반을 파 만든 대피시설이다.
당시 입구 4곳과 중앙광장을 조성하려 했지만 단단한 지반 때문에 공사가 늦어졌고, 끝내 완공되지 못한 채 광복을 맞았다. 미완성 방공호는 오늘날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전하는 근대역사문화 유적으로 남았다.
시민들은 울퉁불퉁한 암벽에 남은 굴착 흔적을 찬찬히 살폈다. 아이들은 고개를 들어 동굴 천장을 바라봤고 부모들은 곁에서 이곳에 얽힌 역사를 설명해 줬다.
뒹굴동굴을 둘러본 박연희 씨(27)는 "더위를 피하려고 찾은 동굴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숙연해졌다"고 말했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 길은 1919년 3월로 이어진다.
3·1만세운동길을 따라 오르자 수피아여고 후문 안쪽에 세워진 '광주 3·1만세운동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념비 뒷면에는 박순애, 이태옥, 김양순 등 만세운동을 이끌다 옥고를 치른 수피아여고 학생 2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시도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시민들은 빼곡히 적힌 이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끝으로 이름을 하나씩 짚어본 뒤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있었다.
딸과 함께 기념비를 찾은 이 모 씨(37)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모습을 직접 보여주니 아이도 교과서로 배울 때보다 훨씬 깊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골목을 걷던 20대 청년들도 기념비 앞에서 발걸음을 늦췄다. 지금의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거리로 나와 만세를 외쳤던 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해설사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골목의 역사는 광복에서 멈추지 않았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양림동이 지나온 격동의 시간을 간직한 '현대사를 겪은 종'이 나타났다. 수피아여고 학생들의 만세운동과 광주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역사물이다.
종 아래에 선 부모들은 자녀에게 이곳에 담긴 사연을 나지막이 들려줬다. 아이들은 종을 올려다보며 부모의 설명을 들었다.
그 곁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이옥선 할머니를 모델로 제작한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녀상 옆에는 누군가 두고 간 편지와 작은 태극기가 놓여 있었다. 가족들은 소녀상 발치에 손을 얹거나 잠시 묵념하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랐다.
가족과 함께 소녀상과 현대사의 종을 둘러본 김 모 씨(50)는 "조상들이 겪은 혹독한 시련과 독립의 소중함을 3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뜻깊었다"며 "아이들도 오늘 보고 들은 역사를 오래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해설사회 김동원 회장은 양림동을 일제강점기와 광주의 근현대사가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야외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양림동에는 일제강점기 군사 수탈의 흔적인 뒹굴동굴부터 호남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수피아여고, 현대사의 아픔을 품은 종과 소녀상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복절을 맞아 많은 시민이 이곳을 걸으며 과거의 뿌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딛고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양림동에서 광복은 달력 속 기념일에 머물지 않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른이 청년에게 건네는 기억이 돼 골목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sum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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