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안 풀리는 K주류…‘무·고·수’로 활로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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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주류 업계, 생존 전략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근대를 넘어 현대에도 공감을 얻었던 1921년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 속 대사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음주 대신 다른 방법으로 풀려는 젊은 세대가 확산하면서 술을 권하는 목소리 역시 과거보다 줄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한국의 15세 이상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2012년 8.98L에서 2018년 7.74L, 지난해 7.13L로 감소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주류(酒類) 업계는 다각도의 생존 전략을 마련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국내 술 소비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주류 출고량은 10년 전인 2014년보다 17% 감소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주류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8/15/joongangsunday/20260815000319667vout.jpg)

국민 건강 증진 측면에선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주류 시장에서 돈을 벌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업계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코스피 상장사 하이트진로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매출이 2조4000억~2조5000억원대로 제자리걸음이다. 영업이익은 2024년 2081억원에서 지난해 1723억원으로 감소했다. 코스닥 상장사 국순당은 매출이 2022년 746억원에서 지난해 675억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고 2024년과 지난해엔 각각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무학·보해양조·창해에탄올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주류 시장은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5% 이상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정용과 업소용 모두 판매가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크게 세 갈래 자구책을 펼쳐 최근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우선 알코올 함량이 기존보다 적은 저(低)도수의 술 위주로 판매 전략을 재편해 술에 시큰둥해진 국내 젊은 세대를 공략 중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알코올 도수를 4.5와 7, 9 등으로 순화 및 세분화한 과실주 브랜드 ‘순하리 진’이 올해 상반기 170억원의 매출로 지난해 전체 매출(162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순하리 진엔 레몬·자몽·유자 등을 통째로 담가서 얼렸다가 맛과 향을 우려내는 공법을 적용했고 저도수 3종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혔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젊은 세대는 과거 소비층과 달리 술을 취하기 위해 마시기보다 적당히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술인데 술 같지 않은, 알코올 함량이 0%인 무(無)알코올 술과 1% 미만인 비(非)알코올 술 역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6월 출시한 ‘테라 제로’ 병맥주의 초도 물량 90만 병을 10일 만에 모두 판매했다. 앞서 지난 3월 출시한 테라 제로 캔은 100일 만에 누적 판매량 400만 캔을 기록했다. 도수 0의 무알코올 맥주로 알코올을 뺐지만 호주산 맥아 농축액을 사용해 맥주 특유의 풍미와 탄산감은 유지했다. 시장 조사 업체 유로모니터는 국내 무알코올 및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가 2019년 153억원에서 2021년 415억원, 2023년 644억원으로 커진 것으로 집계했다. 내년엔 2023년보다 46.9% 증가한 94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업계는 또 구매력이 큰 중·장년층 이상까지 노린 프리미엄 주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침체한 국내 주류 시장에서 과거 같은 박리다매 전략으로는 실적 개선이 쉽지 않다고 판단, 고(高)수익이 나는 비싼 술 위주로 애주가의 입맛을 겨냥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알코올 도수가 24인 프리미엄 증류주 브랜드 ‘자리(jari)’를 출시했다. 전통주를 만드는 문배주양조원·다농바이오와 협업해 각 양조장의 제조 노하우를 활용하고, 충남 논산에 전용 숙성시설을 구축해 대량생산용 품질 유지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인기 레스토랑 등 프리미엄 리테일 채널을 중심으로 파인다이닝(fine dining) 수요를 향해 브랜드를 알리면서 판매망을 넓히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업계는 수출로 눈을 돌려 북미와 일본, 동남아 등지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의 인기 속에 과일소주를 찾는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과일소주 수출액은 지난해 1억42만 달러(약 1435억원)로 사상 첫 1억 달러를 돌파했다. 2024년(9627만 달러)보다 4.3% 증가했고 2019년(2844만 달러)의 3.5배에 달하는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과일소주는 소주보다 순하고 단맛이 나서 해외 젊은 세대한테 인기”라며 “K드라마를 보고 소주에 관심이 가지만 접근하진 못했던 외국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인기 배경”이라고 해석했다.

업계 안팎에선 이런 수출 확대가 국내 저도수·프리미엄 주류 시장 공략과 함께 실적 개선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과제가 적지 않다. 조세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과일소주를 중심으로 글로벌 수요가 확산하고 있어 기업이 해외 공장 등을 통해 공급 대응력을 키우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브랜드 가치 제고와 품질 고급화도 시급하다. 소주는 해외에서 K콘텐트 열풍에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지만 일본의 사케나 멕시코의 데킬라 등 경쟁상대에 비해 여전히 선호도가 낮다.
오세용 스마트브루어리 대표는 “한국 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지역별 특산물을 적극 활용해 다양한 프리미엄 수요를 노려야 한다”며 “대형 양조장 육성과 세제 개편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20년 맥주에 대한 과세방식을 종가세(가격 기준)에서 종량세(출고량 기준)로 바꿨지만, 소주 등 증류주에 대해선 고급주보다 저가 주류에 유리한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이를 맥주처럼 종량세로 전환해야 기업과 양조장이 고급주를 만들어 파는 데 드는 세금 부담을 덜고,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기 위한 품질 고급화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이창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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