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대신 냉혹한 현실 비판 남긴 안중근…"완벽한 작품"

김예나 2026. 8. 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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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글씨라 소장할 가치가 없지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소장자는 "○○의 글씨라 소장할 가치가 없지만 (중략) 안중근의 마음을 가련하게 여겨 표구해 보존한다"고 밝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글씨 주인을 일컫는 단어는 사라진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묵 뒷면의 묵서에서 지워진 부분은 '적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국서예학회장인 장지훈 경기대 교수 역시 '적괴'로 추정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글씨 뒷면에 이런 묵서를 남긴 경우가 거의 없어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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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돌아온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전문가들 "가치 크다"
뒷면에 소장자의 묵서 남겨져…적었다 지운듯한 '적괴' 두 글자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 공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유묵을 공개하고 있다. 2026.8.13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의 글씨라 소장할 가치가 없지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종이 뒷면. 자신을 '평문광생 뇌협일인'(平門狂生 雷峽逸人)이라고 밝힌 인물은 유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 소장품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초대 조선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저격해 사살한 안중근(1879∼1910)이 쓴 글이었다.

안중근은 특유의 강인한 필체로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여덟 자를 썼다. '만국공법' 즉,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 공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공개된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2026.8.13 ryousanta@yna.co.kr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소장자는 "○○의 글씨라 소장할 가치가 없지만 (중략) 안중근의 마음을 가련하게 여겨 표구해 보존한다"고 밝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글씨 주인을 일컫는 단어는 사라진다.

날카로운 뭔가로 긁어낸 듯, 흔적만 남은 빈칸에는 어떤 단어가 있었을까.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지난해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 의사의 유목 '만국공법불여대포'를 분석한 국내 전문가들은 빈칸 속 단어가 '적괴'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적괴는 일본의 입장에서 항일 의병장이나 독립운동가를 깎아내리며 쓴 표현이다.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 공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유묵을 공개하고 있다. 2026.8.13 ryousanta@yna.co.kr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묵 뒷면의 묵서에서 지워진 부분은 '적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항일) 의병 관련 자료에서는 일본인이 '적괴'라는 표현을 쓴 경우가 있다"면서 "첫 글자에 남아있는 획, 문맥 등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서예학회장인 장지훈 경기대 교수 역시 '적괴'로 추정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글씨 뒷면에 이런 묵서를 남긴 경우가 거의 없어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은 안 의사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눈에 띄는 점이 많다.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 공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장지훈 경기대 교수가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언론공개회에서 유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8.13 ryousanta@yna.co.kr

19세기 일본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가 자신의 저서 '통속국권론'에 쓴 '만국공법' 관련 내용을 적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후쿠자와는 봉건 시대를 타파하고, 서구 문명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며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으나 제국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장 교수는 "보통 당부하거나 조언하는 내용의 글씨가 많지만, '만국공법불여대포'에는 국제법의 무력함을 꿰뚫어 보는 시대 의식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현재 남아있는 유묵 형태도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 공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유묵을 공개하고 있다. 2026.8.13 ryousanta@yna.co.kr

그는 "안 의사의 유묵 대부분은 장황(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 족자 등을 꾸미는 것)을 다시 했는데, 이 유묵은 일제강점기 모습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체, 구성, 서법 등) 모든 면에서 완전한 작품"이라며 "말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문헌 전문가인 정제규 국가유산청 전문위원은 안중근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바닥 도장' 이른바 장인(掌印)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진본'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보물로 지정된 '운재'(雲齋),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등 5점의 유묵에 담긴 검지 지문 등이 일치한다는 점이 데이터로도 증명된다"고 말했다.

돌아온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허민 국가유산청장(가운데)이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8.13 ryousanta@yna.co.kr

돌아온 '만국공법불여대포'는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서 보관 중이다. 향후 유묵을 어디에서 보관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국외재단은 나라 밖에 흩어진 한국 문화유산을 환수하고 보존·연구·조사하기 위해 2012년 7월 설립됐으나, 환수 유물을 보관하거나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유물을 다루는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고궁박물관이 '임시 거처'인 이유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내부 검토를 거쳐 관리처를 지정할 계획"이라며 "(환수 유물 보관을 위한) 예산이나 조직 지원은 현재로선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정혜 국외재단 이사장은 "국제 정서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던 안 의사의 통찰이 나타난 작품"이라며 "광복절의 참뜻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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