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훑고 간 자리 채 식기 전 다시 아침 [김윤지의 애살맞아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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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색(暖色)의 계절이다.
표면 전체가 붉게 일렁인다.
태양이 하루 종일 핥고 지나간 자리에 까끌까끌한 자국과 함께 끈적한 침이 남아있다.
예전 같으면 공원이나 강변에 돗자리를 펴고 눕는 사람들이라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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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달궈진 도심 뜨거운 공기 피할 곳 없어
해 진 뒤에도 더위 가시지 않아 잠 못 드는 밤
동트기 전 매미 울음…끝나지 않은 한여름 하루

난색(暖色)의 계절이다. 태양이 훑고 간 자리는 온통 붉음이 가득하다.
동트기 직전, 벌써 하늘은 짙은 남색에 은은한 붉은 빛이 서려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난색(暖色)은 한색(寒色)의 우위를 점하며 가볍게 이기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서는 오늘도 폭염특보가 발효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밤새 식어 가던 건물의 벽도 서서히 데워지며 창백하던 낯빛을 걷어내고 은은한 핑크빛을 띠기 시작한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투명하던 일상의 배경에 선명하게 붉음이 자리한다. 검붉은 그림자부터 몸을 웅크린다. 발밑으로 바짝 붙어 짧아진 그림자 위로, 양산을 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그늘을 찾아 걷는다. 하지만 그늘 밑에 서 있어도 뜨거운 공기는 피해가지 않는다. 철제 난간이나 자동차 문손잡이는 만질 수 없을 만큼 달아오르고, 손끝이 닿는 순간 움찔하고 떼어내는 몸짓이 반복된다. 골목 어귀에 엎드린 개는 진홍빛 혀를 길게 내밀어 열기를 배출하는 데에만 힘을 쓴다. 매미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울어댄다. 달궈진 흙은 조금의 소란에도 흙먼지를 풍기며 메마른 냄새는 덤으로 준다. 코끝에 스치는 모든 냄새에는 달궈진 붉은 뜨거움이 배어있다. 오로지 악수를 하거나 스치는 온기에만 축축한 수분감을 느낄 수 있다.


해가 기울면 하늘은 다시 짙은 다홍으로 물든다. 저수지나 강물 위로 햇빛이 부서지며 무수한 붉은 조각들이 반짝인다. 표면 전체가 붉게 일렁인다. 평상에 앉은 노인들은 부채를 쉬지 않고 흔든다. 손짓 하나에도 붉은 공기가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든다. 저녁 매미 울음은 한낮의 것과 동일하다. 오늘도 저녁이 낮처럼 더우려나 보다.
난색(難色)의 계절이다. 태양이 오랫동안 훑은 곳은 고양이가 핥은 것마냥 메마른 질감으로 가득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메마름 뒤에는 미처 마르지 않은 침도 남아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나서도 공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태양이 하루 종일 핥고 지나간 자리에 까끌까끌한 자국과 함께 끈적한 침이 남아있다. 그 침은 좀처럼 마르지 않고 모든 것을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저녁 뉴스에서는 오늘 밤도 최저기온이 28도를 넘는 열대야가 이어진다고 전한다. 올여름 들어 벌써 열흘 넘게 이어지는 소식이라 새삼스럽지도 않다. 집집마다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밤새 이어진다. 저마다의 집에서 뿜어낸 열기는 골목으로 흘러나와 밤의 온도와 뒤섞인다. 누군가의 시원함은 다른 누군가의 더위가 된다. 저녁 여덟 시, 휴대폰들이 일제히 울린다. 오늘도 어김없는 폭염특보 재난문자다.
집에 도착해서야 겨우 숨을 돌리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낮 동안 갇혀있던 열기가 훅 끼쳐온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몸은 개운하지 않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마르지 않는 물기를 선풍기로 말리며 열도 함께 말려보지만 금세 다시 몸은 축축해진다. 얇은 잠옷도 열대야에 일조하는 기분이다. 이불을 덮으면 곧바로 몸에 들러붙어 뒤척일 때마다 살갗에 감기는 느낌이 든다.
평소라면 방충망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귓가를 맴돌았을 모기도 오늘 밤에는 기척이 없다. 이 열기에는 모기조차 배겨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늦은 야식으로 시킨 치킨 상자는 금세 눅눅해지고, 맥주캔 표면에는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다. 옆집 텔레비전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온다. 예전 같으면 공원이나 강변에 돗자리를 펴고 눕는 사람들이라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드물다.
밤 열한 시가 넘어도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은 붐빈다. 아삭하고 상큼한 '스크류바'를 고르는 손이 느릿하다. 인공적인 냉기가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오로지 편의점 주인만이 훅 끼치는 바깥 공기에 미간을 재빠르게 찌푸린다. 마당에 묶인 개는 밤이 되어도 좀처럼 혀를 집어넣지를 못한다. 그 옆 물그릇의 물도 금세 미적지근해진다. 야간 알바생과 배달노동자들만이 이 시간까지 거리를 지킨다. 배달 오토바이조차도 더위를 피해갈 수 없다. 헬멧 속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을 테고, 스치는 밤바람마저 후텁지근하기는 매한가지다.
새벽 두세 시가 되어도 열기는 가시지 않는다. 몸을 뒤척이다 바닥에 누워 차가운 면을 찾아 튀김가루를 입히는 닭마냥 앞뒤로 몸을 뒤집는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땀에 젖어 눈을 뜨는 일이 반복된다. 자다 깨서 마신 물 한 잔은 금세 몸속에서 다시 땀으로 빠져나가고, 갈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에어컨을 밤새 켤지 말지 망설이게 된다. 이번 달 전기요금 고지서의 숫자가 벌써 눈에 선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의 고통이 더 우선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밤의 날씨에 실망한 채로 창문을 꼭꼭 닫고 임시방편의 에어컨 바람을 쐬며 쾌적함을 느낀다.

/김윤지 하동군 근무
☞필자는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