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후 제12주] 식탁 아래에도 빵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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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 주일예배청어람ARMC가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청어람ARMC가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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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후 열둘째 주일 / 강단색: 녹색

오늘의 기도 |
찬양 |
시편 67편 1-7절
1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 (셀라) 2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3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4 주님께서 온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세상의 온 나라를 인도하시니, 온 나라가 기뻐하며, 큰소리로 외치면서 노래합니다. (셀라) 5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6 이 땅이 오곡백과를 냈으니,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니, 땅 끝까지 온 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여라.
본문 |
이사야 56장 1, 6-8절
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곧 나타날 것이다."
6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 사람들은, 7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8 쫓겨난 이스라엘 사람을 모으시는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미 나에게로 모아 들인 사람들 외에 또 더 모아 들이겠다."
로마서 11장 1-2, 29-32절
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를 두고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합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29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30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32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1-28절
2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2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7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28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식탁 아래에도 빵은 떨어집니다 |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따라오며 자기 딸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거듭 외칩니다. 딸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복음서가 알려 주는 것은 이 여자가 딸의 고통을 안고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뿐입니다.
예수님께 애원하던 여자의 간청과 대답 사이에 침묵이 있습니다. 그 사이 제자들은 여자를 돌려보내자고 말합니다. 여자가 줄곧 소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여자의 간절한 외침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얼른 사라졌으면 하는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여자는 물러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15:25-26)
빵을 먹을 자격이 있는 자녀와 자격이 없는 개. 모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가나안'이라는 지명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기억 속 오래된 적대와 배제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이스라엘에게 먼저 주어졌다는 배경을 이해해도 이 말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그 말을 마지막 말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여자는 자녀들의 빵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아무것도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식탁 아래에도 빵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부스러기라 할지라도 식탁 위에 놓였던 바로 그 빵입니다. 같은 빵이 부서져 가장자리를 넘어 아래까지 닿은 것입니다. 빵이 풍성하다면 식탁 아래까지 닿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시고 바로 그때 딸이 낫습니다. 처음에는 외면 받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큰 믿음으로 불립니다. 식탁 아래에 있다고 여겨졌던 사람이 오히려 그 빵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사야가 바라본 하나님의 집에도 이미 모인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에게로 모아 들인 사람들 외에 또 더 모아 들이겠다"(사56:8)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고 다른 백성으로 대체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불순종했던 이방인도 자비를 입었고,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도 자비는 철회되지 않습니다.(롬 11:2,29) 바울이 마지막에 바라보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하나님의 집에는 "또 더" 모여들 사람이 있고,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자비에는 어느 한쪽이 독점할 수 없는 넓이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그 자비가 배제의 대상이었던 한 이방 여자의 딸에게까지 가닿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누군가가 밀려나야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경쟁의 자리가 아닙니다. 먼저 온 사람도, 나중에 온 사람도 자비로 삽니다. 우리는 누구도 식탁의 주인이 아닙니다. 모두 자비로 초대 받아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식탁의 주인처럼 행동합니다. 누가 안에 있고 밖에 있는지, 누구의 말은 듣고 누구의 말은 무시해도 되는지 쉽게 판단합니다.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도 계속 듣다 보면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귀찮은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누가 안에 있고 밖에 있는지를 묻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서 때문에 누군가의 간절한 목소리를 소음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하나님의 자비가 자신에게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끈질기게 외쳤습니다. 그 외침은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경계보다 더 넓고 풍성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낯설고 불편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목소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게 될까요? 우리가 그어 놓은 경계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더 넓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 아닐까요?
적용 질문 |
○ 우리가 받은 자비의 빵은 어디까지 다다르고 있나요?
세속성자의 기도 |
풍천리를 비롯해 개발로 사라지는 모든 지역과 존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생명의 하나님,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인 풍천리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 가는 모든 마을과 숲, 강과 들을 기억합니다. 오래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터전을 빼앗기는 동물과 식물,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작은 생명들의 곁을 지켜 주소서. 성장과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의 삶터를 희생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개발의 이익보다 이미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을 먼저 헤아리게 하소서. 더 많이 짓고, 더 빠르게 이동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이 언제나 좋은 삶을 의미하지 않음을 우리가 깨닫게 하소서. 끝없는 성장과 개발의 욕망에서 벗어나 적게 소유하고 천천히 살아가며 서로의 자리를 지켜 주는 사회를 이루게 하소서. 사라지는 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모든 생명이 함께 머물 자리를 남겨 두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응답 없는 시간을 지나는 이들을 위한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대답 없는 나날을 지나는 이들에게 힘을 주소서. 가끔은 성경 말씀에도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노래들이 답 없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될 때면, 당신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회복되지 않는 건강을 위해, 돌아오지 않는 평안을 바라며, 바뀌지 않는 세상을 안타까워하며 드렸던 기도가 깊은 한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모든 기도가 당신께 닿았는지요.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그 침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았던 이들을 끝내 외면하지 않으셨던 주님, 삶의 구원을 갈망하며 당신을 찾는 이들이 기도를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긴 기다림의 날들을 낙담과 한숨으로만 채우지 않도록, 기쁨을 건네주소서. 소망을 보여 주소서.
예술가들을 위한 기도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지으신 하나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삶을 바라보고, 말로 다 담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창조의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예술가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예술이 빚어내는 아름다움과 풍요로 우리의 삶을 더욱 깊고 넓게 하소서. 예술이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게 하소서. 예술 작품이 혐오와 폭력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낯선 이웃에게 다가가는 통로가 되도록 이끄소서. 창작의 노동이 마땅한 존중과 대가를 받게 하시고, 예술가들이 생계의 불안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와 작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의 상상과 표현으로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더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그려 갈 수 있게 하소서.
청어람ARMC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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