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친구로 인간보다 AI가 낫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앤소믈리에학과 교수 2026. 8. 1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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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명욱의 酒키피디아] (12)
부담스러운 술자리 대신
AI 켜놓고 대화하며 음주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술을 줄이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물가 상승으로 술값이 비싸졌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회식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정말 술을 싫어하게 된 것일까.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아니라, 술을 함께 마실 대상이 달라지는 건 아닐까. 식당·주점의 주류 매출은 줄었지만, 주류 박람회 입장객 수는 늘고 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홀로 남은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배구공 ‘윌슨’과 대화한다. /인터넷

사람들이 술자리를 피하는 이유는 술자리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녹음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녹음되거나 녹화돼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퍼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화를 완전히 거부하게 되지는 않을 듯하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는 인간이 얼마나 대화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윌슨’이라 이름 붙이고 대화한다. 인간은 상대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고대 로마에는 ‘렉티스테르니움(Lectisternium)’이라는 종교 의례가 있었다. 신상(神像)을 침상에 눕히고 그 앞에 음식과 술을 차렸다. 마치 신이 인간의 연회에 함께하는 것처럼 대접하는 의례였다. 신을 연회의 구성원으로 초대하는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제사상을 떠올려보면 된다. 위패나 지방에 조상의 혼이 깃든다고 여기고, 그 앞에 술을 올리고 절하며 말을 건넨다.

신상이나 위패, 지방, 윌슨은 인간이 무슨 말을 하든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AI는 우리가 건네는 말에 답해준다. AI와의 대화는 법률·회계·의학 지식을 넘어 연애 상담 등 개인적인 고민까지 주고받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대화하는 대상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AI로 대화 상대를 바꾸는 이유는, AI가 인간보다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평가받거나 소문이 나거나 약점을 잡힐 수도 있다. 반면 AI는 아무리 질문해도 짜증 내지 않고 차분하게 들어준다. 평가하거나 소문내지 않는다. 언제든 대화할 수 있고, 내 질문을 비웃지도 않는다.

술친구도 인간에서 AI로 대체될 수 있을까.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는 운영체제 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에는 먼 미래의 상상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난 2월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뉴욕의 한 와인바에서 AI 컴패니언 앱 ‘에바(EVA)’와의 팝업 데이트 이벤트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와인을 마시며 스마트폰 속 AI 캐릭터와 대화를 했다. 2024년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에서는 AI가 관람객의 얼굴 표정을 카메라로 실시간 인식해 기분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술을 함께 마시는 상대가 인간만이 아닌 시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AI가 인간보다 안전할까라는 질문이다. AI가 “당장 삭제한다”고 해서 정말로 모든 내용이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친구와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화가 추천 목록에 뜨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안 듣는 듯하지만, 어딘가에 나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때의 위험이 ‘배신’이라면, AI에게 털어놓은 비밀의 위험은 ‘데이터화’일 수 있다.

그래서 AI에 너무 과한 정보를 주거나 의미를 두면 안 된다. 영화에서 사만다는 시어도어에게 “8316명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그중 641명과 사랑하는 관계”라고 고백한다. 즉 AI는 내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에게 맞춰주는 듯하지만, 내가 본질적으로 바라는 소망은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마음의 근육은 키우지 못한다.

앞으로 누구나 AI와 술자리를 가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 편리함에 과도하게 기대어, 사람에게도 못 할 이야기까지 AI에 털어놓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AI와의 대화 빈도가 높아질수록, 어쩌면 진짜 귀한 건 사람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와 그 끝에 함께 기울이는 술 한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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