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까지 병목 생기자 수요 줄여 버티는 유가 [트럼프 스톡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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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무력 공방으로 국제 유가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에너지 물류 병목 현상이 중동의 홍해, 우크라이나의 흑해까지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에 이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많은 논란을 불렀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사령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과 관련한 미국의 근거 없는 주장은 미군의 절망과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완전한 관리와 통제 아래에 있고 어떤 상선이나 유조선도 승인 없이 지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뒤부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치는 홍해 항로를 통해 상당량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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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유 공급·재고 급감 속 수요까지 감소
최대 수입국 中도 줄여...유가 하락에 주가 ↑
호르무즈 불확실성에 무역량 감축도 곧 한계
후티 홍해 공격, 러·우크라 흑해 충돌 추가
트럼프 “해협 완전 장악”...美·이란 모두 냉소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무력 공방으로 국제 유가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에너지 물류 병목 현상이 중동의 홍해, 우크라이나의 흑해까지 번지고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의 길을 가자 유가 상승이 단기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전 세계 각국도 이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쪽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기름값이 비싸지면서 산업계 전반적인 비용 부담이 너무 늘었기 때문이다. 국제 원유 공급이 줄어든 만큼 수요도 감소하면서 국제 유가는 역설적으로 배럴당 100달러 밑에서 안정세를 구가하고 있다. 유가가 상반기만큼 뛰어오르지 않다 보니 글로벌 증시도 그나마 덜 영향을 받고 있다. 다만 중동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지나치게 크기에 유가 상승, 물류 차질의 위험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게 나온다.

이날 뉴욕 증시의 상승에는 시장 전망치를 밑돈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 결과와 유가 하락의 영향이 동시에 작용했다. 특히 국제 유가의 경우는 중동 전황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음에도 2% 이상의 유의미한 하락세를 보였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2.15% 내린 87.07달러로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2.43% 하락한 배럴당 81.25달러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하락은 12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8월 석유 시장 보고서가 이끌었다. IEA는 보고서에서 올해 석유 공급량이 연평균 하루 430만 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예측치인 하루 370만 배럴 감소보다 60만 배럴 늘어난 규모였다. IEA는 전 세계 석유 공급량 둔화 이유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지속적인 봉쇄를 꼽았다.
호르무즈 해협 우회 경로를 포함한 걸프 지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6월과 7월 370만 배럴, 250만 배럴씩 늘어나 2390만 배럴까지 불었지만, 전쟁 이전 수준보다는 여전히 830만 배럴이 부족했다.
특히 지난달 초부터 해협이 다시 폐쇄되고 에너지 인프라(기반시설)와 유조선이 공격받은 뒤로는 다시 하루 210만 배럴이 급감해 1500만 배럴로 주저앉았다. 선적량도 지난달 초 하루 2000만 배럴까지 늘었다가 월말에는 1200만 배럴로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전 세계 원유 재고는 6900만 배럴 급감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원유 재고량은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으로 79억 배럴 아래로 떨어졌다. 걸프만과 카스피해에서 수출 차질이 재발하면서 해상 원유 물량이 급감한 탓이었다.
지난 2월 28일 시작한 이란 전쟁과 이에 동반된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원유 공급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었다. 시장이 더 주목한 지점은 석유 공급량뿐 아니라 전 세계 수요량까지 빠르게 줄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IEA는 고유가 탓에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연평균 하루 16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제시한 추정치보다 하루 51만 배럴 더 많은 수준이었다.
IEA는 세계 석유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는 시점을 올 4분기로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올해 말에는 석유 시장이 다시 공급 과잉 상태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내년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 24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물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정상화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전망이었다.

실제 중국의 5월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0% 줄었다. 수입량을 줄였는데도 유가가 비싸다 보니 수입액만 15.3%나 더 늘었다. 4월과 비교하면 수입량과 수입액 모두 각각 14.0%, 6.7% 감소했다. 중국의 1∼5월 누적 수입량도 2억 1836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 줄었다. 누적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3.5% 많은 1281억 달러(약 194조 5000억 원)로 집계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5월 원유 수입은 하루 평균 780만 배럴로 2017년 10월 이후 가장 적었다. 중국의 지난해 하루 평균 수입량은 1160만 배럴이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도 6월 9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주최의 ‘글로벌 에너지 포럼’에서 중국의 원유 수입량 감축이 국제 유가 안정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아직도 출구를 못 찾은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에 이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많은 논란을 불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는 해군도, 공군도 없고 남아 있는 병사들은 급여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궤멸해 도주하고 있다”고 큰소리쳤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전쟁 개시 전 하루 평균 130척 이상이 통과하던 호르무즈 해협에서 11일에는 14척만 지나갔다며, 이마저도 이란이 관리하는 항로를 이용했다고 반박했다. 6월과 지난달에도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량은 하루 평균 33척, 26척에 그쳤다. 이란이 드론·미사일로 선박을 공격하자 해운사와 보험사 등이 불안감에 운항을 줄인 여파였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도 X(옛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해 “가짜 뉴스보다 더 최악은 바로 가짜 정보이니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사령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과 관련한 미국의 근거 없는 주장은 미군의 절망과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완전한 관리와 통제 아래에 있고 어떤 상선이나 유조선도 승인 없이 지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의 호세인 타에브 사령관도 반관영 파르스통신에서 “미국은 이란에 공군이나 해군 병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또다시 패배했다”며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안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은 우회로 건설에 막대한 돈을 퍼붓고 있다. 또 한국, 일본, 인도 등 소비지에 석유 저장시설도 대폭 확장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촉발된 원유 물류 차질은 이제 홍해와 흑해까지 번지고 있다. 예멘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은 지난달 20일 예멘 수도 사나 공항 폭격의 배후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목하면서 4년간 이어진 휴전 종료를 선언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전면적인 해상 봉쇄를 경고하고 지난달 23일부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사우디아라비아 관련 선박을 쉬지 않고 공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뒤부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치는 홍해 항로를 통해 상당량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13일에도 드론 2기로 홍해 근처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정유 시설을 공격했다. 후티 반군 측 매체인 사바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다와 하자주에서 예멘 영공과 주권을 침범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12일 WSJ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 오데사 지역의 주요 항구 3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무역로 차단을 시도하고 있다. 오데사 지역 당국에 따르면 6월 20일 이후에만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공격으로 선박 57척이 피해를 입었고, 최소 21명이 숨졌다. 이는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발생한 전체 선박 공격의 30%가 넘는 규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통해 밀을 비롯한 곡물을 빈곤국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 수준으로 수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11일 러시아 흑해 항구 도시 노보로시스크의 항만 인프라를 타격했다. 노보로시스크항 주변 유조선과 인프라에 대한 공격은 전 세계 원유의 약 2%를 운송하는 카스피해송유관컨소시엄(CPC) 운영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의 에너지 대기업 셰브런과 엑손모빌도 CPC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달 3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흑해 유조선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원유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는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공급 감소 압박을 언제까지 버틸지는 불확실하다. 각국이 원유 가격 상승에 수요 감축으로 대응하는 데에도 언젠가 한계를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 전쟁이 당장 종전으로 봉합될 가능성도 낮아 보이지만, 단기간에 그렇게 되더라도 각 해협 통항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가 회복되는 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상당 기간은 유가 불안이 주식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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