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작한 달리기… 목이 부러져도 뜁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2026. 8. 1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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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72)는 2001년 몸이 보내는 경고 때문에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몸무게가 87kg까지 늘었고,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뒷골이 심하게 당겨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이 경험을 통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위험"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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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인하대 조선 해양공학과 명예교수가 3월 열린 2026 서울마라톤 겸 제96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한 모습. 김경수 교수 제공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김경수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72)는 2001년 몸이 보내는 경고 때문에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몸무게가 87kg까지 늘었고,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뒷골이 심하게 당겨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집 근처 한 바퀴가 150m 정도 되는 작은 공원을 대여섯 바퀴 돌았는데, 놀랍게도 그날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지긋지긋하던 뒷골 통증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달리기에 매진했고, 42.195km 풀코스 마라톤은 물론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하는 ‘철각’으로 변신했다.

“제가 광주일고 다닐 때는 입시 때문에 운동을 못 했지만, 서울대에 진학해서는 축구와 농구, 배구, 탁구, 핸드볼까지 섭렵했습니다. 당시 기숙사 고교 동문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경쟁이 치열했죠. 제가 동문 체육부장을 맡아 주도했습니다. 독일 유학 때도 매 주말 축구를 했는데 교수가 돼서는 일에 쫓겨 운동을 못 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대학원생들을 모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10.5km 단축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 그즈음 경기 김포로 이사 가서 ‘김포 마사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길로 들어섰다. 매 주말 집 근처에서 애기봉까지 왕복 25km를 달렸다. 그리고 2002년 가을 3시간49분3초로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이듬해 3월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35분대를 기록했고, 2004년에는 미국 메릴랜드대 교환 교수로 간 상태에서도 잠시 귀국해 동아마라톤에 출전해 3시간 28분대에 완주하는 등 매년 동아마라톤을 상수로 두고 달리고 있다. 몸무게도 20kg이나 빠져 지금은 67kg을 유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04년 충북 청남대 울트라마라톤 100km에 처음 출전해 13시간 26분대에 완주한 뒤 2013년까지 10회 연속 뛰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0회 연속 뛴 주자에게 주는 칭호다. 그는 이 대회에서 처음 3년 연속 완주한 뒤 ‘111번’을 고유 번호로 받았다. 이 번호는 그가 다시 출전하지 않는 한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그만의 상징이다. 이후에도 세 차례 더 완주했고, 함께 뛰던 동호인을 직접 울트라마라톤에 입문시켰는데 훗날 이 대회 우승자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풀코스는 80회 넘게, 100km는 20회 달렸다.

김 교수의 마라톤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2023년의 사고다. 청남대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이 골절돼 그의 인생 네 번째 목 수술로 이어졌다. 사고 당시 왼팔이 완전히 마비될 정도의 중상이었다. 그는 혼자 재활에 매달려 6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절대 달리지 말고 취미를 바꾸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기간 동안 혈당과 중성지방 등 각종 건강 지표가 오히려 눈에 띄게 나빠지는 것을 직접 체득했다. 그래서 다시 달려 몸을 만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의사 말을 무시하고 하루 3만 보 이상 걷기 시작했죠. 특히 수도권 청계산에서 18km씩 걷는 훈련을 이어가며 서서히 몸을 되살렸어요. 집에 러닝머신과 고정식 자전거, 로잉머신을 마련해 목 보호대를 하고 틈틈이 체력도 키웠죠. 이런 꾸준한 재활 끝에 2025년 동아마라톤에서 다시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김 교수는 이 경험을 통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위험”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80세를 향해 가는 그는 지금도 체계적으로 훈련한다. 약 6년 전부터 지인들과 러닝 클럽 ‘에버런’을 만들어 선수 출신 전문 코치 밑에서 훈련하고 있다. 여름부터 12주 가을 대회를, 겨울부터 12주 봄 대회를 준비한다. 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보강훈련도 한다. 김 교수는 주당 70∼80km를 달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 3회 웨이트트레이닝도 한다. 그는 “부상 없이 달리려면 각 관절 근육을 잘 키워줘야 한다”고 했다. 최근 지인들과 유럽 알프스로 한 달간 전지훈련을 다녀오기도 했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알프스의 절경에 취해 귀국한 뒤 10여 년을 이어온 일정이다. 알프스의 절경을 보며 매일 10∼30km를 걸으면서 체력을 키웠다”고 했다.

“100세 시대, 움직일 수 있는 한 몸을 움직여야 건강합니다. 저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달릴 생각입니다.”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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