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도 태극기 주문 뚝…"자부심으로 버티죠"

문소정 기자(mun.sojeong@mk.co.kr), 김송현 기자(kim.songhyun@mk.co.kr) 2026. 8. 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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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 없으면 이 일 못하죠."

그러나 광복절을 하루 앞둔 이날 태극기 주문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르면 태극기 깃봉은 무궁화 봉오리 모양으로 해야 하지만, 중국산 제품 깃대에는 대부분 무궁화봉이 없었다.

김씨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장사가 정말 잘돼 아버지가 수기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그냥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며 "국경일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고, 태극기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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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관수동 제조업체 가보니
태극기 게양 문화 역사 속으로
MZ는 키링·엽서 등 굿즈 선호
주민센터 대량주문마저 급감
값싼 중국산 밀려 고사 위기
"기술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태극기 제조업체에서 대형 자수기가 작동하고 있다. 문소정 기자

"자부심 없으면 이 일 못하죠."

14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국산 태극기 제조업체. 건물 2층 외벽에는 간판 대신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대형 디지털 자수기의 박음질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이곳 대표는 김은지 씨(33). 1997년부터 관수동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온 아버지에게서 가업을 물려받아 10년째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자수 태극기부터 관공서용·가정용 태극기, 손에 들고 흔드는 조그만 수기 태극기까지 직접 제작한다.

원단을 재단한 뒤 태극 문양, 건곤감리를 자수로 새기고 가장자리에 금색 수술을 재봉해 깃대에 달기까지 태극기를 제작하려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김씨 아버지는 직접 만든 자수 태극기를 들어 보이며 "국산 태극기는 깃발의 빳빳함과 자수의 촘촘함부터 다르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광복절을 하루 앞둔 이날 태극기 주문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존에는 광복절을 앞두고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에서 1000~2000장씩 대량 주문이 들어왔지만, 지난해 수백 장으로 줄었고 올해는 주문이 아예 끊겼다. 3·1절과 제헌절을 앞두고 간간이 주문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마저도 예전 같지 않다. 김씨는 태극기 주문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공휴일을 국경일보다 '쉬는 날'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문화도 점점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구별로 난간에 국기꽂이를 설치하도록 했던 주택 건설 규정은 2021년 가구별 설치가 어려운 경우 각 동 지상 출입구에 설치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고층 신축 아파트 등 유리 난간을 설치하는 주택이 늘어나며 철제 난간에 게양대를 다는 게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태극기보다는 태극 문양이 새겨진 '굿즈'를 선호하는 것도 태극기 판매 감소의 원인이다. 실제로 국립박물관, 국가유산진흥원 등은 독립운동과 국가유산 등을 소재로 한 키링·스티커·엽서 등을 잇달아 선보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독립운동 선서문이 적힌 텀블러를 구매했다는 대학생 최수민 씨(23)는 "태극기를 게양할 곳이 없는 건 물론이고 태극기를 가지고 다니기도 번거롭다"며 "평소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광복절의 의미를 기억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판매 감소에 더해 가격 경쟁력에서도 중국산 태극기에 밀리면서 국산 태극기 제조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최근에는 고유가로 인해 원단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까지 올랐다. 실제로 단체 행사나 집회·시위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수기 태극기(30㎝×20㎝)의 가격을 비교해 보니 국산은 3000원, 중국산은 350원으로 약 10배 차이가 났다.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르면 태극기 깃봉은 무궁화 봉오리 모양으로 해야 하지만, 중국산 제품 깃대에는 대부분 무궁화봉이 없었다.

해당 업체가 자리한 관수동 일대도 쇠퇴하고 있다. '명패골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상패, 메달, 배지, 트로피 등을 제작하는 업체가 밀집된 휘장 특화 시장으로 1950년대에 형성됐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골목이라 2006년 종로청계관광특구로 지정됐지만,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예전의 활기를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넘게 상패 가게를 운영해 온 권 모씨(69)는 "20년 전보다 가게의 30~40%는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관수동에서 태극기 등을 판매하는 국기사도 이제 두세 곳만 남았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공장까지 두고 태극기를 직접 제작하는 업체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한 업체 관계자는 "기술을 배워도 돈이 안 되고,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없다"며 "가업으로 이어받는 게 아닌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장사가 정말 잘돼 아버지가 수기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그냥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며 "국경일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고, 태극기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소정 기자 / 김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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