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 쉬어 넘는 고개' 옛말…숲길 20리 '맨발족 성지' [山文기행]

김세중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6. 8. 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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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도대체 어떤 고개길래? 고개 양쪽 가장 가까운 일반주차장 사이 10km 구간을 걸어서 넘어 봤다.

새재 전까진 낙동강, 충주부터는 남한강 뱃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여느 고개들과 달리 새재엔 끝내 일반 자동차길이 닦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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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재
문경 쪽 조령제1관(주흘관) 밖에서 올려다본 새재. 왼쪽이 조령산, 오른편은 주흘산.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한국영화사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서편제>의 청산도 황톳길 5분 30초 롱테이크 장면. '진도 아리랑' 슬픈 노랫말조차 흥에 겨워 부르는 모습을 보다가 잠깐.

'전라도 진도 노래에 웬 경상도 문경새재?'

'진도 아리랑'뿐만이 아니다. 남한의 '강원도 아리랑'이 북으로 넘어가 '경상도 아리랑'이 됐는데 거기도 "문경새재는 어드멘고 / 구부야 구부야 삼백 릴세"가 나온다. 130년 전인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1863~1949)가 오선보로 채보해 영문 소식지에 소개한 서울 지역 '구舊아리랑'에도 "문경새재 박달나무 / 홍도깨 방맹이 다 나간다"는 구절이 있다. 문경새재 이름은 아리랑 선율 따라 '국민고개'로 전국에 퍼졌다.

도대체 어떤 고개길래? 고개 양쪽 가장 가까운 일반주차장 사이 10km 구간을 걸어서 넘어 봤다.

조령산 정상 아래 산자락에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을 조성해 놓았다. 최근작인 영화 세트장이 인기다.

충북 쪽에선 '연풍새재'

새재는 소백산맥의 주흘산(1,108m)과 조령산(1,026m) 사이의 해발 643m 고개다. 억새풀이 무성하대서 한자로 초점草岾이라고도 썼으나 16세기 초부터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조령鳥嶺으로 굳었다. 아리랑 노래처럼 경상도 쪽(경북 문경시 문경읍) 이름인 문경새재로 널리 알려졌지만, 반대편 충청도(충북 괴산군 연풍읍)에서는 당연히 연풍새재라고 부른다.

육상교통은 두 발과 마소·달구지뿐이던 시절, 영남이나 영동에서 한양을 가려면 일단 백두대간을 넘어야 했다. 동래~한양 간 영남대로에서도 새재는 가장 물동량이 많은 도로였다. 문경읍에서 새재 넘고 연풍~수안보 지나 충주시내까지는 약 47km. 맨몸의 장정이라도 하루 낮 동안 가기 버거운 거리다. 새재 전까진 낙동강, 충주부터는 남한강 뱃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왜인倭人 수송과 관련해) 만약 수로水路로 배가 다닐 만한 때이면 낙동강으로부터 올라와서, 상주에 이르러 다시 육로를 따라 초점을 넘어, 충주의 금천천金遷川에 이르러 배를 타고 서울로 오게 됩니다. 짐 실은 말이 10필이 되지 않은 것은 모두 그전대로 육로로 올라오게 하고, 수로에 배 다니기가 적당하지 않을 때에는, 초점은 그만 제쳐놓고 증약增若과 죽령竹嶺의 두 길을 따라 길을 나누어… (세종실록 5년[1423] 음 3월 12일)

초점이 새재이고 금천천은 지금 충주 중앙탑 근처다. 물자가 적거나 남한강 수위水位가 낮을 땐 새재 대신 추풍령(증약)과 죽령을 이용하도록 하자는 병조兵曹 건의다.

임진왜란 개전 초, 조선의 총사령관 신립申砬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병을 맞아 이곳 새재 매복전을 포기하고 충주 단월역 강변에서 승부를 시도했으나 대패했다. 지금의 성곽과 관문들은 그 2년 뒤부터 숙종대 사이에 뒷북으로 보수한 것이다.

제2관문(조곡관) 지나 있는 문경새재아리랑비
도립공원 초입 문경새재박물관 뜰에 세운 석비의 헐버트 악보는 서울 '구舊아리랑'이다.

폭포, 정자, 사극 세트장 등 볼거리 풍부

영남대로의 새재 이북은 3번국도가 되었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여느 고개들과 달리 새재엔 끝내 일반 자동차길이 닦이지 않았다. 1930년대 문경에서 소학교 초임 교사로 근무했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어 문경을 다시 찾았을 때 "새재엔 찻길을 내지 말아야 자연이 보전될 것"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국도는 새재 대신 남서쪽 이화령을 넘었고, 고속도로는 문경새재IC를 통해 중부내륙고속도로 이화령터널을 이용할 수 있다. 임도林道 외에 변변한 찻길을 내지 않은 새재 약 7km 구간 일대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고갯마루 넘어 곧바로 월악산국립공원이 이어진다.

아침 일찍 문경읍 방면에서 도립공원에 들어섰다. 조령제1관(주흘관), 제2관(조곡관)을 차례로 지나 고갯마루인 제3관(조령관)까지 2시간쯤 거리다. 제1관문에서 바라보는 새재는 아득했지만, 고운 흙 깔린 길은 돌부리 하나 걸림 없는 그야말로 무장애 숲길이었다. 제2관문까지는 유료 전동차가 다니고, 휠체어와 유모차를 태울 수 있는 전동차도 제1관문까지 다닌다. 남녀노소 맨발족이 심심찮게 보였다.

제1관문 들어서자마자 왼편 조령산 자락엔 영화와 TV사극을 찍었던 세트장(일과중 유료)이 들어서 있다. KBS가 <태조 왕건> (2000~2002) 등 사극을 제작하기 위해 문경시와 함께 2000년부터 8년에 걸쳐 조성한 곳인데 최근에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세트가 인기다.

시내 따라 올라가는 길 좌우로 소沼와 폭포들이 연이어 나오고, 옛 오솔길 일부와 조령산·주흘산으로 통하는 등산로도 곳곳에 나 있다. 신구新舊 경상도관찰사가 관인官印을 인수인계하던 장소인 교귀정交龜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정자 앞 시내의 작은 2단폭포 중간엔 소 하나가 형성됐는데 그 옆 바위벽에 '용추龍湫'라 새긴 석각이 또렷하다. 조선 후기에 세웠을 것으로 보이는, '산불됴심'이라 세로로 새긴 한글 비석을 지나면 곧 제2관문이고, 이제 절반을 오른 것이다. 경사가 조금 급해지고 여기부턴 전동차도 없다.

연풍 수옥정 옆 수옥폭포(왼쪽)

아리랑 '향뽕' 해설에 스텝이 꼬이다

제2관문 지나 왼편에 있는 문경새재아리랑비碑 옆 스피커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락만 들어서는 영락없는 '정선 아리랑'이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도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 (…)

문경새재를 넘어갈 제

구비야 구비 구비가 눈물이 나네.

일대엔 실제로 박달나무가 많아 홍두깨나 다듬이방망이감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도립공원 초입에 있는 문경새재박물관에서는 이 노래를 포함해 노랫말에 문경새재가 나오는 모든 아리랑을 '문경새재 아리랑'이라고 규정해 놓고 있었다. '진도 아리랑'은 물론, 서울 지방 아리랑인 헐버트 아리랑까지! 빗나간 애향심이다. 이걸 보고 듣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헐버트 아리랑은 서울 '옛날 아리랑'이고, '문경 아리랑'은 '정선 아리랑'의 하위종種"이라고 다르게 배울 텐데.

원풍저수지 일대에 조성한 수옥정관광지.

고개 넘어 수옥정까지, 그리고 다시…

오르막 두 시간 거의 내내 볕을 직접 맞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었고, 새재 마루인 제3관문 가까이 와서야 비로소 잠깐 땡볕이 내리쬐었다.

무릇 고갯마루란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치는 길목이다. 제3관문을 나서 연풍으로 내려간다. 바로 아래는 조령산자연휴양림이 있고, 가장 가까운 무료 공영주차장은 3km쯤 떨어진 연풍레포츠공원과 수옥정관광지에 있다. 사실 나는 전날 사전답사 삼아 연풍레포츠공원에 차를 세우고 제3관문까지 걸어갔다 와 봤고, 수옥정 일대도 미리 둘러봤다. 문경 구간을 완주한 이날은 수옥정 방향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수옥정漱玉亭은 1711년(숙종 37)에 연풍현감 조유수가 수옥폭포 옆에 지은 정자였는데, 지금 정자는 196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폭포 바로 상류에 댐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고, 일대에 생태공원, 산책로, 물놀이장 등을 조성해 놓았다.

이로써 나도 비로소 "새재를 넘어 봤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넘어 본 정도가 아니라, 문경 쪽에 차를 두고 왔으므로 도로 10km를 되짚어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 새재를 넘었다.

충청도 쪽에서 올라오는 연풍새재 고갯마루의 조령제3관(조령관).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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