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필요한지 찾아가 증명 … 5개 대륙서 커리어 닦은 비결

김혜순 기자(hskim@mk.co.kr) 2026. 8.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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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현 나오스코리아 대표의 커리어를 따라가려면 세계지도가 필요할 것 같다. 프랑스어 동시통역사로 출발해 베네수엘라에서 라디오 통신원과 휴대전화 영업을 했고,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과 호주 주재 프랑스대사관에서도 일했다.

하지만 하 대표는 이전의 경험을 새로운 일과 연결하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낯선 호주에서도 일을 이어가고 싶었던 하 대표는 호주 주재 프랑스대사관을 찾아가 자신에게 맞는 프랑스 기업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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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화장품사 나오스코리아 하주현 대표 인터뷰
불어 동시통역사로 출발해
남미선 통신원·휴대폰 영업
佛화장품·대사관 종횡무진
자리 없어도 직무 제안해
피에르파브르 첫 韓 직원
바이오더마 韓법인도 설립

하주현 나오스코리아 대표의 커리어를 따라가려면 세계지도가 필요할 것 같다. 프랑스어 동시통역사로 출발해 베네수엘라에서 라디오 통신원과 휴대전화 영업을 했고,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과 호주 주재 프랑스대사관에서도 일했다. 캐나다에서 한국산 와이파이 계측기를 팔기 위해 뛰던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바이오더마 한국법인을 세웠다.

그의 경력은 여러 차례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하 대표는 이전의 경험을 새로운 일과 연결하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정해진 자리가 없을 때는 자신이 할 일을 먼저 제안해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커리어 경험과 삶의 철학을 담은 신간 '국경을 넘어, 나를 설계하다'를 펴냈다.

◆ 스페인어 못하던 남미 통신원

첫 번째 큰 선택은 1995년, 28세 때 찾아왔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통번역을 공부한 뒤 동시통역사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하 대표는 프랑스인 남편을 따라 베네수엘라로 떠나기로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는 능숙했지만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어권 국가였다. 주변에서는 통역사로서의 경력이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출국 전부터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지인에게 라디오 통신원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방송국을 찾아갔다. 여러 번 담당 PD에게 면담을 요청해 자신을 채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통역사로 일하며 해외 언론과 국제 이슈를 다뤘다는 점을 강조했고 당시 방송에서 중남미 소식 전달이 부족하다는 점도 분석해 갔다"고 말했다.

방송 경험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한국 무역사절단의 통역을 맡아 현지 기업과 한국 기업을 연결해줬고 이를 계기로 현대종합상사 현지 영업 조직에 합류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이동통신 시장이 막 열리던 시기였다. 그는 한국 제품의 내구성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처음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대중을 공략했다.

하 대표에 따르면 2년이 채 되지 않아 누적 판매량은 100만대, 매출은 약 1억달러에 달했다. 그는 "제품을 팔아 매출이 발생하고 그것이 내 실적이 되는 데서 큰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한 하 대표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경영학석사 과정에 도전했다.

◆ 없는 직책 만들어 회사에 제안

학업을 마칠 무렵에는 프랑스 제약·화장품 대기업 피에르파브르의 문을 두드렸다. 회사에는 한국인을 위한 인턴 자리도, 하 대표에게 맞는 직무도 없었다. 그는 담당 임원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고 비서에게 직접 전화해 면담 기회를 얻었다.

하 대표는 "회사가 왜 나를 써야 하는지를 먼저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인턴 기회를 주면 한국 시장을 조사하고 진출 전략 보고서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인턴 업무가 좋은 평가를 받자 그는 기존에 없던 '코리아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책과 직무기술서를 직접 만들었다. 한국 시장 조사와 진출 전략 수립, 현지 파트너 관리 등 자신이 맡을 업무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회사에 제출했다.

채용 공고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회사가 자신을 채용할 수 있는 자리를 직접 만든 셈이다. 하 대표는 피에르파브르 본사가 채용한 최초의 한국인 직원이 됐고 이후 한국에 파견돼 아벤느를 비롯한 더모코스메틱 브랜드를 맡았다.

하지만 남편의 호주 시드니 발령으로 피에르파브르에서 쌓은 경력을 내려놓아야 했다. 낯선 호주에서도 일을 이어가고 싶었던 하 대표는 호주 주재 프랑스대사관을 찾아가 자신에게 맞는 프랑스 기업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경제참사관은 대사관의 에너지·환경 상무관 자리를 제안했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하 대표에게는 통역사로 일하며 지질학과 환경정책, 재생에너지 관련 내용을 다뤘던 경험이 있었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업무에 도전했다. 하 대표는 "과거의 경력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다시 연결된다"고 말했다.

◆ 입소문으로 일군 바이오더마 성공

시드니에 이어 캐나다로 이동한 뒤에도 하 대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바이오더마가 한국에 직접 법인을 설립하며 지사장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화장품 사업을 하면서 전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던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가족회의 끝에 한국행을 결정한 하 대표는 2011년 바이오더마 한국법인을 처음 세웠다. 회사는 현재 바이오더마, 에스테덤, 에타퓨르 등 3개 브랜드와 직원 80여 명을 이끄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올리브영은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바이오더마의 입점을 거절했다. 하 대표는 대표 제품인 클렌징워터 한 품목에 승부를 걸었다.

당시 올리브영 매장이 대학가에 많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주요 대학의 불문과 교수들을 찾아갔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커리어 전환 경험을 강의하고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게 했다. 사극 배우와 대학로 연극배우, 청담동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진한 화장을 자주 하는 사람들도 찾아다녔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매출이 늘기 시작하자 올리브영도 입점을 결정했다.

하 대표는 경력 전환이나 출산·육아로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커리어를 혼자만의 문제로 여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배우자·자녀와 함께 해결책을 찾는 가족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대표 역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약 5년 동안 아이들의 등하교와 육아를 맡아준 덕분에 공부와 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 대표는 "커리어는 숨을 쉬듯 계속 끌고 가야 할 일"이라며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스스로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기회는 있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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