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계속되는데 유가는 왜 떨어지나…IEA·EIA·KIEP 전망 보니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단기적으로 공급 차질이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생산과 수송이 정상화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원유 공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전쟁의 진행 경로에 따라 유가가 90달러에서 174달러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고, 산업연구원은 유가 상승이 국내 제조업 원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유가 하락을 전쟁 위험이 사라진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국제유가는 전쟁에 따른 공급 차질뿐 아니라 미국 원유 재고, 글로벌 석유 수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전망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시장이 향후 공급 정상화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게 주요 기관들의 분석이다.
IEA는 8월 석유시장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석유 공급이 하루 평균 43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의 생산 차질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송 제한이 공급 감소의 주요 배경이다. 반면 높은 연료 가격과 공급 부족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석유 수요 역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IEA는 공급 차질이 영구적인 생산능력 상실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생산시설이 다시 가동되고 수송망이 정상화되면 공급이 회복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IEA의 전망을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유가가 떨어진다는 전망'으로 단순 해석하기보다는 현재의 공급 충격이 향후 얼마나 정상화될 수 있는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비슷한 판단을 내놓고 있다. EIA는 8월 단기 에너지전망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점차 회복되고 대부분의 생산 차질 물량도 2027년 1분기에 복구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브렌트유 가격은 2026년 3분기 평균 배럴당 85달러에서 4분기 78달러로 낮아지고, 글로벌 원유 재고가 다시 증가하면서 2027년 연평균 69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유가가 곧바로 전쟁 이전 수준으로 복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유 생산시설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선박 운항이 재개되더라도 실제 물량이 시장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Citi)는 지난 7일 미·이란 갈등 해결이 지연되는 상황을 반영해 2026년 3분기 브렌트유 평균 전망을 배럴당 80달러로 기존 전망보다 5달러 상향했다. 다만 4분기 전망은 70달러, 2027년 연평균 전망은 65달러로 유지했다. 씨티는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단기 유가 전망은 높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정상화될 가능성을 반영해 상대적으로 낮은 유가 전망을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전쟁의 전개 양상에 따른 유가 충격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했다. KIEP는 지난 4월 1일 발표한 '미-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의 주요국 파급효과' 보고서에서 미·이란 분쟁을 ▲조기 종전·휴전 ▲호르무즈 봉쇄하 분쟁 장기화 ▲에너지 시설 타격·확전 등 3개 시나리오로 구분했다.
전 세계 33개국을 포괄하는 GVAR 모형에 각각의 원유 생산 감소 경로를 적용한 결과, 2027년 4분기 유가는 시나리오별로 배럴당 90달러, 117달러, 174달러로 추정됐다. KIEP는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3달러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조기 종전 시에도 에너지 시설 피해 복구가 지연되면서 전쟁 이전보다 높은 유가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90달러·117달러·174달러는 현재 시장의 유가를 단일하게 전망한 수치가 아니라, 전쟁의 전개 양상과 원유 생산 감소 경로를 각각 가정해 산출한 조건부 시나리오 분석 결과다. 특히 174달러는 에너지 시설 타격·확전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산출된 수치로, KIEP는 선형 모형의 특성상 해당 전망치를 하한 추정치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은 국제유가 변동이 한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국내 제조업의 생산비용은 평균 0.71%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업종별로는 석유제품의 생산비 증가폭이 6.30%로 가장 컸고 화학제품은 1.59%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원유 의존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유가 충격이 생산비에 더 크게 전달되는 구조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7월 분석에서는 미·이란 간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곧바로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기뢰 제거와 대기 선박 적체 해소, 선복 재배치, 보험 인수 재개 등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시 분석에서는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하락하더라도 실제 공급 회복에는 시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올해 말까지 국제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 수준에서 움직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유가 자체뿐 아니라 운송비와 보험료 등 주변 비용까지 함께 봐야 한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정유와 석유화학 등 원유 의존도가 높은 업종의 생산비가 직접적으로 증가하고, 해상 운송 차질이 이어질 경우 물류비 부담까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안정되고 원유 공급이 회복되면 에너지 수입 비용과 제조업 원가 부담이 완화될 여지가 있다.
전쟁 종료 이후 유가의 방향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과 중동 원유 생산시설의 정상화 속도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통항과 생산이 빠르게 정상화되면 공급 부족이 완화되면서 유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지만, 정상화가 지연되거나 에너지 시설이 추가로 타격을 받을 경우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높은 유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IA와 씨티가 각각 2027년 브렌트유 평균을 69달러와 65달러로 제시한 반면, KIEP는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와 에너지 시설 타격·확전이라는 조건부 시나리오에서 2027년 4분기 유가를 각각 117달러와 174달러로 추정했다. 다만 기관별 수치는 전망 시점과 전제 조건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결국 향후 국제유가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는 '종전 시점'보다 '공급 정상화 속도'가 될 전망이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호르무즈 통항과 원유 생산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고유가가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수송망과 생산시설이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면 국제유가는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만큼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선민 기자 minibab35@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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