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쏙 비켜갔다’는 3년 태풍 지도, 사실일까

2026. 8.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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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최근 3년간 발생한 태풍의 이동 경로를 한 장에 겹쳐 놓은 지도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태풍 경로를 나타내는 검은 선들이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빼곡하게 덮고 있지만 한반도 주변만 공백으로 남아 있다. 한반도에는 붉은 원까지 그어져 있다. “왜 우리만 피해 다녀?”, “신풍이 보호하는 나라” 등의 제목이 붙었다.

‘신풍’은 신이 일으킨 바람이나 초자연적인 힘이 나라를 보호했다는 의미로 붙인 농담이다. 개드립 댓글에서도 “제주도에 계신 왕할머니 때문 아니냐”, “설문대할망이 열일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설문대할망은 치마에 흙을 담아 제주도와 오름,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제주의 거인 창조여신이다. 태풍이 주로 남쪽에서 북상한다는 점에 착안해 설문대할망이 제주 앞바다에서 태풍을 밀어낸다는 식으로 신격화한 것이다. 전승 설화의 핵심은 제주 지형의 창조다. 설문대할망이 실제로 태풍을 막는다는 이야기는 전통 설화라기보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현대적 해석에 가깝다.

이 지도는 실제 태풍 경로와 얼마나 일치할까. 주간경향이 2023년 8월 14일부터 2026년 8월 14일까지 기상청 태풍정보에 수록된 중심 위치를 이용해 다시 그린 결과, 큰 틀의 이동 경로는 온라인 게시물과 대체로 일치했다. 경로를 임의로 지우거나 새로 그려 넣은 조작 이미지는 아니라는 의미다.

최근 3년간 태풍 경로를 겹쳐 놓았다며 온라인에서 확산한 이미지. 한반도 주변이 비어 있는 것처럼 표시됐지만 최초 제작자와 정확한 데이터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개드립
2023년 8월 14일부터 2026년 8월 14일까지 기상청이 발표한 태풍 중심 위치를 토대로 다시 그린 이동 경로. 붉은 점선은 집계 시작일보다 나흘 앞서 한반도를 관통한 2023년 태풍 카눈의 경로다. /주간경향이 AI 도움을 받아 제작.

해당 기간 기상청이 이름을 부여해 추적한 태풍은 모두 81개다. 이를 게시물의 원자료로 추정되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국제태풍경로자료인 IBTrACS와 대조하니 79개의 이름과 경로가 일치했다. 두 자료에서 같은 시각의 태풍 중심 위치 1870개를 비교한 결과 위치 차이의 중앙값은 약 19.3㎞, 평균은 약 27.2㎞였다. 비교 지점의 90%는 59㎞ 이내에서 일치했다.

선이 완전히 겹치지 않는 것은 기상청과 IBTrACS의 자료 구성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상청 자료는 한국 기상청이 분석한 태풍 위치다. IBTrACS는 일본 기상청과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 중국·홍콩 기상기관 등 여러 기관의 열대저기압 자료를 합친다. 이름이 붙지 않은 열대저압부와 다른 해역에서 넘어온 열대저기압도 포함한다. 실제 온라인 지도에는 기상청 그래프에는 없는 11개의 무명 열대저압부와 중부태평양·인도양에서 넘어온 경로 등이 추가돼 있었다. 온라인 지도가 더 빽빽해 보이는 이유다.

눈에 띄는 차이는 2023년 제6호 태풍 카눈이다. 카눈은 2023년 8월 10일 경남 거제 부근에 상륙해 약 21시간 동안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했다. 북한에 진입한 뒤 8월 11일 평양 남동쪽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했다. 그런데 게시물이 화제가 된 2026년 8월 14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3년 전부터 경로를 표시하면 시작점은 2023년 8월 14일이 된다. 한반도를 관통한 카눈은 불과 나흘 차이로 지도에서 통째로 사라진다. 기상청 자료를 이용해 다시 그린 그래프에서 카눈을 별도의 붉은 점선으로 표시한 이유다. 카눈은 81개 태풍 집계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온라인 지도가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최근 3년’이라는 기간의 경계와 태풍의 ‘중심 경로’만 표시한 지도를 한반도가 태풍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한 데 있다. 태풍의 중심이 한반도를 지나지 않아도 넓게 형성된 비구름과 강풍, 태풍에서 약화한 열대저압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상청은 중심이 한반도를 통과하지 않은 2024년 태풍 종다리와 산산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으로 분류했다. 북한에서도 2024년 7월 신의주와 의주 일대에서 주택 4000여채와 농경지 약 3000㏊가 침수되는 대규모 수해가 발생했다. 당시 북한 북서부와 중국 동북부는 태풍 개미가 남긴 비구름의 영향을 받았다. 개미의 중심 경로는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온라인 지도만 봐서는 이 같은 피해를 알기 어렵다.

해당 기간 북한에 수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4년 7월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큰 수해가 발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무보트를 타고 침수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

이미지의 최초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개 검색에서 확인되는 가장 이른 동일 합성본은 2026년 8월 12일 인스타그램 계정 ‘관찰자 시점’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페이스북 계정 ‘우주로’ 등에도 같은 이미지가 유통됐지만 어느 게시물도 최초 제작자나 사용한 데이터는 밝히지 않았다.

표시된 태풍과 열대저압부의 수, 경로 형태를 대조하면 NOAA IBTrACS 자료를 최근 3년으로 필터링해 만든 지도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만 지도 화면의 메뉴와 범례, 출처 표시가 모두 잘려 있어 어느 사이트에서 누가 처음 제작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결론내자. ‘한국만 쏙 비켜갔다’는 3년 태풍 지도, 사실일까. 온라인 지도의 태풍 경로 자체는 대부분 실제 자료와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한반도를 관통한 카눈이 나흘 차이로 제외되는 기간을 선택하고, 태풍 중심이 지나간 자리만으로 피해 여부를 판단하면서 “태풍이 한국만 피해 갔다”는 것은 과장된 결론이다. 지도에서 비어 있는 것은 태풍 중심의 궤적이지 태풍의 영향까지는 아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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