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함으로 쌓아 올린 '최초'의 기록들…'모발이식' 황성주 박사 "인류에 희망 주고싶다"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김현선 2026. 8. 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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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부재할 때 그것은 상실을 불러옵니다.

피부과 전문의로 모발이식을 시작할 때도, 세계적인 정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도, 국내에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수술을 하거나 세계적인 석학들을 이끌게 됐을 때도.

실험은 머리카락을 다리에 심으면서 시작됐는데, 모발이식 효과를 의심하는 환자들에게 "머리카락은 다리에서도 이렇게 잘 자란다. 두피에서도 당연히 잘 자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은 일란성 쌍둥이에게 서로의 모발을 교차로 이식했을 때 잘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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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주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을 만나다]
"같은 털도 이식 부위에 따라 다르다" '수여부 영향설' 증명
골수이식 자매와 모녀에게 모발이식... 국내선 유일한 시도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부재할 때 그것은 상실을 불러옵니다. 우리에게 깊고 무거운 상실을 일으키는 존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탈모. 탈모를 바로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해 탈모 치료 1세대 개척자인 의학박사를 시작으로 100인의 탈모 전문가를 만납니다. '탈모'라는 두 글자 뒤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 주]

황성주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 /사진=명지병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새로운 과제가 생길 때마다 신실하게 임했다. 피부과 전문의로 모발이식을 시작할 때도, 세계적인 정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도, 국내에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수술을 하거나 세계적인 석학들을 이끌게 됐을 때도. 그러다보니 어느새 '개척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지난 30여년 모발이식 분야에서 정진하며 '세계 최초 수여부 영향설' 증명, 국내 최초 가족간 모발이식, 국내 최초 세계모발이식학회 회장 등 '최초'의 타이틀을 쌓아온 황성주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 이야기다. 지난 13일 만난 황 센터장은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저 '운명이었다', '운이 좋았다'라고 겸양했지만, 그는 당면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중하고 정확하게 풀어나가며 모발이식 분야 전체를 발전시켜 왔다.

신실함으로 쌓아 올린 '최초'의 기록들…'모발이식'
다리에 직접 머리카락 이식… '수여부 영향설' 밝혀낸 세계 최초 의사

― 한국에서 모발이식 수술을 개척한 '김정철 교수'에게 수학하고 지금은 명지명원 모발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다. 쭉 모발이식만 해왔나.
▲96년 경북대병원 피부과에서 김정철 교수님이 모발이식센터를 시작할 때 레지던트로 투입된 건 맞다. 하지만 이후에는 안동의료원에서 피부과 전문의로 일하며 다양한 피부 질환을 폭넓게 진료했다. 그런데 진료를 하면 할수록 한 분야에 몰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2000년 즈음 모발이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경북대병원으로 돌아가 해당 분야의 펠로우를 2년간 지냈다. 이후에는 계속 모발이식을 했다. 이제 30년 됐다.

― 경북대병원에서 모발이식을 시작하자마자 쓴 논문이 대한피부과학회에서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됐다.
▲당시에는 모발이식에 '공여부 영향설'이 근간을 이룰 때였다. 모낭은 옮겨 심어도 옮기기 전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모낭이 이식 부위 영향을 받는 '수여부 영향론'을 증명했다. 해당 연구로 대한피부과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세계모발이식학회에서 백금모낭상을 받았다.

―기존의 정설을 뒤흔들었다. 공여부 영향설이 틀렸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했나.
▲그렇지 않다. 실험은 머리카락을 다리에 심으면서 시작됐는데, 모발이식 효과를 의심하는 환자들에게 "머리카락은 다리에서도 이렇게 잘 자란다. 두피에서도 당연히 잘 자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리에 머리카락을 심고 3년이 지났는데 머리카락이 두피에서 자라는 것보다 느리게 자라는 것 같았다. 확인차 두 번째 이식을 했다. 역시나 느리게 자랐다. 수여부 영향이 의심 돼 세 번째에는 다리에 이식한 머리카락을 다시 두피에 심었다. 이번에는 빨리 자랐다. 모낭이 수여부 영향을 받는 게 증명된 거다. 그래도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마지막으로 가슴털을 두피에 이식했다. 당연히 가슴털도 머리카락처럼 빨리 자랐다. 그제야 수여부 영향설이 정설이 됐다.

―수 년 간 자신의 몸을 활용해서 실험을 한 건가. 놀랍다. 그렇다면 수여부가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뭔가.
▲두피는 혈액순환이 잘 일어나고 피부가 두껍다. 머리카락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손바닥은 혈액순환이 잘 일어나는 반면 피부가 얇아 머리카락이 뿌리내리기 어렵다. 등은 피부가 두껍고 탄탄하지만 혈액순환이 잘 일어나지 않아 머리카락에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기 어렵다. 즉 수여부의 혈액순환 상태와 피부 두께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수여부 영향설이 밝혀진 후 다른 부위의 모낭을 머리에 이식하는 등 모발이식 분야에 변화가 있었나.
▲다른 부위의 모낭을 두피에 이식하는 것,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모낭을 채취한 모든 공여부에는 흉터가 남는다. 머리숱을 늘리기 위해 다른 곳에 흉터를 남길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두피에 옮겨진 모낭들은 머리카락처럼 빠르고 길게 털을 만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에 자라는 머리카락만큼 길게 만들어내진 않는다. 모발이식에 가장 좋은 재료는 단연 머리카락이다.

3mm부터 6mm까지 머리카락 뿌리 길이 다 달라… 뿌리 길이 고려한 모발이식 방법 개발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수술 방법과 도구도 개발했다고.
▲ 모발이식을 한 환자 중에서는 이식 부위에 모공이 늘어난 것처럼 넓고 깊은 구멍이 산발적으로 생기거나,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모낭을 너무 깊게 이식하면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처음 해당 부작용과 그 원인을 안 후에는 모낭을 깊게 심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부작용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억울할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낭의 뿌리 길이를 재보고 싶었다. 채취한 모낭을 하나하나 분리해 길이를 재니 3mm부터 6mm까지 뿌리의 길이가 달랐다. 무조건 얕게 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맞춤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렇다면 뿌리 길이에 맞춰 이식 깊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건가.
▲ 그렇다. 각각의 뿌리 길이에 맞춰 모발이식을 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간호사들이 채취한 모발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뿌리 길이를 측정했다. 그런데 모낭도 인체 조직이라 모눈종이에 올려두고 길이를 재니 체액이 마르고 손상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고안한 게 눈금을 표시한 의료용 보드다. 유리와 유사한 폴리메탈메타크릴레이트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하는 동안 모낭이 마르지 않고, 3mm, 5mm, 6mm 등 뿌리의 길이별로 모낭을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있어 수술 시간 단축에 도움을 준다. 보드와 함께 식모기도 만들었다. 식모기는 바늘 길이 조절과 동시에 스탑핑(Stopping) 기능을 갖췄다.

"제 머리카락 다 줘도 돼요" 골수 이식 혈족간 모발이식… 국내 첫 시도

― 모낭도 장기인지라 타인의 모낭은 이식하기 어렵다고 들었다. 그런데 국내에서 가족간 모발이식을 성공했고, 그 수술을 직접 집도했다고 들었다.
▲ 맞다. 20년 전 자매가 나를 찾았다. 자매 중 동생은 백혈병으로 항암을 한 이후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상태였고, 언니는 동생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주고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안될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면역거부반응 때문이다. 그런데 골수이식을 했다고 하더라. 골수이식을 할 경우에는 이식한 사람의 피가 이식 받은 사람의 몸에 흐르고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실험을 했다. 동생과 언니에게 교차로 머리를 이식해 반응을 살폈다.

―흥미롭다. 결과는 어땠나.
▲동생의 머리는 언니에게서 자라지 않았지만 언니의 머리는 동생에게서 잘 자랐다. 언니의 면역세포가 동생의 몸안에서 자신의 조직을 받아들인 것. 반면 언니의 면역세포는 동생의 두피에 남아있는 동생의 DNA를 거부한 것이다. 자매 외에도 2025년에는 엄마가 딸에게 모발이식을 해줬다. 역시 골수이식을 한 상태였다. 자매와 모녀 모두 내가 집도했다. 골수이식을 한 가족간 모발이식은 국내에서 두 케이스가 유일하다.

―타인의 모발이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골수이식이 수반돼야 하나.
▲예외도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골수이식을 하지 않고 모발이식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은 일란성 쌍둥이에게 서로의 모발을 교차로 이식했을 때 잘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실험은 아마 세계 최초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 외에는 골수이식을 하지 않는 한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타인의 모발을 이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조직을 받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헐리우드를 떠들썩하게 한 세레모니… 동료들이 인정한 '페이스풀(Faithful) 리더'

―수여부 영향설 발표, 뿌리길이에 따른 수술 방법 개발, 가족간 모발이식… 다 최초인데. 아직 더 남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세계모발이식학회' 회장을 지냈다. 회장은 주로 무슨 일을 하나.
▲세계모발이식학회 회장은 상임이사 3년, 총무이사 3년, 부회장 1년을 거쳐 할 수 있다. 운이 좋게도 동료들의 추천으로 모든 과정을 거쳐 회장까지 할 수 있었다. 회장을 하면 끊임 없이 회의하고 끊임 없이 결정한다(웃음). 화상 회의를 통해 세계 각국의 회원들과 학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여러 사안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시차도 다르고 같은 영어를 쓰더라도 각국에서 쓰는 억양이 달라 힘든 면도 있었지만 성실히 임하려 노력했다.

―세계의 석학들을 리드하는 자리에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학문이나 기술적인 분야 외에, 인간적으로 즐거웠던 일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회장을 지낼 당시 세계모발이식학회가 25년을 맞았다. 서양에서는 25주년을 '실버 주빌리(Silver Jubilee)'라고 부르며 크게 기념한다. 25주년 행사를 어떻게 치룰까 고민하던 중, 행사 장소가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하는 장소로 결정됐다. 그래서 갈라디너 파티를 '세계모발이식학회 펀 아카데미 어워즈(ISHRS Fun Academy Awards)'로 이름짓고 의미있는 상을 만들어 수상하자고 제안했다.

―학회에서 주는 상이라 하면 '올해의 연구자상' 같은 건가.
▲그럼 재미 없지 않았겠나. 실버 주빌리를 맞은 만큼 그간 학회에 기여한 사람들을 축복해주고 싶었다. 기부를 많이 한 사람, 자선 수술을 많이 한 사람, 봉사를 많이 한 사람 등을 뽑았다. 진짜 시상식처럼 봉투에서 이름을 꺼내 호명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와 비슷한 트로피를 만들어 전달하니 상을 받는 사람마다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동행하는 가족들을 위해 베스트 드레서도 뽑았다. 모든 회원과 가족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고, 바람대로 된 것 같아 기뻤다.

―그 진심을 학회에서도 알아준 것 아닌가. 역으로 학회에서 상을 줬다고 들었다.
▲행사를 마치고 즐거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데 내 이름이 불리더라. 임원들이 지난 25년간 세계모발학회를 이끈 리더 중 가장 신실한 리더, 페이스풀(Faithful) 리더로 나를 뽑았다. 나야말로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감격스러웠다. 행사 후에는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회장 환영 행사를 진행했고, 같은 스위트룸에서 묵었다. 배우는 아니지만 헐리우드에서 그날 가장 환대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한다. 영광스러운 기억이다.

―같은 한국인으로써도 감동적이다. 그렇다면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은 뭔가. 아직도 '최초'의 도전과 발견을 이어가고 싶나.
▲가장 먼저는 성장하는 후배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새벽별처럼 희망을 주고 싶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환자가 될 수도 있겠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국가의 어린 아이들이나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도 아프리카 아이들 100명을 교육시키고 있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다 천국에 가지 않겠나. 그때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값지고 보람찬 날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명지병원에서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가고싶다. 모발이식센터장을 하면서 동시에 홍보실장을 맡고있다. 연구 성과를 내고, 모발이식센터를 잘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려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독일의 베를린필 교향악단의 수석 오보이스트와 수석 비올리스트가 명지병원을 위해 특별 음악회를 열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나와 모발이식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인데, 고맙게도 환자들을 위해 걸음을 해줬다. 앞으로도 나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뜻깊은 일들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kind@fnnews.com 김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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