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원 넘보던 환율, 150원 급락… 對美투자 늘면 다시 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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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5일 장중 1560원을 넘겼던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 1410원대로 내려오며 2개월 새 150원 이상 내렸다.
연간 20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오픈AI, 앤스로픽 등 미국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앞둔 인공지능(AI) 기업 투자 수요도 자금을 빨아들여 고환율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
그간 수출 기업들은 해외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여도 외환시장에서 바로 달러화로 바꾸지 않아 환율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는데, 원화로 바꿔야 할 유인이 발생하면서 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수출 대기업이 법인세 납부를 위해 보유한 달러화를 원화로 서서히 환전하면서 환율이 하락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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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저
수출 기업들이 법인세 납부 위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꾼 영향
韓美 기준금리 차이 감소도 한몫… “장기적인 원화 강세는 미지수”
美 연준 통화 정책 불확실성 높고, 대미 투자로 환율 재상승 가능성
올해 6월 5일 장중 1560원을 넘겼던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 1410원대로 내려오며 2개월 새 150원 이상 내렸다. 지난해 10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낮다. 원화 가치로는 그만큼 올랐다는 뜻이다. 한때 1600원대를 위협하던 환율이 짧은 기간에 빠르게 하락하면서 코스피처럼 ‘롤러코스터’ 변동성을 보였다.
환율이 단기간에 하락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수출 대기업이 법인세를 내기 위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원화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최근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줄어 원화 가치가 비교적 높아진 것도 이유다. 외국인들이 쥐고 있던 원화를 달러화로 바꿔 미국으로 가져갈 유인이 줄었다.
다만 환율이 너무 빠르게 떨어지면 국내 수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 최근 변동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에선 환율이 당분간 1400원 안팎에서 거래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변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다. 미국 금리가 올라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다시 벌어지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환율은 다시 뛸 가능성이 있다. 연간 20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오픈AI, 앤스로픽 등 미국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앞둔 인공지능(AI) 기업 투자 수요도 자금을 빨아들여 고환율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

환율은 올해 들어 금융위기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반) 기준으로 올 5월 15일부터 지난달 7일까지 36거래일 연속 1500원을 웃돌며 1600원에 근접하기도 했다. 1500원을 웃돈 기간이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12월∼1998년 3월(49거래일 연속) 이후 최장이다.
이 기간에 재정경제부가 구두 개입에 나서고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13년 6개월 만에 외환시장 공동 검사에 착수하는 등 강도 높게 대응했지만 환율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4일(현지 시간) “한국 원화의 (최근) 지나친 변동성을 목격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환율이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1500원 밑으로 내려오며 본격적인 하락 흐름이 나타난 것은 지난달 14일부터다. SK하이닉스가 미 나스닥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한 직후였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265억 달러(약 38조 원)를 조달한 SK하이닉스가 이 자금을 앞으로 서울 외환시장에서 대거 원화로 환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여기에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수출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화를 법인세 중간 납부를 위해 본격적으로 원화로 환전하기 시작하면서 환율 하락이 탄력을 받았다. 한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 달러(약 270조 원)로 지난해 상반기(478억7000만 달러)의 4배 수준을 기록했다. 그간 수출 기업들은 해외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여도 외환시장에서 바로 달러화로 바꾸지 않아 환율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는데, 원화로 바꿔야 할 유인이 발생하면서 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12월 결산 법인은 올 상반기(1∼6월) 발생 이익에 따른 법인세를 이달 31일까지 내야 한다.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기업의 중간 납부 법인세가 46조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 납부 예상액이 36조7000억 원으로 전체의 79.6%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수출 대기업이 법인세 납부를 위해 보유한 달러화를 원화로 서서히 환전하면서 환율이 하락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줄면 일반적으로 미국으로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유인이 낮아진다. 원화를 쥐고 있으려는 수요가 늘어 원화 가치가 오르니 환율은 하락한다. 한은은 사실상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해 한미의 기준금리 차이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미일 외환 당국이 28년 만인 지난달 31일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사들이는 공조 개입에 나서며, 엔화 약세 현상이 꺾인 점도 원-달러 환율 흐름을 바꿨다. 원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의 움직임과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국 개입으로 엔-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55엔대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환율이 하락하면 일반적으로 수입 물가가 낮아지고 기업들의 생산, 물류비용이 줄어 경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많다. 문제는 하락의 속도다. 환율이 너무 빠르게 하락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달러화로 표시되는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달러화로 받은 이익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로 환전할 때 수입이 줄어들기도 한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환율이 단기간에 급락하면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수익성이 나빠지고 경영계획 수립도 어려워져 실물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보유하던 달러화의 매도 시점을 놓치며 예상하지 못한 환 손실이 크게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증권사와 시중은행은 환율이 이달 중 1380∼139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 추가 하락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환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늘어난 이유는 기업의 법인세 중간 납부를 위한 원화 수요 증가 등 단기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인 것은 일시적으로 달러화 공급이 늘어난 결과로, 원화 강세를 중장기적인 흐름으로 볼 수는 없다”고 짚었다.
외환 당국도 환율이 1400원을 밑도는 수준으로 안착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 등이 남아 있어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 “정부-서학 개미 美 투자 확대로 환율 다시 뛸 수도”
환율이 하락을 멈추고 상승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미 연준의 통화 정책 불확실성은 가장 큰 변수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높아졌지만 케빈 워시 의장 체제의 연준은 아직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된 명확한 신호를 내지 않고 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9월 15∼16일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높일 것이라는 예측은 이달 12일 기준 47.9%로 동결 전망(52.1%)과 팽팽하다. 시장에서도 연준이 통화 정책을 어떻게 결정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연준이 물가 상승세를 꺾기 위해 연내 기준금리를 올리면 달러 자산의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이 미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달러화 수요가 늘며 환율이 다시 뛸 수 있다.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올해부터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대미 투자가 진행돼야 한다는 점도 환율 상승 우려를 낳고 있다. 양국이 합의한 전략적 대미 투자액은 총 2000억 달러(약 283조 원)다.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자금을 달러화로 미국에 투입해야 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의 기준금리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정부의 대미 투자 집행 등 달러화 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변수가 잠재해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가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와 기업이 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늘면 환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미국 주식을 지난달 46억4240만 달러(약 6조6000억 원) 순매수했다. 올 6월 순매수액(6억3300만 달러)보다 7.3배로 늘었다. 미 나스닥에서 스페이스X가 상장하고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미국 투자 개미의 나스닥 순매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학 개미가 주목하는 오픈AI, 앤스로픽 등의 미 증시 상장도 예정돼 있다. 국내 자금을 빨아들일 수 있는 이벤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와 기업, 개인 투자자의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이어져 온 만큼 환율은 언제든 다시 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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