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2.0] 육영수 피살 직후 美보고서 “한국은 국민적 슬픔에 빠졌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2026. 8.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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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 공개 1974년 미 대사관 비밀문서
8월 20일자엔 어떤 내용이 담겼나
1973년 7월 11일 육영수 여사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재해민 구호를 위한 옷을 만들고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육영재단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지난 11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위원장 허동현)가 새로 공개한다고 밝힌 1974년 미국 비밀 문서도 그랬다. 이것은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이 생산한 문서 51개와 문서철 1200여 건이다.

자료의 이름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RG 84 국무부 재외공관 문서, 비밀 중앙 주제 문서철(Classified Central Subject Files), 1974, Entry P892’이며, 전문(電文), 보고서, 비망록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 비밀 해제됐고, 국편이 지난해 미국 현지에 파견한 편사연구사가 수집 작업 도중 새롭게 확인한 기록물이다. 국편 측은 지난 3월 수집을 마친 뒤 목록 정리 과정을 거쳤다.

국편 측은 이 문서에 대해 “긴급조치가 시작된 1974년 박정희 정권의 통제 메커니즘과 한계를 미국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증언하는 핵심 사료”라고 평가했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유신 체제하에서 긴급조치와 같은 극단적 통제로 인해 당대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자료가 부족해 관련 역사 연구가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신규 자료 발굴은 그동안의 자료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성과”라고 했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 관련, 8월 20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 /국사편찬위원회

이 자료 중 1974년 8월 20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의 비밀 전문(서울 제5439호)의 내용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닷새 전인 8월 15일에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과 관련한 보고다. 작성자는 대사관 정무과의 도노휴(Donohue), 승인자는 대사대리 에릭슨(Ericson)이었다. 원문→(번역문)→[해설]의 순서대로 싣는다.

1. General reaction to attempted assassination of Pres Park and death Mrs Park has been somber and subdued. There is public sadness and shock over Mrs Park’s death. As evidenced by massive and by no means entirely contrived turnout for her funeral, she was gracious and sympathetic figure widely respected even by those who opposed her husband.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과 육영수 여사의 서거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침통하고 가라앉아 있다. 육 여사의 서거에 대해 국민적인 슬픔과 충격이 존재한다. 장례식에 대규모 인파가 몰렸고 이는 전적으로 연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육 여사는 남편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에게조차 널리 존경받은, 품위 있고 따뜻하며 동정심 많은 인물이었다.)

[육영수 여사 추모 분위기의 진정성을 다룬 이 부분의 서술은 이 문서가 대체로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실제 상황에 근접해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직후의 국립극장 단상. 조선일보 임희순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조선일보 DB

2. There is also sympathy for Pres Park and his family as well as realization that abortive assassination attempt might well have succeeded, leaving country without its present leader. In view of those closely associated with government, his demise would have precipitated at least a period of deep political uncertainty, if not an immediate and disruptive internal power struggle. On other hand, sympathy of Park’s opponents is tempered and attemped assassination not changed their attitude toward Park and his policies.

(박정희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동정 또한 존재하며, 아울러 이번 저격 미수가 성공했을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나라가 현 지도자를 잃었으리라는 인식도 함께 있다. 정부와 가까운 이들이 보기에, 그의 사망은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내부 권력 투쟁을 촉발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깊은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기를 촉발했을 것이다. 반면 박 대통령 반대 세력의 온정은 제한적이며, 저격 미수 사건이 박 대통령과 그의 정책에 대한 이들의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박정희가 갑자기 서거한다면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내부 권력 투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1974년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이 예측했다는 것에 대해 눈길이 간다. 1980년에 그 우려는 군부에서부터 현실화됐다.]

1974년 8월 19일 대통령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 국민장 영결식에 참석하려는 군중이 세종대로 사거리에 모여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10권

3. There is now widespread speculation as to what consquences of the attempted assassination will be, both in terms of government domestic policies and with regard North Korea and Japan. Pres Park remains in state of deep grief over his wife’s death, and we have gotten clear impression from Blue House and primin’s office that president has been absorbed and remote in past days. Our sources state Park has not given any signal as to what his reaction will be to assassination attempt.

(현재 이번 저격 미수의 결과가 무엇일지를 두고 폭넓은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국내 정책과 관련해서나 북한 및 일본과 관련해서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부인의 죽음에 대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으며, 우리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로부터 대통령이 지난 며칠 동안 안으로 침잠하고 외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 소식통들은 박 대통령이 저격 미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해 아무런 신호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작 대통령 본인은 닷새가 지날 때까지도 침묵하고 있었다. 미국 측이 보기에도 ‘박 대통령이 슬픔 속에 빠져 있었다’는 기술에 주목할 만하다.]

4. There is some speculation that Park’s wife’s death may shock him into adopting more moderate, conciliatory stance, easing domestic pressures. Other Korean observers however believe this is wishful thinking. They point out it has been Park’s character to react strongly, and not passively, to threats or actions directed against him. Several christian sources hold view that Park will certainly continue his repressive policies, using public sympathies over loss of his wife and attemped assassination to justify his actions. These christians believe that Park may succeed in this since there is among general public renewed conviction that communist threat continues. These christian leaders also feel caught in dilemma since it inappropriate to mount anti-govt protest activities in immediate aftermath of Mrs Park’s death. At same time, christian leaders fear that if they lapse into silence for any length of time, momentum of their present opposition movement may well collapse.

(영부인의 죽음이 박 대통령에게 충격을 줘, 보다 온건하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고 국내적 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일부 있다. 그러나 다른 한국 측 관계자들은 이것이 희망적인 관측이라고 본다. 그들은 자신을 겨냥한 위협이나 행동에 대해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강하게 반응해 온 것이 박 대통령의 성격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러 기독교계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부인을 잃은 데 대한 대중의 동정과 저격 미수 사건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면서 억압 정책을 틀림없이 계속할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들 기독교계 인사들은 공산주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는 확신이 일반 국민 사이에 되살아났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들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육 여사 서거 직후의 시점에 반정부 시위 활동을 벌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느끼고 있다. 동시에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얼마간이라도 침묵에 빠져들 경우 현재 자신들의 반대 운동이 지닌 동력이 무너져 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읽어볼수록 미 대사관 측이 짧은 시간에 많은 유력 인사를 만나 다양한 정보를 청취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의 정책이 온화해질까? 아니면 더 강경해질까? 두 가지로 갈린 예측 속에서 보고서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있는데, 우리는 현실이 대체로 그렇게 전개됐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계 인사’들은 참으로 많은 생각과 예측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10월 7일,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의 범인 문세광이 첫 재판이 열린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자해를 막기 위해 안경을 벗겼고 가죽 수갑을 채웠다. /조선일보 DB

5. So far we have no independent information regarding ROKG announcement that Mrs. Park’s killer Mun Se gwang has confessed to being under North Korean and/or Chosen Soren direction. ROKG will, at the least, exploit Mun’s reported confession both in domestic propaganda, as justification for its policies, and internationally as evidence of the North Korean regime’s treachery vis-a-vis the ROK. ROKG may also refuse deal with North Koreans at Panmunjom for present. (Aug 21 SNCC meeting has been postponed.) We are watching carefully for any signs that ROKG might go further and consider some counterstroke against North. So far neither we nor UNC has received any indication that government is thinking along that line. We remain alert to this possibility.

(육영수 여사를 살해한 문세광이 북한 및/또는 조총련의 지시를 받았다고 자백했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와 관련해 지금까지 우리가 독자적으로 확보한 정보는 없다. 한국 정부는 최소한 문세광의 자백이라는 것을 두 방향으로 활용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자국 정책을 정당화하는 선전에, 국제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북한 정권의 배신 행위를 보여 주는 증거로 쓸 것이다. 한국 정부는 또한 당분간 판문점에서 북한 측과 접촉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8월 21일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는 연기됐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여기서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한 어떤 형태의 반격을 검토할 조짐이 있는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와 유엔군사령부 모두 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가능성에 대해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암살범의 자백이 정치적 자원이 됐다’는 것은, 비정하긴 하지만 맞는 방향의 정치적 판단이었다. 그런데 미국 측이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어떤 형태의 보복 조치를 검토할 조짐이 있는가’였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다음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직후, 당시 대통령은 전방 부대를 순찰하며 일선 지휘관들을 달랜 적이 있었다.]

서독에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인사하는 박 대통령 부부/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육영재단

6. With regard to ROK-Japan relations, Tanaka’s gesture in attending funeral has been appreciated. However, Japanese connection with assassination attempt provides still another point of strain in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is will particularly be true should ROKG press for actions against the Yoshiis and Chosen Soren official Kim Ho-ryong on the basis of Mun’s confession.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다나카 총리가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고맙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저격 미수 사건의 일본 관련성은 양국 관계에 또 하나의 마찰 지점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한국 정부가 문세광의 자백을 근거로 요시이 측 인물들과 조총련 간부 김호룡에 대한 조치를 압박하고 나설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요시이란 인물은 문세광 지인 여성의 남편인 요시이 유키오(吉井行雄)를 말하는데, 재일교포였던 문세광은 이 인물의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일본 파출소에서 훔친 권총을 들고서였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의 연속인데, 당시 한일관계에 미친 파장은 컸으며 일본 입장에선 굴욕적이라고 느낄 만큼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국으로선 이 상황이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김호룡 등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1974년 8월 19일, 청와대를 떠나는 육영수 여사의 영구차 앞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애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10권

7. While as noted above, we have no clear signs on what direction president Park will take much will depend on his state of mind. Death of his wife and resignation of PPF commander Park Chung-kyu have removed from scene two persons on whom he has relied heavily for personal security and stability. We have no idea how this will affect him psychologically over the longer term, but we believe Park’s first reaction will be interpret attemped assassination as justification for his policies and proof of necessity for strong controls. We do not see Park moving toward moderation; rather, we expect him to be more convinced than ever that firm, forceful measures are necessary for the nation’s security and his own. Whether he will increase perpressive measures remains to be seen. However, we expect that present corecive domestic atmosphere will at the minimum continue.

(위에서 언급한 대로 박 대통령이 어떤 방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조짐은 없으나, 많은 것이 그의 심리 상태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영부인의 서거와 대통령 경호실장 박종규의 사퇴로, 그가 개인적 안전과 안정을 위해 크게 의존해 온 두 사람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그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박 대통령의 첫 반응이 저격 미수 사건을 자신의 정책에 대한 정당화이자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증거로 해석하는 것이리라고 본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가 확고하고 강력한 조치가 국가의 안보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신하게 되리라 예상한다. 그가 억압적 조치를 늘릴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강압적인 국내 분위기가 최고한 그대로 지속되리라 예상한다.)

[미 대사관 문건의 결론 부분이다. 이 예측은 대체로 맞았다. 박종규의 후임이 차지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박종규의 사임이 남긴 빈자리를 지적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그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는 문장은 마치 예언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것이 1974년 8월 20일,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직후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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