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에서 남의 신발 팔던 회계사의 '대반전'…전설적 브랜드가 되다 [조셉의 패션 알쓸잡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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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란 브랜드를 생각해보자. 많은이가 스우시와 'Just Do It' 이라는 슬로건 그리고 나이키를 착용한 세계적인 선수를 떠올릴 것이다.
블루 리본 스포츠의 첫 정규직 직원인 제프 존슨이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따온 나이키를 제안했고,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생 캐롤린 데이비슨은 신발 옆면에 들어갈 곡선인 스우시를 35달러에 그렸다. 이러한 과정으로 탄생한 나이키에서 첫 스우시를 달고 출시한 제품은 1971년 멕시코 공장에서 만든 축구화 더 나이키였고 이후 스우시를 단 코르테즈를 내놓으며, 한동안 시장에는 타이거 줄무늬와 스우시를 단 매우 닮은 신발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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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란 브랜드를 생각해보자. 많은이가 스우시와 ‘Just Do It’ 이라는 슬로건 그리고 나이키를 착용한 세계적인 선수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스포츠 브랜드의 시작은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신발이 아니라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의 러닝화였다. 나이키의 전신 블루 리본 스포츠의 창업주 필 나이트는 평소에는 회계사로 일하다가 주말이면 육상 경기장을 찾아가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신발을 팔았다. 오늘날 혁신적 성능의 스포츠 제품을 상징하는 브랜드의 시작이 남의 제품을 미국 시장에 유통하던 브랜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작된 시장 조사
시작은 1962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수업 과제였다. 당시 미국 스포츠화 시장을 선도하던 곳은 아디다스와 푸마 등 독일 브랜드였다. 필 나이트는 일본 카메라가 독일 카메라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에 주목하여 값이 저렴하고 품질도 좋아지던 일본 러닝화들이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들을 이길 수 있다는 주제로 사업 계획 레포트를 작성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필 나이트는 범부들과는 달랐다. 그는 단순히 과제를 제출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졸업 후 일본 고베에 위치한 오니츠카 본사에 찾아갔다. 필 나이트의 회고에 따르면 오니츠카 타이거 임원들이 어느 회사를 대표하여 방문하였는지 묻자,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을 순간의 기지로 답변했다. 허풍에 가까운 자기소개였지만 그는 오니츠카 타이거를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964년 1월, 필 나이트는 오레건 대학교 시절 육상 코치였던 빌 바워만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블루 리본 스포츠를 시작한다. 빌 바워만은 단순히 이름만 빌려준 공동창업자가 아니었다. 그는 기존 육상화가 무겁고 선수의 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하며 신발을 뜯고 새롭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선수들의 발 윤곽을 그리고 발볼과 족적을 재며 시제품을 고쳤던 빌 바워만에게 오니츠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줄 제조 파트너였다. 필 나이트가 트렁크에 신발을 싣고 다니며 시장을 익혔다면 바워만은 훈련장과 부상 선수의 발을 통해 제품의 문제를 찾아냈다.
선수의 부상에서 코르테즈가 태어났다
이러한 협업으로 탄생한 신발이 코르테즈다. 1965년 바워만의 제자였던 장거리 육상 선수 케니 무어가 오니츠카 TG-22를 신고 훈련을 했는데 발의 통증을 느꼈다. 바워만은 그가 신었던 신발을 잘라 구조를 살폈다. 당시 이 신발은 앞꿈치와 뒤꿈치에 쿠셔닝 장치가 있긴 했지만 발의 아치를 지지하는 구조가 부족했고, 밑창도 견고하지 않았다. 이에 바워만은 쿠셔닝을 개선하고, 바닥에는 내구성이 높은 고무를 결합한 샘플을 오니츠카에 보냈다.
오니츠카는 이를 바탕으로 시제품을 만들었고, 양사는 계속 제품의 구조를 조정하며 협의를 했다. 그렇게 완성된 발 전체 길이의 미드솔 구조는 초기 코르테즈의 핵심이 됐다. 나이키는 이를 바워만의 설계라고 기록하고 오니츠카 역시 블루 리본 스포츠의 요청에 응해 타이거 코르테즈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현장의 문제의식과 일본의 제조 역량이 만나 만들어진 공동개발품이었다.
그런데 이 신발의 이름에는 경쟁 의식이 노골적으로 묻어 있다. 필 나이트의 회고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아즈텍이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디다스가 이미 아즈테카 골드라는 제품을 내놓고 상표 문제를 제기하자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그때 바워만은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물었고 에르난 코르테즈의 이름에서 착안한 코르테즈를 골랐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한다면 식민지 정복자의 이름을 제품명에 사용한 불편한 작명방식이다. 다만 당시 두 사람에게 이 이름은 아디다스의 경고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유치하면서도 분명한 도발이었다. 코르테즈는 미국의 조깅 붐과 맞물려 블루 리본 스포츠의 핵심 상품으로 성장했고, 1973년 러너스 월드는 코르테즈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거리 훈련화라고 평할 정도였다.
함께 만든 신발이 두 회사를 갈라놓았다
성공은 블루 리본 스포츠와 오니츠카의 관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가 공급하는 상품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해야 했고, 오니츠카는 커지는 미국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가져가려 했다. 당시 오니츠카는 미국 내 다른 유통사도 물색하며 블루 리본의 지분을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블루 리본 스포츠는 별도의 생산처를 찾으며 독자적인 브랜드의 신발을 준비했다.
한쪽의 일방적인 배신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고, 먼저 빠져나갈 문을 찾으며 발생한 결별이었다. 이때 현재 소지츠 상사의 전신인 닛쇼이와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1971년부터 블루 리본 스포츠와 거래를 하기 시작했고, 이후 생산처를 연결해줬으며 심지어 금융 지원을 하며 나이키의 독립을 떠받쳤다.
독립 과정에서는 제품만큼 이름과 로고가 필요했다. 블루 리본 스포츠의 첫 정규직 직원인 제프 존슨이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따온 나이키를 제안했고,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생 캐롤린 데이비슨은 신발 옆면에 들어갈 곡선인 스우시를 35달러에 그렸다. 훗날 나이키는 데이비슨에게 회사 주식과 금반지로 뒤늦게 보답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탄생한 나이키에서 첫 스우시를 달고 출시한 제품은 1971년 멕시코 공장에서 만든 축구화 더 나이키였고 이후 스우시를 단 코르테즈를 내놓으며, 한동안 시장에는 타이거 줄무늬와 스우시를 단 매우 닮은 신발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남의 신발을 팔던 회사가 나이키가 되기까지
결국 1973년 블루 리본 스포츠가 오니츠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오니츠카도 계약 위반과 상표권 문제로 맞섰다. 당시 법원은 블루 리본 스포츠의 손을 들어주면서 양측 모두 유사한 디자인의 신발을 판매할 수 있게 했다. 대신 코르테즈라는 이름은 블루 리본 스포츠가 가져갔고 오니츠카 제품에는 코르세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그래서 두 신발이 유난히 닮은 것은 누군가 다른 신발의 디자인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같은 개발 과정에서 갈라져 나온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키가 세계적인 스포츠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것의 발판이 이 코르테즈라는 이름을 차지해서만은 아니다. 코르테즈는 나이키란 브랜드가 오니츠카로부터 독립할 시간을 벌어준 상품이었고, 나이키는 1971년 빌 바워만이 와플 기계에서 착안한 밑창으로 나이키만의 제품 언어를 완성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1972년 문 슈였고 오니츠카와 결별 이후 첫 히트작인 와플 트레이너였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과 직접 만나며 만들었던 판매망, 현장에서 시작된 제품 개발 그리고 닛쇼이와이가 연결한 생산과 금융 인프라, 그리고 스우시라는 매력적인 상표가 한 회사에서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나이키의 진짜 도약은 남의 신발을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팔던 회사가 소비자에게서 얻은 지식을 설계로 바꾸고 그 설계를 생산망과 상표로 묶어 자기 사업의 자산으로 만든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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