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퇴직연금 기금형 판 깔리는데… 무과실 입증책임·독과점 우려에 운용업계 반발

박지윤 기자 2026. 8. 1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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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조원 규모로 덩치를 키운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지배구조가 전면 개편된다. 정부가 기존 '계약형' 중심의 퇴직연금 제도를 연기금 형태인 '기금형'으로 확대하기 위해 외부 독립 기구 형태의 수탁법인 설립을 추진하면서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을 유지하면서, 외부 독립 기구 형태인 '금융기관개방형' 및 '연합형'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새롭게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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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이달 말 ‘수탁법인 설립’ 근퇴법 개정안 발표
자기자본 요건·손해배상 책임 강화에 “민간 참여 위축” 비판도
“운용 전문성보다 자본력 큰 대형사 독과점 우려”
일러스트=챗GPT 달리3

500조원 규모로 덩치를 키운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지배구조가 전면 개편된다. 정부가 기존 ‘계약형’ 중심의 퇴직연금 제도를 연기금 형태인 ‘기금형’으로 확대하기 위해 외부 독립 기구 형태의 수탁법인 설립을 추진하면서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르면 오는 8월 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근퇴법)’ 개정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사적 연금의 고질적인 원리금 보장 위주 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을 유지하면서, 외부 독립 기구 형태인 ‘금융기관개방형’ 및 ‘연합형’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새롭게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핵심은 독립된 자산운용·수탁 기구인 ‘기금 전문 수탁법인’을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운영·위탁 관리할 민간 자산운용 및 수탁 사업자의 자격과 설립 기준(고용노동부 장관 허가, 자기자본 요건 등)도 함께 정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한국고용복지연금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조선비즈가 입수한 올해 4월 마련된 해당 연구 결과 보고서에는 수탁법인 업무에 자본시장법상 집합투자업자와 투자일임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의 신·구문을 비교하는 일부개정법률안으로 구성돼 이를 기반으로 개정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자산운용 영역인데”… 대형사 독과점과 운용사 배제 우려

업계에서는 개정안에 엄격한 자기자본 요건과 손해배상 책임이 담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퇴직연금 자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굴리는 외부위탁운용(OCIO)과 수탁 영역은 원래 자산운용사 본연의 핵심 전문 영역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높은 자기자본 요건과 과도한 리스크 부담 탓에 정작 운용 전문성을 갖춘 자산운용사들이 시장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자본력을 갖춘 대형 은행·증권·보험사 위주의 독과점 카르텔로 재편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자산을 장기적으로 배분하고 운용하는 것은 자산운용사의 핵심 전문 영역”이라며 “손실 위험을 감당할 자본력과 법적 리스크 대응 능력을 갖춘 일부 대형 금융사 위주로만 시장이 형성되면 운용 전문성을 가진 중소형사의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무과실 입증책임’ 독소조항… 수익률 제고 취지 무력화

손해배상 시 적용되는 ‘무과실 입증책임’ 조항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연구결과 보고서에는 수탁법인이 의무를 위반해 손해를 입힌 경우,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수탁법인이 직접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를 전액 배상하도록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 같은 입증책임 전환이 정상적인 운용 행위마저 극도로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손실 발생 시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배상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위험 부담이 큰 실적배당형 상품(주식·채권 등)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금형 제도의 본래 목적인 ‘수익률 제고’와 달리 다시 보수적인 원리금 보장형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호주 등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수탁자 책임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호주의 경우 운영 리스크 관리(ORFR) 차원에서 일정 수준(자산의 0.175~0.25%)의 재원을 사전 완충 장치로 적립하게 할 뿐 수탁자에게 주의·충실의무를 넘어 투자 결과론적 손실에 대한 ‘무과실 입증책임’까지 징벌적으로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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